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31~46 영광의 보좌 앞에서 2017. 8. 13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이 본문의 말씀을 모르시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를 좀 다닌 사람이라면 모르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설교한 본문이기도 합니다. 이 본문의 제목으로 최후의 심판을 말하기도 하고 양과 염소의 비유로 말하거나 영생과 영벌로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영광의 보좌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구원과 심판을 집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 대한 우리의 선 이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들었던 본문의 해석은 불쌍한 이웃들을 잘 돌보면 천국에 간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되면 어느 추기경의 말처럼 예수 믿지 않아도 착한 일하면 천국 간다는 비 복음적인 말이 됩니다. 이런 해석과 적용은 염소가 노력하면 양이 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경은 혈과 육으로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고전 15:30).

 

본문 31절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오신다고 합니다. 인자란 예수님께서 자신을 칭호하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다니엘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인자의 권세와 영광은 소멸되지 아니합니다. 이 예언대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보좌에 앉으셔서 최후의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십니다.

 

32~33절입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십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서 모으십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그 앞에서 모아서 구분하는데 두 종류로 구분을 합니다. 앞에서도 천국비유는 다 구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그 구분은 항상 두 종류였습니다. 버림받음과 구원 받음으로 나누어집니다. 오늘 말씀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합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는 양과 염소가 다 얼룩덜룩하다고 합니다. 양과 염소를 함께 기르지만 저녁에 양의 우리에 들여놓을 때는 양과 염소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들여놓는다고 합니다. 양과 염소를 오른편과 왼편으로 구분합니다.

 

34~36절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며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는 자들은 오른편으로 분류된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오른 편이란 하나님의 보좌를 말할 때에 그 보좌 우편의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른편으로 분류된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상속 받게 되는 이유를 임금님 곧 예수님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합니다.

 

37~39절입니다. 그런데 오른 편으로 분류된 양, 곧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의인이 대답하기를 자신들은 주님께 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혔으며. 병들고 옥에 갇힌 것을 보고 돌보았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자신들은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오른 편에 분류된 의인들은 자신들이 주님께 어떤 선행을 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의인들이 과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있다고 하였을까요? 여기서 말씀이 끊어지고 왼편으로 분류된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왼편에 분류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오른편에 분류된 의인들이 무슨 말을 했을지 짐작이 됩니다. 오른 편에 선자들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도 없다고 대답할 사람들입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말씀을 드리고 왼편의 사람들의 봅니다.

 

41~46절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오른 편의 사람들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그 나라에게 들어가라고 하시고서는 왼편의 사람들에게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오른 편의 선 사람들과 정 반대의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나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오른 편에 선 사람들은 자기들이 언제 주님께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시 않은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말씀하신 최종 심판의 내용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세상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잘 돌보면 천국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이렇게 보는 것 자체가 인본주의적인 해석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얼마나 구제를 잘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압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떤 거지나 노숙자를 대접하였는데 그 사람이 나중에 보니 예수님이었더라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 근거를 오늘 이 본문의 말씀으로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수요일 저녁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면 율법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애굽에서 종으로 나그네로 살았다는 것을 상기시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고 하신 것은 너희가 긍휼을 입어서 출애굽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에서 고아 과부 나그네를 경건한 자들로 표현합니다. 이들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서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구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이런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학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책망합니다.

 

이사야 58:6~9절입니다.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바로 앞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처럼 온갖 절기를 지키며 심지어 금식까지 하는데도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실상은 금식하면서도 오락을 구하고, 종들에게 온갖 일을 시키고, 논쟁하고, 악한 주먹으로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금식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러한 일을 누가 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았고 지키지 못하였을 때에 선지자들이 책망하였지만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핍박하고 죽여 버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기에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말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누가복음 4:16~21절입니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1)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참된 금식을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자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엘리야 때에 이방인 과부가 구원을 받았고 엘리사 때에 이방인 나아만이 구원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과부와 나병환자들이 아니라 이방인을 말함으로 예수님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하여 오신 분을 죽이려고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것을 보고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을 하시면서 정말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증거 되면 세상이 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과 배척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10:34~39절입니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3)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전하는 자를 환영하겠습니까? 배척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과 분리가 일어나며 자기 목숨을 잃어야 목숨을 얻는다는 이 말씀을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리는 다 살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교회당 까지 찾아온 것은 세상과 불화하고 원수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더 잘 살기 위하여 찾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말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받은 제자들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을 갔습니다. 이 땅에 지극히 작은 자로 오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모습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 이미 예언한 그 약한 자, 고난당하는 자, 버림받는 자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마저 바치겠다고 따라 갔지만 결국은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오신 분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그 영을 제자들에게 부어주심으로 이 땅에서 말씀하신 그 내용들을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어내십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였기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복음을 전하게 되면 많은 무리가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창세전에 예비 된 그 나라를 상속할 자들이 이 천국 복음을 듣고 받아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마태복음 10:40~42절입니다.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나 의인이란 다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나 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바로 지극히 작은 자로 오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작은 자에게 냉수 떠 주었다고 상을 잃지 않는다는 이 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를 영접한 것입니다. 그을 영접하였다는 그 사람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런 자는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무엇을 하십니까?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의인과 악인을 나누어버립니다. 지금 세상은 악인과 의인이 함께 섞여 살아갑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회라는 곳도 지금은 함께 섞여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심판대 앞에 세워집니다. 그런데 그 날이 오기 전에 지금 온 세상에 복음이 증거 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을 증거가 되고 있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증거 됩니다.

 

요한복음 5:24~29절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복음을 듣고 믿는 일이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자들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음성을 들들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듣고 이 복음이 들리라는 자는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들이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목자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래서 이들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인자됨으로 인한 심판의 권세가 또 있습니다. 무덤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옵니다. 그때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 자기의 선행으로 선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이런 자들이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일이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율법적인 의나 자기 의로 세운 선행을 의지하는 자가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입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복음 전하는 자가 이런 모습으로 옵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님의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옵니다. 이들이 무엇을 들고 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 그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옵니다. 누가 영접합니까? 참으로 작은 무리들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자들이 다 나를 버렸다고 하고(딤후1:15).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떠났다고 합니다(딤후4:10).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낸 지극히 작은 자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들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런 작은 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자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로부터 예비 된 그 나라를 상속 받게 되는 일들은 이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완성을 믿는 자들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때에 의인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은혜를 입고 정말 놀라운 일들을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나온 것이기에 결코 자기의 행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고전15:10). 그래서 면류관을 주셔도 그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4:10).

 

그런데 악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를 자기의 의로 삼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언제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5:29절의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것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전혀 없다고 하는 자들이 영생에 들어가고 자신들의 행위가 있다고 하는 자들이 영벌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창세로부터 예비 된 그 나라를 상속 받을 사람이라면 그 영광의 보좌 앞에 서기 전에 바로 지금 여기서 그 영광의 보좌 앞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자로 드러날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전부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다 비워지고 오직 주님의 공로만이 우리 안에 가득 담겨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이 무엇인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4:4~8절입니다.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이것이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입니다. 이 복을 받은 자들은 영광의 보좌 앞에서 자신이 한 것은 전혀 없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