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1~20 복과 저주 2021. 3. 7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1)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2)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8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

 

오늘부터 보는 말씀은 모압 왕 발락이 점술가(13:22)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분량이 22, 23, 24장까지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내용이 이렇게 상세하게 많이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신실하신지를 계시합니다(23:19). 동시에 인간들의 종교성이 어떤지를 보여줍니다. 복과 저주의 기준과 그 내용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후에 모압 평지에 진을 칩니다. 이곳은 여리고 맞은 편인데 이곳에서 상당 기간 머물게 됩니다. 이곳에서 여리고 성을 정탐도 하지만 모세가 마지막으로 언약을 갱신하는 장소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2~4절입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의 왕입니다.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이스라엘로 인하여 번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본 대로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족속들에게 주신 땅은 그대로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하는지 아니면 알아도 믿지 못하는지 이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미디안 장로들에게 그 어려움을 말합니다. 미디안 장로들은 발락왕의 참모들인 모양입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듯이 우리 사방의 것을 다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5~6절입니다. 발락왕이 사신을 보내는데 모압의 장로들과 미디안의 장로들을 함께 보내는 것은 미디안의 장로들이 조언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대상들이라서 세상의 정보를 잘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조언을 들었는지 아니면 발락 왕도 소문을 듣고 아는지 간에 발람에게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는데 우리보다 강하니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들을 쳐서 이길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발람이 복을 빌면 복이 임하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 줄을 발락왕이 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봅시다. 우리도 삶의 어려움이 닥치면 어떻게 합니까? 교회를 다니기 전에는 점을 치러 갑니다. 또는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를 발람과 같은 자로 여기지 않습니까? 목사는 신을 공부한 사람, 신학을 한 사람이니 신을 잘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신 전문가에게 여러분은 발락처럼 요구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수요가 많다고 봅니다. 그런 수요가 있으니 자신이 축복하면 복을 받고 자신이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 말을 합니다. 이런 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점쟁이를 찾는 인간의 종교성이라는 수요에 공급하기 위한 일입니다. 인간의 종교성이란 원화소복(遠禍召福)이 기본입니다.

 

7~8절입니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게 가서 발락의 말을 전합니다. 복채(卜債)란 점을 쳐주는 대가로 점쟁이에게 주는 돈입니다. 각주를 보면 히브리어로 점괘라고 되어 있습니다. 점괘(占卦)란 점을 쳐서 나오는 결과인데 만약 점괘가 좋지 않아도 복채만 많이 내면 좋지 않은 점괘를 다른 방법을 써서 바꾸어 줍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복채를 추가로 요구할 수가 있습니다. 아주 멀리서 왕이 보낸 사람들이 발람을 청하려고 왔습니다. 발람은 그 사람들에게 이 밤에 여기에 유숙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고 합니다.

 

어떻게 발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아는 겁니까? 발락 왕이 이스라엘로 인하여 번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인 것을 발람은 압니다. 신 전문가입니다. 그러므로 각 나라의 신들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을 안다면 여호와께서 선택한 백성은 다른 요사스러운 술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텐데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유숙하라고 한 것은 그들이 들고 온 복채가 탐이 났을 겁니다. 발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방법에 관한 내용은 없습니다.

 

9~14절입니다. “9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10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11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13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발람은 밤에 꿈이나 환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보입니다.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발람이 그동안의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아침에 발람이 발락의 귀족들에게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돌려보냅니다. 그들은 발락 왕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그러나 발락 왕은 이런 말씀을 듣고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더 높은 사람을 더 많이 보냅니다.

 

15~18절입니다. “15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16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17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18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앞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말이 진심이라면 바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다시 여기서 유숙하라고 한 이유는 왕이 말한 복채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19~20절입니다. “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20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앞에서 하나님께서 가지도 말고 저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밤에 유숙하게 한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을 더 하실지 알아보겠다고 하였습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과 함께 가라고 하시면서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보내시는 이유는 12절을 확인시키시기 위함입니다.

 

12절을 다시 봅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모압왕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발람이라는 큰 무당을 불러오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거절하자 다시 더 높은 자들과 더 많은 복채를 준다고 하면서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압왕과 발람이 무엇을 모르는 것입니까? 복과 저주의 기준도 모르고 복과 저주의 내용도 모르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의 기준과 복과 저주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2:1~3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브람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 복이 되라고 합니다. 전에 번역은 복의 근원이라고 하였는데 복의 근원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유는 아브람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과 저주의 기준을 정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하나님께서 저주합니다. 이렇게 기준을 세우심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으로 인하여 복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내시는 여러 훈련을 시키십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바로 왕에게 자기의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하고 넘기고서는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십니다. 바로는 아브람의 아내인 줄 알지 못하여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재앙을 당하여 사래를 돌려보냅니다. 바로가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이미 복과 저주의 기준이 정하여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중에 아비멜렉 왕에게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20). 이러한 아브람에게 이삭을 주시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열두 아들과 그 자식들이 애굽에 들어가 살다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약속의 땅에 돌아옵니다. 이 과정이 민수기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은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는 것은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이미 복과 저주의 기준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은 거절하다가 열 가지 재앙이 쏟아지고 장자가 죽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다가 바다에서 군대가 몰살합니다. 광야로 들어선 이스라엘을 처음 공격한 자들이 아말렉족입니다(17). 이들은 대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 요단강 오른편으로 가는 중에 만난 민족들도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다가 오히려 진멸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축복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언제나 소수입니다. 앞으로 보겠습니다만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일을 합니다. 기생 라합은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는 일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 민족으로는 기브온 족입니다. 반이스라엘 진영을 형성한 가나안 원주민들의 연합전선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에 항복합니다. 이들은 결국 이스라엘에 편입됩니다. 이스라엘에 편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복과 저주의 기준은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들어오느냐 아니냐는 겁니다. 이것을 계시하는 내용이 아브라함의 생애에 나타납니다. 쪼개진 짐승으로 언약 체결, 씨에 대한 약속, 이스마엘 출생, 할례 후 이삭 출생, 이삭을 제물로 바쳤다가 양을 대신 바치는 사건을 통하여 복의 내용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때는 무엇이 복입니까? 어린 양의 피를 바르는 것이 복입니다. 이 복에 관한 기준도 이미 아브라함 언약을 통하여 계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피 아래 있는 자는 복을 받은 자이지만 어린 양의 피 밖에 있는 자들을 저주를 받은 자가 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을 축복하는 자들은 복을 받지만 저주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는 것이 민수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24:9).

 

그런데 모압 왕 발락은 발람 같은 큰 무당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발람이 와서 하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이스라엘에는 저주가 통하지 않습니다. 저주하려고 하는 순간 오히려 축복의 말을 합니다. 그 축복의 말에 메시아 예언까지 나옵니다(24:17). 그러므로 복과 저주의 기준은 아브라함 언약을 따라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과 저주의 기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과 저주의 기준만이 아니라 복과 저주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서 3:8~14절입니다. “8 또 하나님이 3)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ㄴ)모든 3)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바 ㄷ)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ㄹ)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ㅁ)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ㅂ)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오늘 설교 제목이 복과 저주입니다. 복과 저주의 기준과 내용까지 갈라디아서의 이 말씀에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은 세상의 복과 저주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 복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저주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 저주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성도는 복과 저주의 새로운 기준과 새로운 내용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베드로후서 3:12~18절이니다.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은 이런 말씀에 아멘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게 됩니다. 영광이 이제부터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