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4:1 하늘에 열린 문 2020. 9. 6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오늘은 요한계시록 4:1절 한절의 말씀만 보겠습니다. ‘이일 후에란 요한계시록 1~3장과 4장을 구분합니다. 1~3장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계시는 모습과 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일후에 하늘에 열린 문을 보는 중에 요한에게 처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리로 올라오라고 합니다. 이리로 올라오라고 한 것은 하늘로 올라간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사도도 셋째 하늘에 이끌리어 갔다고 합니다(고후12:2). 하늘로 이끌리어 가서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십니다. 이후에 될 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요한이 십자가 이후에 계시를 받기에 십자가 이전으로 거슬러 갔기에 이후에 될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루어진 일이기에 4:1~20:6절도 지금 있는 일입니다.

 

앞에서 몇 번 말씀드린 대로 4:1~20: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루셨는지를 요한에게 알려주시면서 그 십자가로 다 이루신 일을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이루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재림은 20:7~22:21절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재림 직전의 대환난이라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기 전에 마가복음을 보면서 몇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대환난이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대 환난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보다 더 큰 환난이 없습니다. 그 십자가로 사탄을 이기신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재림의 소식은 지금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의 소식입니다.

 

이제 하늘에 열린 문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예수님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신다고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믿음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이기에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할 수 없는 믿음이 선물로 받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대단한 업적을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들이 어떠한지 알아가는 것도 벅찬 일입니다. 사도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으로 이끌리어 들어가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다 이루어졌는지를 보고 이렇게 기록하여 두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로 성경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진다면 우리도 하늘의 열린 문 안에서 본 일들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믿게 됩니다. 하늘에 열린 문이 보이는 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세상의 문들이 다 막힌 상태가 된 후에 하늘에 열린 문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언제 하늘로 가는 문이 닫혔습니까? 성경에서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처소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이 있는 곳이 하늘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하시기에 하늘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하듯이 하늘나라에는 생명나무가 있습니다(22:2).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타락한 인간이 스스로 생명나무를 먹어 영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천사가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하늘의 문, 생명의 문이 닫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됨으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인간은 수고하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흙에서 태어나 흙에 속한 것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이것을 땅에 속한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영원하신 뜻을 이루시려고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일입니다. 타락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이 있다고 성경이 증거 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을 보이시려고 아담과 하와가 무화가 잎으로 만들어 잎은 옷 대신에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신 겁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늘의 생명을 주시는 일이며 하늘이 열리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11:8~10절입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이란 사람에게서 나온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이기에 믿음이 주체가 된 겁니다. 이런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에게 하늘이 열립니다. 그런데 하늘이 열린 자들의 삶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벨은 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에녹은 다른 사람의 삼분의 일만 살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살이와 그 성취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노아는 은혜를 입어 방주를 만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야 합니다. 이러한 자들의 삶의 모습은 세상에서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하나님이 지으시고 거하실 터를 바라보게 되는 일이 하늘이 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열리는 일은 땅에서의 소망이 끊어지는 자리가 됩니다.

 

창세기 28:10~19절입니다.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1)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사방팔방이 다 막히고 도망가는 중에 하늘의 열린 문을 봅니다.

 

에스겔 1:1~3절입니다.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야곱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후에 형이 죽이려고 하자 외삼촌 집으로 도망가는 중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됩니다. 이들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늘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야곱이나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리는 시점은 사람으로 완전한 절망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에게 하늘이 열린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앞으로 어떻게 이루실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고 그 성전에서 생명수가 나올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무려 4백 년 동안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다는 것은 하늘이 닫힌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키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모든 생활 속에서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자기들을 스스로 분리시킵니다. 그래서 바리새파라고 합니다. 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려고 율법의 부칙까지 만들어 지키고 있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았기에 율법의 의로 자기들을 치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세례요한의 외침입니다.

 

마태복음 3:13~17절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하늘이 예수님께 열리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일입니다(6:29).

 

요한복음 1:47~51절입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사닥다리를 본 그 사닥다리가 예수님임을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0:7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예수님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시기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14:6).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시는데 자기 백성들도 묵시적으로 함께 하늘에 앉히십니다(1:20, 2:5,6). 그러므로 하늘이 열리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보좌에 계신 것이 보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도행전 7:55~60절입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하늘의 문이 열린 자들이 구약에 어떤 자들인지 신약에서 어떤 자들인지 성경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하늘에 문이 열린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감추어져 있기에 사람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세상의 문이라는 문이 다 닫힌 상황이 되지만 그 사방팔방 다 막힌 자리에서 하늘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돌에 맞아 주어가면서도 하늘이 열리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영광 중에 계심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보이니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10:10~16절입니다.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선민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보내시려고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하늘이 열리면 알량한 율법주의가 깨어집니다. 자기가 복음 안다는 지식도 깨어집니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도 하늘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지금 하늘이 열리는 것은 기록된 말씀이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마음에 믿어집니다. 이런 자들은 하늘이 열린 자들입니다. 이렇게 하늘이 열린 자들은 지금 살아가는 모든 땅의 삶이 감옥 같더라도 잠시잠간 지나가는 것으로 여깁니다. 코로나19로 다 힘들어합니다. 어떤 전문가는 2년은 갈 거라고 합니다. 2년이 아니라 20년이라도 하늘이 열린 자는 넉넉히 견뎌냅니다.

 

히브리서 10: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성전의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지성소는 짐승이 피가 아닌 예수님의 피로만 열립니다. 그 피를 힘입어 하늘의 영원한 성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문은 살아있는 문이라서 사람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이 찾아옵니다. 야곱은 도망가다가 하늘이 열렸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그곳에서 하늘이 열립니다.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를 당하였지만 그곳에서 하늘이 열린 겁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문이 막혔다고 할 때에 하늘이 열립니다. 세상의 믿던 것들이 끊어짐으로 십자가가 보입니다. 이런 자들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늘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이 질그릇인 우리 안에 담겼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