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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24~33 두려워 말라 2015. 11. 27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지난주에 성찬식 때문에 조금 일찍 마무리하느라 보지 못한 부분을 다시 봅니다. 22절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복음을 전하는 자 곧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께서 미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다 악하다고 하는 일에 정말로 수긍이 되십니까? 오늘 설교하는 저도 악한 일을 한 것이고 밥을 준비한 것도 악하다고 인정하시겠습니까? 인정하는 자들에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런 복음을 섞지 말고 순결하게 끝까지 증거 하면서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미움 받는다고 말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23절입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지난주에 본대로 복음을 전할 때에 받아들이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머무르고 반대하면 발에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복음을 증거 하다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지역을 전체로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온 세상의 멸망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가는 곳 마다 핍박을 받을 것이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4~25절입니다. “봉독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제자는 그 선생이 가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며 종은 그 집주인이 간 길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이 가신 길로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과 같으면 족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야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습니까?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는 조롱이 더러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러운 귀신의 왕이라고 불렀는데 그 제자들을 어떻게 대할지 너무나 분명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 예수님을 잘 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속이고 있습니까?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한다고 합니다. 정말 성경이 그렇습니까? 성경 최초로 예배에 성공한 아벨은 형 가인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벨을 죽인 가인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죽임 당하지 않도록 표를 가지게 되고 자신의 왕국을 세워나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세상의 사람들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을 것이며 핍박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길로 끌려가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6~27절입니다. “봉독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가는 길은 세상에서 대접을 받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인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핍박이 오면 그런 것들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감춰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조용하게 은밀하게 알려준 천국의 복음이 광명한데서 말하게 되며 지붕에서 전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그리스도 됨을 숨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들입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메시아사상인지 진짜 메시아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메시아의 일을 하시면서도 자신의 메시아 됨을 숨기라고 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제자들조차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기까지는 조용하게 은밀하게 어두움 가운데서 말씀하신 천국의 복음이 이제 곧 공개적으로 선포될 것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강림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함으로 제자들이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복음의 핵심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복음을 회당에서든 성전에서든 길에서든 어디서나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복음이 공개적으로 증거가 되어도 여전히 세상은 십자가의 복음이 들리지를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만 복음을 듣고 믿게 됩니다.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만 복음을 듣고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까지 여전히 십자가는 세상에 감추어져 있고 숨겨져 알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온 세상이 밝히 알게 됩니다. 그때 아는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은 이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히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들리면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이끌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32~34절입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예수님이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십자가에 들리는 그 자리로 이끄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항상 있다는 이야기를 알지만 예수님께서 들려야한다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제자들은 비로소 십자가의 완성을 공개적으로 전하지만 여전히 이 세상은 그 십자가가 비밀로 보이는 것입니다.

 

본문 28~31절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복음의 선포는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종교적인 유대인들과 정치적인 이방인들이 합동으로 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은 유대인 이건 이방인이건 반드시 박해를 가하기 마련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자라고 시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얼마나 불가능한지 모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예수님을 살해한 가해자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27~32절입니다. “27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이 공회에 잡혀 간 것입니다. 이들이 잡혀가면서 미리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앞에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지혜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말이 너희가 전하는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한다고 책망합니다. 책망의 이유는 그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임금을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죄 사함이란 예수님을 내가 죽인 자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일의 증인이며 성령도 이러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당연히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본문 28절을 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몸과 영혼을 이원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양교육을 받아와서 영육 이원론이 훨씬 쉽게 받아집니다. 그런데 히브리식사고방식은 몸과 영혼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어떤 관점에 보느냐에 따라 영이라고도 하고 혼이라고도 하고 몸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몸도 전인을 말하고 영혼도 전인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 것은 전인을 다 죽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세상이 아무리 죽여도 그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끊어내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저주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아무리 죽여도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분은 사람을 영원히 지옥에 보내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두려운 분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이 두려운 사람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29~31절을 다시 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다고 합니다. 참새는 식용 새 중에 가장 값이 싼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가격이 싸면 아주 작은 동전 하나로 두 마리를 살 수 있는데 두 앗사리온 주니 한 마리를 덤으로 주는 그런 하찮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머리카락을 헤아릴 수 있습니까? 하루에 머리카락 몇 개가 빠지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에게 닥치는 모든 환난과 핍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회당에서 출교되고 가정에서 배척당할까 두려워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32~33절입니다. “봉독 여러분은 회사 식당에서나 회식자리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 기도하고 먹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표를 내면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그런 곳에서 예수 믿는 표를 내십니까? 아니면 은근슬쩍 기도하는 척 하면서 넘어갑니까? 이런 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인하고 부인한다는 말씀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회당에서 출교를 당합니다. 회당에서 출교를 당하면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이 듭니다. 고대사회로 갈수록 마을은 집단적인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시골마을은 공동 교육을 자연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아주 나쁜 짓을 하면 마을에서 추방이 됩니다. 이것이 엄청나게 큰 형벌입니다. 그런데 유대 회당이라는 종교집단에서 출교를 당하면 이 보다 더 힘이 듭니다.

