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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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7-25 준비하여 기다리라 2010. 6. 20

 

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1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14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15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준비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하니라

 

2001.1.17일에 출애굽기를 시작하여 그해 11월 11일에 출애굽기 19:6절까지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어떤 분이 출애굽기 나머지 부분은 어떻게 되느냐고 해서 나중에 다시 시작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이 저의 설교를 읽고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출애굽기를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 뒷부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말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나온 기록입니다. 출애굽의 의미는 아주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머물러 살지 않고 그 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고향에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고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시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떠남으로부터 믿음의 여정이 시작이 되는 것처럼 이제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떠남으로 민족적인 믿음의 여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의논한 것도 별세를 의논하신 것입니다. 별세가 출애굽입니다. 온 세상이 애굽이니 출 세상인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인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을 벗어난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탈출을 합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가 갈라져서 마른 땅처럼 건너고 뒤를 추격하던 애굽의 병거들을 바닷물에 수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언약을 체결하는 것이 출애굽기 19장에서 24장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언약체결장면입니다.

 

먼저 1-6절을 봅니다. 시내산 앞에 도착하여 진을 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집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어떻게 구원받아 나왔는지 너희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다고 하십니다. 이 소유란 특별한 소유로 보배같이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7-8절입니다.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합니다. 그러자 백성이 일제히 응답합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겠다고 합니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합니다. 모세는 언약의 중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언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셔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한 하나님께서 임하시면 거룩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만날 준비를 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볼 내용이 있습니다. 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명하신 대로 다 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때는 백성들의 마음이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진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곧 금송아지로 무너집니다. 언약의 돌 판을 받기 위하여 40일 동안 시내산에 머물 때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긴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10계명의 말씀을 듣고 난 이후입니다. 그러니 다 지키겠다고 한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배반한 것만이 아니라 약 40년을 지나면서 10번이나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합니다. 10번이란 큰 사건을 중심으로 말한 것이지만 그 배반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하여 속으로 배반하고 싶은 마음이 활화산처럼 속에서 끓고 있다가 나온 것입니다.

 

신명기31:20-22절입니다.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약40년 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노래로 가르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언약을 어길 것을 알고 이 노래가 증거가 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신명기 7:7-8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다른 민족보다 적은 민족을 택하신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선택은 하나님의 사랑과 언약을 보여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어부들이며 세리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배신을 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하였습니다. 닭이 울 때 정신을 자신이 부인한 것을 알고 슬퍼하였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어떻게 사도가 됩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선택이며 제자들의 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구약의 백성들은 잘 모릅니다. 자기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서 순종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는 것을 맞이하기 위하여 3일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옷을 빨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고 3일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경계를 정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오면 다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누가 과연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가 멀리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시는 것만으로도 두려워서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봅니다. 주위에 경계를 정하여 그 이상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합니다. 산을 침범하는 사람을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면서 가까이 하게 못하시는 것은 거룩한 분을 뵙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기에 하나님은 스스로를 빽빽한 구름으로 감추십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이미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범죄 한 이후에 쫓겨난 인간이 에덴동산으로 들어와서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지 못하도록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이 차단 된 것입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강림하신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심입니다.

 

이렇게 멀리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0절과 14절과 15절을 보시면 3일 동안 성결하게 합니다. 옷을 빨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자기 옷을 빤다고 하니 요한 계시록의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한 말씀이 기억이 날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옷을 빨아야 하는데 신약에서는 그냥 옷을 빠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려면 옷을 빨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모델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6-25절을 봅니다. “봉독” 드디어 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떱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와 그들이 산기슭에 섭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시니 그 연기가 옹기점의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십니다.

 

모세에게 올라오게 하시고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에게도 그들의 몸을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한다고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경계를 정하여 올라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넘어오면 그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세는 가까이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까? 출애굽기 33:18-23절입니다.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은혜와 긍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룩하신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 종이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4절에 보시면 여자에게서 나시고 율법아래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접하였습니까? 조롱하고, 침 뱉고, 얼굴을 손으로 치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멀리 산꼭대기에 빽빽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셔도 백성들이 벌벌 떨 수밖에 없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 거룩하심으로 산이 불이 붙고 시내 산이 진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하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에게 죄를 정하셔서 십자가에 죽이심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세를 통하여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시내 산이 진동하였던 그 거룩하신 분의 임재가 이제는 시내산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진동하면서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8-21절을 봅니다. “봉독”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른 곳을 말씀합니다. 얼마나 두려운지 사람들이 더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습니다. 계속 말씀하시면 죽을 것 같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곳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 명령을 그들이 견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가 이른 곳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22-24절입니다. “봉독”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는 것을 말하는 뿌린 피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요한계시록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어린 양의 피로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 천상의 모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25-29절을 봅니다.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고 합니다. 땅에서 경고 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모세는 땅에서 경고하였습니다. 그 경고를 무시한 자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반하는 우리는 더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모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시키겠다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땅과 하늘을 다 진동시키시는 것입니까?

 

진동하지 아니할 것만 남기시기 위하여 마구 흔들어서 진동할 것들은 무너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속하여진 것들, 변동될 것들을 흔들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하늘과 옛 땅은 종이축이 말리듯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붙들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진동되고 변동됩니다. 다 흔들리는 것들입니다. 내가 아무리 꽉 잡고 있는 것이라도 내 손이 힘이 빠지고 흔들립니다. 나이 들면 다 흔들립니다. 이빨도 흔들리고 임플란트 한 것도 흔들리고 손발도 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예 하늘과 땅을 다 흔들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 맞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것을 붙들지 말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나라를 받았다면 그것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아니하는 나라는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은혜로 받았기에 다시 은혜를 받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위에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다시 만나시기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여야 합니까?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옷을 빨아 입어야 했습니다. 이제 땅만 아니라 하늘까지 흔들어버리실 하나님 앞에 준비할 것은 오직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 안에서만이 영원히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