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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22:13~15 마지막 복 2022. 3. 27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지난주에 이 본문에서 13절을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오늘은 14절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고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여러분 보았습니다. 거룩한 성은 지상의 건물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은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모든 성도 곧 어린 양의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의 복은 생명 나무에 나아갑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복인데 성경의 마지막 복입니다.

 

성경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옷 이야기는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함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죄를 짓기 전에는 옷이 필요 없었습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다는 것은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는 상태는 자신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고 나니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하여 행한 일이 나뭇잎으로 가린 것입니다. 두려움을 피하려고 나무 아래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죄인을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죽옷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짐승의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려주시지 않으면 인간은 평생 부끄럽고 두려워서 자기를 가리는 일만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자기를 치장하고 포장하고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쌓이는 것들은 결국 자기의 의로 치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옷으로 비유하여도 됩니다. 자기 옷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업적을 옷처럼 입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그것은 나뭇잎에 불과한 것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가 있습니다. 명품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겁니다. 옷 한 벌, 시계 하나에 수억 원의 가격을 매깁니다. 그런 것들로 늙고 병들고 섞을 몸에 걸친다고 사람의 몸이 명품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도 죽으면 흙밥이 되고 구더기가 파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성경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이 없는 자들은 끊임없이 세상의 것으로 자기를 치장합니다. 심지어 죄를 알라고 준 율법마저 자기를 치장하는 자의 의로 사용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사야 59:1~2절입니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우리는 이런 말씀을 가지고서도 내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면서 또 방법론적인 회개를 알려줍니다. 그런 회개란 그동안 내가 떼먹은 십일조를 하라는 겁니다. 그동안 행하지 않는 주일성수도 해야 하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돈으로 환산하여 내라고 합니다. 이런 식의 회개란 죄악에 죄악을 더하는 일입니다.

 

이어지는 3~8절입니다.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 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6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인간이 만들어 입은 옷이 전부 이런 옷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이사야 61:1~3절을 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영이 임한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 구원의 대상들은 가난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와 포로 되고 갇힌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슬퍼하고 재를 뒤집어쓰는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이 오직 은혜로만 되는 것임을 성경은 늘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구원의 옷, 의의 겉옷을 입혀주십니다. 이런 자들은 단 한 올도 자기가 만들어 입은 옷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61:10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신랑에게 제사장의 관을 씌우듯이, 신부를 패물로 단장시키듯이, 주님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시고, 의의 겉옷으로 둘러 주셨으니, 내가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새 번역으로 본 이유는 사모를 썼다는 표현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화로 신랑이 결혼식 때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지만 새 번역은 제사장의 관을 씌운다고 하였습니다. 신랑 신부의 단장은 최고의 단장입니다. 이런 완벽한 단장을 구원의 옷이라고 하고 의의 겉옷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옷마저 더럽혀집니다.

 

스가랴 3:1~3절입니다.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냄새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기에 사탄이 대적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어지는 4~5절입니다.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여호수아는 타는 불구덩이 속에서 끄집어낸 그슬린 나무처럼 더러운 옷을 입고 있기에 사탄이 대적하지만,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을 책망하지 않고 사탄을 책망하시면서 천사들에게 여호수아의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합니다. 더러운 옷을 벗긴다는 것은 여호수아의 죄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합니다. 그때 스가랴 선지자가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워달라고 하니 관까지 씌우고 옷을 입힙니다. 이사야서에 본 구원의 옷과 의의 겉옷을 입은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6~10절을 봅니다.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본 환상의 내용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그래서 싹이라는 말과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이라는 내용이 다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그래서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다고 합니다. 일곱 눈이 있다는 표현이 요한계시록 5:6절에 나옵니다.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는데 이 눈들을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3:9절에서 일곱 눈을 새긴다는 말씀과 함께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한다고 합니다. 죄악을 하루에 해결하는 사건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십자가로 이루어내십니다. 그 구원을 받은 자는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합니다.

