민수기 13:1~33 정탐꾼의 보고 2020. 7. 26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3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 된 사람이라

 

오늘 본문은 시내 산을 떠나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1~3절의 말씀만 보면 여호와께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모세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라고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리 정탐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허락하심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이 고발되며 그 믿음 없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신명기 1:21~22절입니다.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모세도 그들의 말을 일리가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이런 내용을 여호와께서 허락하심으로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허락하신다고 다 좋은 것일까요? 이미 탐욕의 무덤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고기를 달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고기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고기를 먹는 순간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시편 106: 14~15절입니다.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여호와께서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셨는데 그 결과는 그들의 영혼이 쇠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무엘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이며 왕으로 인하여 고생을 할 것 이라고 하여도 왕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허락한 왕으로 인하여 얼마나 고생하는지 왕들의 역사가 증거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정탐을 미리 해 봐야 한다고 요구하였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보다는 내가 현실을 파악하여 대처를 하겠다는 생각이 앞선 겁니다. 예수님께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일 일을 염려를 하지 않으면 오늘이 행복합니다. 그런데 닥치지도 않은 내일 일을 오늘 끌어당겨서 염려합니다. 오늘 밤에 나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수 있는 주님이신데 왜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일로 염려합니까? 내일 일을 미리 염려하여 준비하여 둠으로 무언가 대처해 보겠다는 겁니다.

 

잠언 27:1절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마태복음 6:3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그러면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는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 6: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다고 합니다. 공중의 새와 들풀도 먹이고 입히시는데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야고보서 4:13~16절입니다. “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개업집에서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만 사람의 계획보다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안개 된 인간의 믿음입니다. 코로나 19로 얼마나 많은 계획이 취소가 되었습니까? 우리교회의 행사계획도 저의 계획도 많이 취소가 됨을 통하여 안개임을 실감하면서 살아갑니다.

 

본문 4~16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대표를 뽑아서 정탐을 보내는 것이 믿음이 없는 모습임을 지금까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유다지파의 갈렙입니다. 갈렙은 그니스 사람입니다(32:12. 14:6,14). 그러므로 갈렙은 이방인으로 유다지파에 편입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의 호세아를 모세가 여호수아로 불러줍니다. ‘호세아는 구원이지만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라는 뜻이며 헬라어로 번역하면 예수입니다.

 

본문 17~20절입니다. “17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네겝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18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곧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와 19 그들이 사는 땅이 좋은지 나쁜지와 사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20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를 탐지하라 담대하라 또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가나안 땅을 종주하면서 정탐하고 그 땅의 과일도 가져오라고 합니다.

 

본문 21~27절입니다. “봉독가나안 땅을 종주하면서 정탐을 해 보니 그곳에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낙자손들은 거인 족입니다. 그리고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여 두 사람이 막대기에 매고 옵니다. 다른 과일들도 가지고 옵니다. 광야에서 약 일 년 넘게 생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탐꾼들이 들고 온 과일들은 과연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본문 28~33절입니다. 봉독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지만 그 성읍이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아낙 자손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에게 동요가 일어납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고 하면서 능이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함께 간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기에 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땅을 악평하기를 그 땅은 거주민들을 삼키는 땅이며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하고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도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았는데 그들에게도 우리가 메뚜기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약속에 대한 믿음의 눈으로 보는지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이 현실만 보는지 극명하게 나누어집니다.

 

정탐꾼들의 보고 중에 네피림의 후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창세기 6:4절입니다. 당시에 땅에는 1)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 이었더라네피림은 각주에 장부(丈夫)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장부(大丈夫)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고대의 용사이며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네피림의 등장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자들이 있지만 저는 셋 계열의 경건한 자들이 가인 계열의 딸들과 결혼하여 세상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로 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은 항상 악할 뿐입니다. 이것이 세상 영웅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심판함이 노아시대 홍수입니다.

 

창세기 4:26절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지난 수요일 저녁에 말씀을 드린 내용입니다. ‘에노스라는 뜻이 연약하다는 뜻입니다. 연약하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이것이 경건한 셋 계열의 자손들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약함으로 살아가다가 성벽이 든든하고 문명이 발달한 가인 계열의 번성을 보고 그것을 부러워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합니다. 그러면 그 시대에 성공한 자가 됩니다. 이들을 네피림이라고 하고 장부라고 하고 명성 있는 자라고 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만들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세상의 명성을 향하여 사고팔고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 몰두합니다. 이런 모습이 세상의 명성을 위하여 달려가는 네피림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10:12절입니다.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노아 홍수 이후에 함의 후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니므롯이 함의 후손입니다. 함이 세상의 첫 용사라고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한 것은 가치 평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용맹함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함의 후손들의 이름들이 대부분 지명을 말합니다. 바벨론 제국과 앗수르의 제국이 성립하는 곳들이 다 함의 후손들입니다. 그리고 가나안도 함의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은 땅의 영웅이기에 바벨탑을 쌓는 일을 합니다.

 

이들에 비하면 셈의 후손은 영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그네처럼 흩어져 살다가 그 후손들 가운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들의 후손들이 함의 땅인 가나안을 차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출애굽을 통하여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광야로 들어서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언약체결을 다 보았습니다. 성막을 만들고 언약궤를 앞세워 가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의 네피림의 후손들인 아낙 자손들을 보고 이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눈에는 골리앗 같은 자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성벽이 크고 튼튼함도 사실대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함이 어떤지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의 말씀으로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자는 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고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형편이 전세금 정도 밖에 없는데도 수백억의 건축을 하면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부도가 나고 많은 교회당들이 이단들에게 넘어가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본문을 하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에 부분적으로 봐서 내가 이루고 싶은 욕망을 그 말씀에 빗대어 이루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네피림의 속성입니다. 세상의 영웅이 되는 길로 가려는 것이 네피림의 후손들의 모습니다.

 

이러한 네피림의 후손들을 아낙 자손들이라고 합니다. 거인들이라고 합니다. 바산 왕 옥도 그의 철 침대가 길이가 약 4미터 폭이 약 2미터입니다. 골리앗의 키도 약 3미터 20센티입니다. 키만 크지 않고 힘도 셉니다. 그가 입은 갑옷의 무게만 약 60킬로그램입니다. 그가 든 창이 베틀 채 같고 창날만 약 7킬로그램입니다. 골리앗의 아우도 거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즐비한 땅이 가나안 땅 함의 후손들의 땅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이긴다는 것은 사람이 볼 때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열 명의 정탐꾼은 이길 수 없다고 합니다. 백성들도 여기에 동요합니다. 그런데 갈렙은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앞에서 보았습니다만 갈렙은 유다지파에 소속이 되었지만 이방인 출신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시는지를 알고 믿는 겁니다.

 

민수기 23:19~21절입니다. “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발락 왕이 큰 무당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여도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발람이 알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압니다. 야곱의 허물과 야곱의 반역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허물과 반역을 보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허물과 반역을 왜 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4:17~25절입니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2)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은 갈렙은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내시는지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그 믿음이 갈렙 에게도 주어진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이런 내용들을 알게 되면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약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바라보고 믿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겁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의 범죄로 인한 대속이며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심을 믿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의 헛된 영광에 마음 빼앗기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이미 멸망한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만유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것을 다 가진 부요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갑니다. (벧전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