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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설교]   [동영상설교]

사사기 2장 2012. 12. 2

 

사사기 1장과 2장은 서론입니다. 1장은 여호수아 사후에 사사시대가 시작되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줍니다. 그 내용은 가나안 원주민을 다 쫓아내지 못하였고, 함께 섞여 살았고, 나중에는 그들에게 쫓겨나기 까지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도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사자가 책망을 하는 것이 2장입니다.

 

1~2. 여호와의 사자(使者)가 길갈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서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모세와 여호수아에게도 나타났으며 사사시대에는 기드온과 삼손의 부모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을 바로 여호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1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여호와의 사자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로 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언약하신 내용입니다. 그 언약을 여호와는 영원히 어기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배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올 때는 모세를 언약의 중재자로, 들어와서는 여호수아를 언약의 중재자로 언약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셔서 돌보아 주신다는 것이며 그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언약은 가나안의 백성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않고 그들을 진멸하고 쫓아내며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섬기지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냐고 합니다.

 

3~5. 언약을 배반하였기에 언약의 저주대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옆구리의 가시기 될 것이며, 그들의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올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래서 그곳을 우는 자들이라는 뜻의 ‘보김’이라고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울기는 왜 우는 것입니까? 이것이 회개의 눈물이었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들었다면 다시 언약대로 남겨진 그들을 다 쫓아내겠다고 해야 하는데 그냥 울기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혼을 내면 잘못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냅다 울기만 하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어릴 때 그러하였습니다. 울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을 버리고 쫓아낼 것을 쫓아내어야 하는데 버려야 할 것을 두 손에 움켜지고 울기만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버리기 싫다는 것입니다. 이런 울음이 우리의 기도는 아닙니까?

 

말라기 2:10~14절입니다. “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거짓을 행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 유다는 거짓을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에서 끊어 버리시리라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언약을 어긴 것이 이방신의 딸과 결혼 한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하는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버리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끊어버리신다고 합니다. 이런 악만이 아니라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도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어려서 취한 아내를 버리는 것을 책망하시는 말씀이지만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결혼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의 딸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배반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6~10. 여호수아가 각 지파에게 그들이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살아있는 동안과 여호수아 사후에 여호와의 큰일을 본 장로들이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들의 사후에 여호와를 배반하였다는 말입니다. 이들 후에 일어난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망하는 이유입니다.

 

호세아 4:6절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지금 이 땅의 현실도 이와 같다고 봅니다. 고생을 모르는 세대, 자기만 최고로 아는 세대의 자녀들이 어떻게 될지 보이지 않습니까? 먼저 믿는다는 우리가 예수님을 제일로 삼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면서 자녀들이 신앙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23:28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보김의 울음이 아닌 울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울음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십니다.

 

스가랴 12:10절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23. 사사시대 전체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패턴은 배교, 징계, 간구, 구원, 안식의 순서입니다.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면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패역하여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을 사사기 전체를 통하여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들이 여호와를 거역한 주된 이유는 바알과 아스다롯이 매력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알은 남신이며 아스다롯은 여신입니다. 이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들의 육적인 만족과 쾌락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남겨주신 것입니다. 시험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징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라고 하시는데 버리지 않고 손에 꼭 쥐고는 울고만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워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역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출애굽 시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고역만 없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 살만한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자기 고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탄식과 울음이 아닌 다른 탄식이 나오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애굽의 탄식이 아닙니다. 사사시대의 탄식이 아닙니다. 어떤 탄식입니까?

 

로마서 8:18~23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에게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의 탄식이 나오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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