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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1~3 학대 받는 자의 눈물 2019. 2. 13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학대(虐待)의 사전적인 뜻은 사람이나 동물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괴롭히고 가혹하게 대함입니다. 이러한 학대는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힘이 약한 자들이 강한 자들에게 받는 학대, 직분이 높은 자에게 낮은 자가 받는 학대, 신체적인 학대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학대, 경제적인 학대, 성적인 학대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학대들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남을 학대함으로 쾌감을 얻는 정신병으로부터 자신을 학대함으로 쾌감을 얻는 정신병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많은 학대들이 옛날에는 많이 감추어져 있었는데 요즈음 이 나라에서는 미 투 운동으로 여러 방향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떤 학대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학대라는 히브리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에 압박, 압제, 강탈 등으로 함께 사용됩니다. 한글성경에서 학대(虐待)56, 억압(抑壓)8회가 나옵니다. 물론 히브리어와 똑 같은 단어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학대와 억압의 몇 곳을 찾아보면 성경에서 무엇을 학대라고 보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학대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리면 자신이 받은 학대나 억압만 생각하고 자신이 남에게 끼친 학대나 억압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비하는 것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과 환경에 피해를 입힙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남을 학대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여기는 것이 타락한 증거입니다.

 

성경에서 학대를 살펴보기 전에 창세기 3장을 먼저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였는데 뱀의 유혹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고 나니 자기중심적인 선악판단을 함으로 당장 부부사이에도 책임전가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타락으로 인하여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합니다. 창세기 6장에서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합니다. 죄악이 가득한 그 상태는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것입니다. 이것은 흉악한 범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를 예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는 세상의 심판을 알고 방주를 만들지만 그 은혜를 입지 못한 자들은 먹고 마시며 사고팔며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생의 목적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재림 때에도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자기들의 세계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노아 홍수 이후에 바벨탑을 쌓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흩으신 후에 셈의 후손 중에서 아브람을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셔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땅과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그 복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인데 그 믿음은 씨(후손)에 대한 믿음이며 그 씨(후손)는 곧 그리스도라고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기 전에 이방 나라에서 사대를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약속의 때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당합니다.

 

출애굽기 3:6~10절입니다.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80세가 된 모세를 부르십니다. 나는 너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미 430년 전에 언약한 내용이기에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배경은 학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학대를 받지 않았다면 부르짖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학대로 인하여 부르짖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때를 따라 일하신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에 들여놓게 하십니다. 이로 인하여 10가지 재앙이 쏟아지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 합니다. 홍해를 건너고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하여 광야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체결합니다.

 

출애굽기 22:21~27절입니다. “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학대 받던 애굽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따라 어린 양의 피로 구속 받아 나왔다면 이제 너희 안에서는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한 자들을 억압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주어도 채권자처럼 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게 합니다. 이뿐 아니라 온갖 율법으로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통하여 가난한 자들이 영구히 가난해지지 않도록 율법의 장치를 다 마련하셨습니다. 3년 마다 십일조를 한 번 더 하여 가난한 자를 구제하도록 하여 여호와의 자비를 기억하게 하시려고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사야 1:13~17절입니다.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온갖 제물과 절기 지킴이 헛되고 가증한 이유는 학대 받는 자들을 도와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21~23절을 봅니다.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22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학대로 인하여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예레미야 22:1~5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이 말을 선언하여 2 이르기를 다윗의 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4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왕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 5 그러나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폐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학대로 인하여 나라가 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아모스 3:9, 4:1, 5:12, 6:14절입니다. 아스돗의 궁궐들과 애굽 땅의 궁궐들에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세 곳만 찾아본 학대에 관한 내용입니다. 북 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간에 나라가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고 더욱 권력을 가지려고 하고 재물을 가지려고 하였기에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이사야서 5:8~9절을 보면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지 못하게 율법으로 막아놓았지만 부동산 투기를 함으로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였기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자들도 다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도 새 번역으로 봅니다. “2 그래서 나는, 아직 살아 숨 쉬는 사람보다는, 이미 숨이 넘어가 죽은 사람이 더 복되다고 말하였다. 3 그리고 이 둘보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온갖 못된 일을 못 본 사람이 더 낫다고 하였다.”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의 말씀을 보고 전도서 본문을 보면 전도자의 고백이 이해가 됩니다. 해 아래 일어나는 수많은 억압을 보면서 살아 있는 사람보다 차라리 이미 죽은 자가 낫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자나 이미 죽은 자 보다 태어나지 않는 자가 더 낫다고 한 것은 죽은 자도 학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패역한 역사를 보고 나라의 망함을 몸으로 겪는다면 이 고백이 나오고도 남습니다.

 

욥기 3:11~19절입니다.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13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을 채운 고관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18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호통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의 고난을 오늘 전도서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가 됩니다. 물론 욥의 고난은 이스라엘이 범죄 함으로 당하는 고난과 차원이 다릅니다. 의인의 고난을 다루는 것이 욥기라면 전도자가 해 아래 일어나는 학대를 보면서 욥과 같은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학대 받는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지만 약속의 땅에서 약한 자를 학대하는 까닭에 나라가 망하게 되는 과정을 온 몸으로 겪는다면 차라리 죽은 자와 태어나지 않은 자가 사는 자 보다 낫다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죄인이 할 말은 아닙니다. 마땅히 그렇게 수고와 슬픔 가운데 죽어가도 마땅한 것이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인 욥의 까닭모를 고난의 탄식과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학대를 보면서 탄식하는 전도자의 탄식이 같지만 이런 세상에 소망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사야 61:1~3절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1)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였기 때문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기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런 언약을 주시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을 주시면서 메시아가 오셔서 모든 학대와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도 드리며 절기도 지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생활 속에서도 실천하자는 운동들이 일어났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하게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런 자들이 과부들의 재산을 삼키면서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12:30).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성전이 장사하는 도적의 소굴이 되었습니다(21:13). 예수님은 이러한 예루살렘을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마태복음 23:37~39절입니다.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3장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저주하시는 내용입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지킨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아닌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만 가득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처럼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가 메시아를 맞이할 자라고 생각하면서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세리와 창기들과 이방인들을 죄인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취급받는 자들은 유대 사회에서 멸시와 천대와 학대를 받습니다. 이들이 눈물을 흘리지만 아무도 위로 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도 황폐하여 집니다. 성전도 파괴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기에 예수님이 함께 하는 자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 위로를 어떻게 주십니까?

 

예수님께서 학대 받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까? 재판관인 빌라도마저 죄 없다고 선언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온갖 조롱과 수치와 모독과 고통을 다 당하시는 그 학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 학대를 온전히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절규를 통하여 학대 받는 자들이 위로를 받고 믿음이 싹 터며 소망이 생기는 것은 십자가의 역설이며 신비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게 된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합니다.

 

요한계시록 21:1~7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1)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지금도 이 땅에는 온갖 학대와 억압이 가득합니다. 종교전쟁, 이념전쟁, 경제전쟁으로 인하여 학대받고 억압받는 자들은 이미 죽은 자와 태어나지도 않은 자가 더 낫다는 탄식이 여전히 나오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비록 탄식과 고통의 삶이라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그 눈물을 닦아주시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그 고통과 외로움과 죽음의 자리에도 함께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가 함께 하실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떤 죄인보다 더 심한 학대를 죄 없는 분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성육신 하셔서 그 십자가에서 버림받음으로 인하여 죄로 인하여 영원히 버림받아야 할 자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다 이루심이기에 그 복음이 들려지고 믿게 된 자들은 영원히 그 눈물을 씻겨줄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동시에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 줄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게 됩니다. 지금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