 

요한복음 1:47~49절입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려가라고 한 말이 율법과 선지자들이 증거 한 그 선지자를 만났는데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빌립이 일단 와보라고 해서 나다나엘을 데리고 갈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방금 읽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자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느냐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나다나엘이 갑자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합니다.

 

나다나엘이 이런 고백을 한 이유는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할 때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산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왕상 4:25, 미가 4:4, 3:10).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향하여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고 하신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사함 없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을 성경은 은혜로 남은 자라고 합니다(11:5). 그러므로 복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로마서 4:1~8절입니다. “1 그런즉 1)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ㄱ)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행한 대가로 받은 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죄인이라서 그들의 행한 대로 받는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영원한 사망인 둘째 사망에 들어가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복은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은 것입니다(15:7, 3:16).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 불법이 사함을 받고 그 죄가 가려짐을 받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죄가 가려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있는 한, 곧 이 몸이 있는 한 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물론 묵시적으로는 죄와 사망이 우리의 왕이 아니라 의와 생명이 우리의 왕이기에 완성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받은 우리가 탄식하면서 몸의 구속을 기다림이 이 역사 속 그리스도인들의 실존입니다(8:23). 그러므로 성도의 복이란 우리의 죄가 가려짐을 받는 것이 복인데 이 복을 주시기 위하여 죄 없는 분이 벌거벗겨집니다.

 

요한복음 19:23~24절입니다.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ㄱ)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겉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가져갑니다. 속옷은 통으로 짠 옷이라서 찢지 말고 제비뽑아 나누어 가져갑니다. 이렇게 된 일도 시편 22:18 말씀이 성취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벌거벗겨진 죽음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벌거벗겨져 죽음으로 우리의 죄와 수치를 가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에덴동산에서 가죽옷으로, 노아 홍수 때 정결한 짐승의 희생으로, 율법에서 정결한 짐승의 희생 제사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들의 성취를 십자가로 다 이루셨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봅니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려는 자들입니다. 율법주의이며 영지주의자들이며 온갖 인간의 공적 사상을 말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보았던 계시록에서 의의 옷을 살펴보겠습니다.

 

계시록 3:4~5절입니다. “봉독 사데 교회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고 입은 자들이 몇 명이라고 합니다. 그 옷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입혀주신 의의 옷입니다. 그 의의 옷을 입은 자 곧 그 옷을 더럽히지 않는 자의 이름을 예수님께서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신다고 합니다.

 

계시록 3:18절입니다. 봉독 자기들이 부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부유한 교회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온갖 일들을 다 하였을 겁니다. 오늘날도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면서 보암직한 일들을 하였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벌거벗은 모습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완벽하게 부끄러움을 가려줍니다.

계시록 4:4절입니다. 봉독 흰옷을 입은 이십사 장로들이란 구약과 신약의 구원 얻은 자들의 대표성을 보여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들이 입은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은 옷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머리에 쓴 관을 보좌 앞에 돌려드림이 마땅합니다(4:10).

 

계시록 7:9~14절입니다. 봉독 144천이 흰옷 입은 큰 무리입니다. 이들은 모두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계시록 16:15절입니다. 봉독 여기서 자기 옷을 지킨다는 것은 주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계시록 19:7~8절입니다. “봉독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그 준비는 아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 준비하여 준 것을 받아 입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랑이 자기 생명인 그 피로 만들어내신 그 세마포 옷을 입는 일이 성도의 옳은 행실이며 이들은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완벽한 신부입니다(2:26~27).

 

오늘 본문 14절을 봅니다. 봉독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복입니다. 이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입혀주신 의의 옷을 다른 것을 붙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주 장례식에 가보니 고인이 훈장 받은 것을 영정 사진 밑에 둔 것을 보았습니다. 고인이 자랑스러워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 세상의 어떤 훈장도 공로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그 피 외에 다른 것을 덧붙여져 있다면 씻어내어야 합니다. 자신이 순교하였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된 것이지 자기 공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보좌에 계신 이와 죽임당한 어린 양이 찬양받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