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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2:1~3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2020. 10, 21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시편 22편 표제어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1)아얠렛샤할에 맞춘 노래각주를 보면 사슴이란 곡조에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도 곡조가 있는데 사슴이라는 곡조입니다. 그러나 그 곡조가 어떤 곡조인지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이 곡조 명을 보다가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들어 보았습니다. 무려 세 시간이 넘는 곡인데 그 중에 합창곡 한 곡이 찬송가 145장인데 이 곡은 몇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가사는 중세의 수도사가 쓴 가사입니다. 이 가사를 먼저 보고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거룩하신 주님 그 상하신 머리 조롱과 욕에 싸여 가시관 쓰셨네 아침 해처럼 밝던 주님의 얼굴이 고통과 치욕으로 창백해 지셨네 주당하신 그 고난 죄인 위함이라 내 지은 죄로 인해 주 형벌 받았네 내주여 비옵나니 이 약한 죄인을 은혜와 사랑으로 늘 지켜 주소서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 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이 가사를 보는 이유는 시편 22편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눈에 보듯이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22편의 저자가 다윗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보다 약 천 년 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보다 천년 뒤에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눈에 보듯이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도 기름부음 받음으로 인하여 고난이 있었지만 그리스와 같은 고난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인생 후반부에 다윗이 당한 고난들은 자기의 죄로 인한 징계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였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22:41~46) 다윗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장차 자기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고 기록하여 두었습니다(벧전1:10~11).

 

본문 1절을 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히브리어로 엘리 엘리 라마 아자브타니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27:46, 15:34).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시편 22:1절의 말씀대로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않으십니까? 이런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이 성경전체의 핵심입니다. 이 죽음의 비밀은 혈육으로는 알 수가 없기에 계시를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혈과 육은 내가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마음이든 육신이던 불편하고 괴로운 것을 싫어합니다. 세상 사람이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간에 예상하지 못하던 환난이나 고난이 오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질문을 하기 마련입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원인을 찾아봅니다. 자기에게서 잘 못을 찾지 못하면 조상 탓인가 합니다. 요즈음은 사회의 구조 악이라는 말도 합니다. 이럴 때에 종교사기꾼들이 접근하거나 정치적인 해결책을 말하는 자들이 등장하여 해결책을 말하면 그리로 이끌리어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고난이나 세상의 고난의 문제를 인간적으로 해결하려면 오히려 실타래가 헝클리듯이 헝클어질 뿐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인류의 문제는 종교나 정치나 경제가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7~30절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아버지를 압니다. 그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 마다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메어주시는 멍에는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가 쉽고 가벼운 짐이라서 마음의 쉼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가 쉽고 가벼운 짐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셨는지를 알고 믿는다면 마음의 쉼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일이지만 그 버림받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로 인하여 영원히 버림을 받아야 하는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짊어지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살리셔서 하늘에 앉히신 소식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알고 믿게 되는 만큼 욕망에서 자유가 되기에 마음의 쉼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가을에 즐겨 부르는 노래 가사처럼 너를 만난 세상 더는 바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 외에 다른 것을 바란다면 죄가 된다고 노랫말을 썼는데 우리는 주님 외에 다른 것을 원하면 쉼이 없습니다.

 

본문 2~8절입니다. “봉독 내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어도 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함에도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님은 거룩 하시다고 찬양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 중에 부르짖어 애굽에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약속의 땅에서도 비록 범죄 하여 고난을 당하였을지라도 부르짖어 구원을 얻어 수치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5:29~32절입니다.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시편 22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눈에 보듯이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0편에서 왕의 승리를 노래하였고 21편에는 이미 승리하여 왕관을 쓰셨고 또 이기시려고 활을 들고 나서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가 바로 십자가의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조롱하는 자들 앞에서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그럴 수가 결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조롱과 수치를 다 받아내십니다.

 

마가복음 15:33~39절을 봅니다.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렇게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죽으신 분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버림받은 그 십자가의 죽으심의 순간에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이것이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겁니다(10:20). 예수님의 죽으심이 생명의 길을 여신 겁니다. 그 순간에 예수님을 처형하던 로마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이루신 놀라운 일입니다.

 

본문 9~20절입니다. “봉독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였습니다. 그래서 모태에서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멀리하지 마시고 환난에서 구원하여 달라고 하지만 많은 힘센 황소가 부르짖는 사자 같이 에워쌌습니다. 그래서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다고 합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다고 합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그러므로 나의 힘이신 여호와께 구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개들이라고 한 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의 힘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요한복음 19:23~24절입니다.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찢어서 나누어 가지고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니 제비뽑아 가지자고 한 이 내용까지 기록된 시편 22편의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런 노래를 한 후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1절부터 20절까지 시편 기자는 극심한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부르짖어 구원을 받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이렇게 부르짖지만 구원은커녕 온갖 조롱과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분위기 급전이라고 전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환경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하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 급전은 기도 중에 응답을 받았기에 이렇게 찬송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는 문제가 해결되어 이런 구원의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승리는 오직 주의 백성들만 아는 승리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봉독 여기서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주를 찬송한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누구만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을 듣는 행하는 자들을 친구라고 하십니다(15:15).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고 하십니다(20:17).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합니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가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 부어주십니다. 그 성령이 임한 자들이 형제들이며 교회입니다.

 

히브리서 2:9~12절입니다.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본문 22절의 내용을 히브리서에서 인용하면서 전하는 앞뒤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루신 일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회중에게서 찬송한다는 말이 교회 중에서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 교회란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이며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20:28)와 예수님이 피로 사신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과 왕 노릇하는 자들은(5:9~10) 예수님이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찬송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교회입니다.

 

히브리서 2:13~18절을 봅니다.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4)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브리서를 먼저 본 것은 오늘 본문의 해석과 같기에 먼저 보았습니다.

 

본문 23~24절입니다. “봉독 교회란 십자가로 나타난 그 구원을 찬송하는 자들의 모입니다. 찬송의 내용은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어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구원을 받았기에 주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기에 찬송을 합니다. 이런 회중 곧 교회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여기서 서원을 갚는다는 것도 기름부음 받은 자가 그 서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자신이 그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25~28절입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기에 의로 배부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의 마음은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게 됩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도 주님의 이름을 경배하게 됨은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그 일하심은 그의 십자가로 구원하여 내시는 일입니다. 그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며 모든 나라의 주재가 주님이십니다.

 

29~31절입니다.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들도 먹고 경배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부요한 자들도 경배하고 가난하여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하여 진토처럼 살아가는 자들도 그 앞에 절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부요와 가난과 상관없이 주님께 경배한다는 표현이 됩니다. 그런데 영혼을 구원하지 못할 자라는 것은 부요하거나 가난하거나 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족속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 복음을 후손에게 전하게 되면 그 후손들도 이 복음으로 살 것이라고 시편 22편은 마감합니다.

 

빌립보서 2:5~11절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1)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2)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3)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에 있는 자가 땅에 있는 자나 땅 아래에 있는 자나 간에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 앞에 꿇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 이름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간에 하나님께 버림받아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이 바로 자기 자신이 버림받아 그렇게 저주받아 죽어야 하는 자임을 인식하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는 그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토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