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를 원하시면 글작성시 게시판 상단 [비밀글기능]에 체크후 작성바랍니다
어려서부터 많은 분들에게 성경을 배우며 예수 안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수 안에서의 구원도 교파마다 목회자 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조금씩 때로는 상당부분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습니다.
한 쪽 논리로 보면 다른 쪽은 구원을 못 받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목사님 설교를 인터넷으로 접하면서 십자가 복음에 관해 많이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다른 분들에게 들었던 바로는 십자가, 십자가 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의 고통을 강조할 뿐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 분의 희생과 사랑, 부활의 영광을 소홀히 한다고 했습니다.
즉, 중세시대의 십자가 원정처럼 상대적 자기 우월감에 도취된 논리이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분담을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잘못된 길로 안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주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지 도달해야 하는 점은 예수의 부활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도
"But God forbid that I should glory, save in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by whom the world is crucified unto me, and I unto the world." (KJV)
십자가가 아닌 십자가에서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which가 아니라 whom. 즉 십자가가 아닌 예수의 구원이 강조라는 것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배운 내용이라 그런지 이 부분이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계속 충돌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유익함에도 매력을 느끼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완고함에도 거부감이 있습니다.
어떻게 정리하는 것이 좋을까요?
언약을 따라서는 받아서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든 예수복음이든 구원복음이든 부활복음이든 영생복음이든 명칭과 이론에 관한 것은 핵심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긍휼로 형제된 하나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현실에서 여러번 만나본 적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으로 타인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즉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하러 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연상됩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이 율법으로 타인은 부정하고 자기 의를 쌓는다면 회칠한 무덤과 다름이 없습니다. 정작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전도자가 한 젊은 사람에게 왈, '너는 전적인 타락을 믿느냐?'하자
젊은 사람이 '나는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다만 만물중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심하게 부패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십자가 복음 전도자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예수를 믿는 믿음이 좋냐고 자부하냐'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불편해하며 '나는 예수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실제로 믿는다는 것이지 믿음이 좋다 나쁘다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 후 옆에 섰던
십자가 복음 전하는 담임 목사에게 '내가 저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하자 목사가 그 젊은이에게 '십자가 복음 이외는 구원이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이 말하기를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일이 하나님이 받으신 대속물이 되신 것은 아나 십자가 복음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고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고 하자 목사와 전도자가 그 젊은이를 형제로 여기지 않고 핀잔을 주며 떠나라 했습니다.
과연 십자가 복음이 바리새인의 율법처럼 작동되지는 않는지요?
얼마든지 그렇게 작동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사용합니다.
그런데 저는 칼을 강하게 사용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교인들 중에 다른 말을 하는데 자르지 않는다고
십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목회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십자가 복음이라고 말하는 분들과 오랫동안 교제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소원하여 졌습니다.
저는 같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분을 초청하여 설교도 부탁하고
또 함께 교제의 자리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조금만 자기들과 다르면 다른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저는 같은 방향성이라고 교제를 할 때에
가장 간단한 표현으로 전전타락과 전적은혜를 인정하면 교제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 표현이 나와 용어가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전적인 죄인입니다.
그래서 전적인 은혜여야 함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고린도전서 1: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전한다면 자신이 예수를 살해한 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믿게 된 겁니다.
그러므로 오직 은혜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복음을 믿게 되었다면
그 복음으로 중세시대처럼 사용하거나
고통만 말하거나
통과의 의례만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저주 받아 죽는 죽음으로 보이고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고 어리석은 죽음으로 보이는데
무엇을 다 이루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겁니까?
창세전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심이 십자가이며
구약의 모든 언약과 예언의 이루심도 십자가입니다.
묵시적으로 신약의 모든 내용도 십자가로 이루십니다.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과 복음 선포와 재림도
이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됨을 증거 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를 위하여 지으진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골1:16).
이런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책이
'언약을 따라서'입니다.
약 10년 전에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라 부족함이 많지만
참고하여 보시려면 주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주소 공개하지 마시고 저의 폰으로 알려주세요!
홈피 좌측 제일 아래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