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사사기 21장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 2013. 6. 30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잘못된 일에 대하여 자기를 탓하지 않고 남을 탓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담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을 담아두는 것이기에 우리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사기의 결론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도 이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법을 정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집행하다가 한 지파가 진멸 당하게 되자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3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여호와께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20:48. 베냐민 지파의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불살랐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진멸전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에 대한 전쟁인데 자기 동족에게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11지파가 베냐민에게 두 번이나 패배함으로 자기들의 죄도 알아야 하는데 세 번째 승리가 주어지자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진멸하여 나간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겨우 피한 600명 외에는 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광야 림몬 바위에 이르러 넉 달을 지내는 동안 나머지 11지파가 정신이 들었습니다.

 

21:1~7.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을 때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고 맹세합니다. 이것은 가나안 족속들에게 딸을 주지 말라고 한 율법을 자기 동족에게 한 것은 베냐민을 이방인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그 맹세를 하고 전쟁을 하여 한 지파가 이제 끊어지게 됨을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큰 소리로 울며 항의합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정의감에 사로잡혀 적을 물리치게 되면 과도한 심판을 집행하게 됩니다.

 

율법에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있는 것은 과도한 보복을 삼가기 위한 조치입니다(출21:23~25).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동태복수를 넘어서 한 지파를 진멸하게 될 지경에 이른 것을 알고서는 이들 지파를 살릴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울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여호와의 응답을 묻지도 않고 자기들 뜻대로 결정하고 행합니다. 그 내용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맹세하였습니다. 벌써 맹세를 두 번이나 합니다. 이들의 맹세는 여호와께 묻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맹세하고서는 그 맹세를 어길 수 없다고 하면서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은 여호와께 맹세한 것을 지키려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자기들이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8~15. 그들의 맹세대로 여호와의 총회에 올라오지 않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여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와 남자를 칼날로 치고 남자와 자지 않는 젊은 처녀 사백 명을 데리고 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여호와께 물어서 응답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사백 명을 베냐민의 지파의 도망간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하고 보내지만 아직 200명의 여자가 부족합니다.

 

16~23. 그들의 대의명분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아내를 주어야 하는데 자기들이 베냐민 지파에 딸을 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하였기에 이것이 두려워서 딸을 주지 못한다고 하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한 것이 여호와의 절기에 실로에서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올 때에 그들을 붙들어 가도록 베냐민의 남은 200명에게 말한 것입니다. 만약 그 딸들의 가족이 와서 항의하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라고 하면서 그들의 아내를 주지 못하였기에 그렇게 되었지만 너희가 자의로 준 것이 아니기에 죄가 없다고 하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머지 200명도 아내를 얻어서 그들의 기업에 돌아가 성읍을 건축하고 살았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에서 각 지파대로 돌아갔습니다.

 

25. 사사기의 총 결론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고 합니다. 마지막 단락은 자기들이 스스로 한 지파를 구하기 위하여 자구책을 마련하여 한 지파를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 단 한 번도 여호와께 물어보고 응답을 받아서 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맹세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법을 정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법을 집행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을 죽이면서 베냐민 지파가 끊어지는 것을 막아내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님의 아들을 만들어 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사사기의 결론으로 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야곱의 12아들로 시작이 됩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것은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 뼈가 위골되고 나서 얻은 이름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실력으로 12아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이루심을 통하여 12아들이 나온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물론 환도 뼈가 위골되기 전에 아들들을 낳았습니다만 그 아들들이 야곱의 능력이 아님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35:11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와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고 하십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은 야곱의 허리가 부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허리가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남의 허리를 부러뜨려서 12지파를 이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법을 정하고 자기들이 집행한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보여줍니다. 사사시대의 11지파가 한 지파가 끊어질 것을 보고 슬퍼하면서 그들을 살리기 위하여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 자기들의 헛된 맹세를 가지고 남을 죽여서 이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적 이스라엘의 모습임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자기들의 맹세를 어기면서 자기 딸을 내어주는 그런 모습이 자기희생으로 되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이들이 보여준 것은 인간들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희생으로 만들어 내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에 12명을 부르신 것입니다. 구약의 12지파에 대응하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룟 유다를 부르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배신하는 가룟 유다는 사도들의 이름 중에 12번째입니다. 구약의 11지파의 대적이 된 자가 12번째 아들인 베냐민입니다. 베냐민이 이스라엘 전체를 대적하다가 진멸할 지경에 11지파의 자구책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배신하고 자결합니다. 이 자리를 어떻게 이어가느냐 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15~26절입니다. “봉독” 맛디아가 제비로 뽑히지만 단 한번 도 그 역할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계속하여 12라는 숫자가 중요하다면 나중에 야고보가 순교한(행12:2) 후에도 다른 사도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 대신 다른 사도를 채워 넣지 않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령 임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란 혈육적인 12의 의미가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친히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성령으로 덧입혀서 자기 아들을 만들어 내십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골3:11).

 

요한계시록 21:6~7절입니다.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기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데 그들은 생명수를 값없이 얻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성문과 문의 기초가 되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숫자놀음에 미혹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만 만들어내는 것이지 어떤 율법적인 조건이나 특정한 교파나 교주의 이론이나 사람의 힘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