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9~11 그리스도의 날까지 2018. 1. 21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1)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감사를 한 후에 빌립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복음을 듣고 난 많은 사람들의 첫째 반응이 기도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기도라는 것이 자기의 탐심을 따라 기도한 것이 들킨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씀이 있지만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는 말 안에는 복음이 아닌 세상의 정욕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한 것입니다. 복음이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딤후1:10). 그런데 우리의 기도의 내용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를 구하면서 그러한 것들의 성취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은 사실 마귀의 유혹입니다. 이런 것들은 기도의 내용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봅니다. 바울사도가 기도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계속하여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그 기도의 첫째 내용은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도록 기도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으로 성도가 서로 사랑합니다. 많은 환난과 극심한 가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연보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지만 바울사도는 다시 기도하기를 그 사랑에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풍성하도록 기도합니다. 나중에 본문에서 나옵니다만 교회 안에서 다툼이 있었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기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기서 너희 사랑이라고 하는 이 사랑은 그들에게서 나온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로 주신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어떤 것인지 로마서 5:5절을 봅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소망이 부끄럽지 않다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우리가 가진 소망을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5:1~4절을 봅니다. “봉독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자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면서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환난도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내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환난 중에 기뻐하며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세상이 볼 때는 부끄러운 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5:5~11절입니다. “봉독우리가 연약할 때에 기약(期約)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신 그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가 없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다 왜곡되어 자기중심의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때로는 이타적인 사랑이 있다고 하여도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을 풍성하게 알아가라고 합니다.

 

본문 9절을 다시 봅니다. 바울이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도록 기도합니다. 이미 받은 사랑이지만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부어진 그 사랑을 바로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5장을 본 것도 하나님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하여 찾아본 것입니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것은 아주 깊은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지식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러한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그 사랑이 더 풍성하여 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사랑을 하는데 분별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한 개인을 사랑하는 것이나 가족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것도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폭력을 사용하거나 괴롭히는 일들이 뉴스에 많이 등장합니다. 이런 사랑은 맹목적이고 이기적이라서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촛불을 든 사람들도 태극기를 든 사람들도 나라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저는 애국자가 한 사람도 없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각 나라에 애국자가 한 사람도 없으면 전쟁을 하자는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세상입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는 말씀에 각주가 있습니다. 각주를 보면 같지 않은 것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보면 시험하여 보라고 합니다. 복음, 예수, 영이라고 해도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 있듯이(고후11:4) 사랑이라고 하지만 다른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테스트하여 보고 어떤 사랑이 참된 사랑인지 분별하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말합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세상의 썩어질 것을 구하는 일에 뛰어난 기술자를 만들어 내려고 하면서 너를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고 정말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1~13절입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1)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2)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에 대하여 읽기만 하였습니다. 이 엄청난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옳게 배우고 분별하며 이런 사랑이 풍성하여지도록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저에게 자주 전화가 왔던 부산의 한 전도사님이 최근에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 복음을 듣고서는 교회와 교인들을 비판하는 것만 가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와서 그것이 얼마나 교만인지를 알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며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되도록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대하여 말씀을 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에서도 그리스도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구약 성경전체가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다린 그리스도는 그들의 민족적인 선민의식을 만족시켜줄 그리스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오면 그들이 구원 받을 날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 전혀 다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기대한 여호와의 날, 메시아의 날, 그리스도의 날, 주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이 날이 됩니다.

 

아모스 5:18~24절입니다. “18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21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24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와 공의가 없이 온갖 우상숭배와 학대가 가득한 삶을 살면서 종교적인 의식을 열심히 행하고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고 성회라고 모입니다. 번제나 소제를 드리고 찬양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받지 않고 돌아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거짓 선지자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의식들을 잘 하면 여호와의 날에 구원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선지자들은 이러한 행태를 향하여 화 있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외침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외식하는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 진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배척받고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날을 기다렸지만 실패한 것처럼 오늘날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20~23절입니다.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을 우리는 어떤 행위의 열매들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엄청난 행위들이 나온 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을 많은 권능을 행하였습니다. 이 정도의 열매들이 나왔는데도 주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어떤 열매가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봅니다. 우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바울사도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 신앙생활이 그리스도의 날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그날에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아모스와 5장과 마태복음 7장을 연결하여 본 것은 구약에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기다린 자들이 맞이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그 그리스도의 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지난주에 본 6절 말씀처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빌립보 교회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는 이미 지난주와 오늘 말씀에서 확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연약할 때에, 죄인 되었을 때에,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인과율적인 지식으로 결코 알 수가 없는 지식에 넘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어주실 것을 바울 사도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봅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 6: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베드로 사도도 베드로후서 3:13~1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그리스도의 날에 허물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되어야 그리스도의 날에 허물없이 설수가 있습니까?

 

에베소서5:25~27절입니다.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남편과 아내를 이야기 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말합니다. 교회의 남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멋진 신랑이 되시는지 그가 십자가에 물과 피를 흘리십니다.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고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한 신부는 남편 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티도 주름도 흠도 없이 거룩하게 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의 이 기도는 9절부터 시작되는 하나의 기도입니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불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미암는다는 말은 주체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11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담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내가 억지로라도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힙니다. 억지로 맺은 것은 나의 공로가 들어가지만 저절로 맺힌 것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10~13절입니다.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2)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3)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4)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 말을 얼마나 오해하는지 빌립보서나 에베소서의 이런 말씀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려놓아서 그렇습니다. 초등학문이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그 시대의 사상과 조상들의 유전으로 인하여 형성된 사람들의 가치관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본주의이며 선악과 이후의 인과율로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이 세상의 신이 주입하여 복음을 듣지 못하게 가리고 있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으로 말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 이 말이 얼마나 엉터리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만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 일들이 우리 안에 담겨질 때에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중심으로 통일시키십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분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그의 기업이 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던 그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처럼 세 번이나 저주 부인하였고 바울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인 사람이지만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 주의 일이기에 주께 영광이 됩니다.

 

지난주에 터기에 있는 분 소식을 알려드렸습니다. 남편이 42세에 별세하였습니다. 그때 친정 오빠가 와 있어서 지난주일 오전 설교를 함께 보았답니다. 친정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집안인데 그 오빠가 그 영상을 친정모친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사위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42살에 죽은 것을 자기 딸이 감사한다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친정이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주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그 일들을 다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는 것은 우리 같은 죄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다 이루신 그 의와 공로들을 우리 안에 담아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의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만 오롯이 드러날 때에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그 이유는 그 아들의 공로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