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20장 세상의 심판 2013. 6. 23

 

20:1~7. 토막 난 시신을 본 이스라엘 전체가 깜짝 놀라서 칼을 빼는 자 40만 명이나 모였습니다. 자초지종이 어떠한지를 레위인에게 듣습니다. 레위인이 자기가 당한 일을 이스라엘 전체에 고하고 이스라엘 중에 음행과 망령된 일에 대하여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내라고 합니다.

 

8~11. 모든 백성들이 일제히 말합니다. 한 사람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고 기브아 사람을 치자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중의 십분의 일을 제비 뽑아서 군량미를 준비하게 하고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들을 치려고 모였는데 1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이들은 끔찍한 사건을 보고 듣고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며 정의감으로 충만해 졌습니다.

 

12~16.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에 사람들을 보내어 그 악행한 자들을 우리에게 넘겨서 그들을 죽임으로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자손의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모였는데 칼을 뺄 수 있는 자가 이만 육천 명이며 그 외에 물맷돌을 정확하게 던지는 사람 칠백 명이 있습니다.

 

17~23.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을 치기 전에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봅니다. 언약궤가 실로에 있었는데 이때에 언약궤와 제사장이 벧엘에 와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을 쳐야하는지 물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유다가 먼저 가라고 하셨습니다. 응답을 받고서 갔는데 2만 2천명이 죽고 패배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묻고 응답받아 갔는데 왜 패배하였을까요?

 

이것은 자기 의로움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치러갈지 말아야 할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당연히 베냐민 지파는 진멸당하여야 한다고 여겼기에 누가 먼저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자기 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패배하고 나서 스스로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저물도록 울면서 묻습니다. 내 형제 베냐민과 싸워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한번 패배를 통하여 처음의 정의로움으로 충만한 것들이 많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싸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누가 올라 갈 것인지만 물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싸울지 말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다시 싸우라는 응답을 받고 갑니다.

 

24~28. 다시 응답을 받고 나갔지만 이번에도 패배하여 1만 8천명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이 벧엘에 올라가서 울며 그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번제는 자기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화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의 패배로 인하여 자기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함을 알게 됩니다. 자기 정당함이 부인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울며 금식하며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나서 다시 응답을 받기를 내일은 붙여주실 것이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29~48. 지금까지 그들은 자기들의 의와 군사적인 숫자만 믿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주 상세한 작전을 짜서 나갑니다. 아이 성에서 실패하고 난 후에 그들의 악을 제거하고 나서 상세한 작전을 받아서 간 것과 같은 모양으로 적을 칩니다. 베냐민이 패배하여 도망간 자가 600명 뿐 입니다. 이들이 광야로 도망가 림몬 바위에 넉 달 동안 지냅니다. 그 사이에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는데 성읍과 남녀노소 가축까지 다 진멸하고 성읍을 불살라 버립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베냐민 지파가 행악을 행하였고 그들이 진멸당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의 11지파가 두 번이나 패배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너희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일에 똑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패배를 당할수록 자기들의 죄를 보면서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였을 때에 베냐민을 심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레위인의 첩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주에 성도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레위인의 첩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20:4절에서도 죽임을 당한 ‘여인’이라는 말이 성숙한 여인이라는 ‘하이샤’로 되어 있습니다. 죽기 전에는 첩으로 소녀로 불렸는데 죽고 나서 성숙한 여인이라고 불러집니다. 이러한 성도의 죽음으로 인하여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는 여인을 잡아 와서는 모세 율법에 의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사사기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이 든 자로부터 젊은이까지 다 떠나고 그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너를 정죄 하는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여인에게 묻습니다. 여인이 아무도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여인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그러면 여인이 범한 음행의 죄는 어떻게 됩니까? 누가 담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심판하셔야 합니다. 그 죄의 심판을 예수님께서 담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들이 정당하다고 죄인을 죽여야 한다고 고함친 그들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자가 예수님이란 말씀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죽어야 하는 죄인인줄 모르고 남을 정죄하기에 빠른 자들입니다. 이들은 남을 정죄함으로 상대적으로 자신의 죄를 숨기면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세상이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29~36절입니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의인의 피 소리가 하늘로 호소하여 이 땅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 피를 흘린 자들이 자기들은 의롭다고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하여 흘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피가 어떻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27:24~26절입니다.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어떤 사본에는 이 사람의 피라는 말을 이 옳은 사람의 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옳은 사람의 피를 흘렸다면 누가 그 피 값을 담당해야 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구약의 모든 의인의 피는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증인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합류됨으로 그 세대의 사람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의 피를 흘린 이 땅이 심판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18:20~24절입니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바벨론으로 지칭되는 이 세상이 멸망하는 이유는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도의 죽음과 신약 성도의 죽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 피 앞에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자와 그 피를 흘린 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자기 죄를 고백하는 자로 나누어지는 것이 복음이 선포되는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세상의 심판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의 앞길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에 의하여 죽임 당하는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 홀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 길로 인도됩니다.

 

이런 예화로 마치겠습니다. 어느 사람이 물 항아리 두 개로 우물에서 물을 져다 나릅니다. 그런데 하나는 온전한 항아리이고 하나는 금이 간 항아리입니다. 금이 간 항아리는 우물에서 집까지 오면 거의 절반의 물이 새어버립니다.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항아리가 자기를 폐기처분하고 새 항아리를 사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하는 말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 돌아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금이 간 항아리가 있는 쪽의 길가에는 풀이 자라고 꽃이 피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을 하나도 흘리지 않는 항아리가 있는 곳에는 메마른 땅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설교의 이 예화를 듣고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겼다고 합니다. 질그릇을 치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질그릇은 금이 가고 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 보배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깨어져야 할 질그릇을 치장하느라고 정작 드러나야 할 보배는 감추어집니다. 그러므로 더 깨어지시기 바랍니다. 더 물렁물렁 해 지시기 바랍니다. 다름 사람들에게 잡아먹히시기 바랍니다. 그로 인하여 어떤 사람이 생명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이것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백성입니다. 반대로 이런 모습을 사망의 냄새로 맡는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심판에 이를 자들입니다. 각자의 삶이 어떠한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1~14, 고린도후서 2: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