 

요한복음 9:18~22절입니다.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아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물어보니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넘깁니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출교하기로 결의하였기에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불이익을 당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북한이 남한을 점령하여 어버이 수령님을 믿지 않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를 다 죽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IS대원들이 인질을 잡아놓고 종교를 묻는다고 합니다. 알라를 섬긴다고 코란경을 외우면 살려주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죽이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주 사소한 이익 앞에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사는 우리들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여 주실 것이고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우리를 하나님 앞 곧 예수님의 아버지 앞에서 부인한다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교회 오래 다니며 성경 좀 안다는 사람들은 피하여 나갈 길을 찾습니다. 그 피하여 나가는 길도 성경 말씀을 근거로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로마서 10:9~10절입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이 말씀을 단지 내 마음으로 예수님을 입고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복음을 전한 당시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유대 회당에서 출교되고 이방인 세계에서도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바울이 증인입니다. 그러면 시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디도서 1:16절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들은 율법주의자들을 말하지만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말합니다.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잠시잠간 후에 멸망하고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으로 확정되는 날이 곧 옵니다. 이 사실을 말로는 하지만 우리의 행위는 어떻습니까? 오늘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영원한 나라로 이사 갈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사람으로 보입니까? 세상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사는 모습이 아니라면 우리는 입으로 시인하여도 행위로는 부인하는 가증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사는 자들을 위하여 영원한 처소를 마련하여 두셨다고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11:16).

 

다시 본문 32~33절입니다. “봉독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람들 앞에 예수님을 시인하였습니까? 부인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다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고 도망갔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베드로는 몇 번이나 부인합니까?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면서까지 부인합니다. 그러면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셔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3년 동안 예수님께서 친히 합숙훈련하면서 제자훈련을 시켜 놓았더니 기껏 한 짓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입니까? 제가 종종 드리는 말씀이 성경의 모든 언약은 하나님의 언약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그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현장은 언제나 인간의 불신앙과 죄악을 배경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언약을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주님의 일하심으로 일어납니다. 손해를 보고 죽음에 넘겨지는 자리에서도 예수를 그리스도 시인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하여 순교를 당하여도 그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만 자랑합니다.

 

누가복음 22:31~34절입니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3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하자 베드로는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게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부인하였습니다. 그때 닭이 웁니다. 닭 우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할 뿐입니다. 만약 베드로가 두 번 부인하였을 때에 닭이 울었다면 정신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예루살렘의 모든 닭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도록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 말씀이 이상하게 들립니까? 우리가 앞에서 본 예수님의 참새 이야기와 머리카락 하나도 다 헤아린바 된다는 말씀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여자 종 앞에서조차 부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모른다고 부인하셔서 지옥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부인하실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조금의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덕분입니다.

 

디모데후서 2:11~13절입니다.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미쁘다는 신실하다는 우리말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으면 함께 삽니다. 참으면 함께 왕 노릇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아니 저는 정말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음의 말씀이 소망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습니다. 신실하지 못합니다. 늘 주님을 배반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한상 미쁘십니다. 주님은 항상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아멘이십니다. 충성이십니다. 그 언약하신 바를 반드시 신실하게 이루시기에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기에 배신한 우리가 용서를 받게 됩니다. 이 용서를 받고 이 은혜를 아는 자라면 세상의 그 어떤 것들이라도 두려움이 대상이 안 됩니다.

 

로마서 8:18~30절입니다. “봉독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이라도 탄식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보이는 것들은 무너져 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덧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영화롭게까지 하셨습니다. 이미 십자가 안에서 묵시 속에서 완료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누가 감히 송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31~39절입니다. “봉독 이 모든 일들을 성도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입니다. 물론 당하지 않고 좀 편하게 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자로 부름을 받았고 제사로 살아가는 길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좁은 문 좁은 길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이런 일을 당하실 때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주님께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고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헤아려 아신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우리를 그것으로 당겨 올리실 때에 이것이 바르게 가는 길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