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에 제가 섬기는 교회가 아닌 다른 조그마한 개척교회에서 어느 목사님의 부탁으로 간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한 간증도 아니라서 그런지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간증은 은혜로웠고 간증을 듣는 분들이나 심지어는 저도 은혜를 많이 받은 좋은 간증이었습니다. 남다른 체험을 하고 그래서 예수를 믿은 삶 자체가 이야기 거리가 됐는지 저와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준 그런 간증이었습니다.


저는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제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생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간증하고 난 다음 날 아침에 기도를 하는데 기분이 좀 이상 했습니다. 그 전날 내가 한 간증이 마치 그 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나 같은 경험 해 봤어요? 내가 이래 뵈도 이런 기가 막힌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게 된 것도 극적이지요? 이 정도는 경험해야 믿음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 저 보다 믿음이 좋습니까?’


마치 간증 내내 이렇게 이야기 했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간증이라는 것을 빌미로 저의 고난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내가 받은 좀 특별해 보이는 고난을 마치 믿음의 훈장인 것처럼 자랑했던 것입니다. 고난을 이겨 낸 믿음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는데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순간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하신 일을 부분적으로 제가 한 일이라고 그리고 저의 선택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제가 그 고난을 이겨내고 믿음을 갖게 된 것을 은근히 자랑했던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저의 자랑거리는 하나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걸 영적 교만이라고 하나요? 


요나는 단 삼일 만에 니느웨의 십이만 명을 전도한 사람입니다.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는 지금으로 말하면 대도시입니다. 대도시 전부가 전도된 것입니다. 저 같으면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서 군대 안가는 축구 선수들보다 더 좋아 했을 겁니다. 온갖 간증 집회에는 다 불려 다니고 어디 불러주는데 없나 하고 기대했을 겁니다. 입이 근질거려 가만히 못 있었을 겁니다. 요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하나님이 하신다. 그러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니느웨를 그렇게 싫어한 요나는 첫 번 째 명령에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니느웨가 변화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성의 없는 전도로 니느웨가 변화 됐는데도 그 결과를 보고 예상 했던 일이라 그런지 별로 놀라지도 않고 자신이 이루어 놓은 성취에 대하여 전혀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의 미워하는 감정을 주체를 못해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지요(욘4:3).   


제가 한 짓이 영적인 교만이라면 요나는 그런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믿음이 깊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습관적으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범하는 잘못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다녀도 하는 짓이 이상하거나 하는 사람들에게 갖는 일종의 우월감 같은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하게 생각해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대 놓고 정죄는 하지 않아서 죄가 아닌 것 같지만 마음속에 이러한 생각들을 갖는 것 자체가 죄 아닐까요? 때로는 우리들의 이러한 마음들을 적당히 합리화 하면서 심지어는 하나님께 기도 하면서도 합리화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고 교만해 질 때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는 교회에 다니는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미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명분으로 내 세웠던 것이 하나님도 저런 사람들 미워 하실거야. 난 지금 하나님의 마음으로 저들을 미워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하는 짓이 미워서 내가 갖는 불편함은 모두 영적인 교만입니다. 지금은 미움은 없어졌지만 교만한 마음은 쉽게 없어지지를 않습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안다거나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거나 무슨 프로그램 같은 것을 이수하고 나면 신앙심이 깊어져야 할 텐데 영성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영적인 교만이 깊어지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웬지 남들이 보기에도 세 보이거나 사나워 보입니다. 특히 저처럼 영어나 좀 하고 헬라어 좀 한다고 영어성경과 헬라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조심을 하지만 항상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여러분들에게 우선적으로 기도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대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이 영적인 교만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지도 않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공들여 만든 하나님의 걸작 품인 사람들을 내가 미워하거나 내가 우월감을 가질 자격이 저한테는 없는 데도, 그 영적인 교만은 슬그머니 저에게 다가 옵니다. 그들을 불편해 할 것이 아니라 정말 그들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할 때에, 그리고 사람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보고 의식할 때에야 비로소 나의 영적인 교만은 그 나마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는 것이 아닌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