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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4:6~8 나와 함께 가자 2020. 2. 5  (432장)

 

6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몰약 산과 유향의 작은 산으로 가리라 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6절과 7절은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8절과 연결하려고 다시 봅니다. 8절을 보면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고 합니다.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은 이미 흠이 없는 신부를 목표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이미 완성되었다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서 사는 존재이기에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과거 현재 미래가 있어야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미래가 과거에 완성된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도 이미 과거에 완료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묵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접는 부채로 접힘을 묵시로 펼침을 역사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6절을 봅니다. “봉독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 죽음으로 자기 신부를 아무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본 대로 흠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8:30).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2:6).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흰 옷을 입고 있는 자들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역사 속에서 지금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지만 묵시적으로는 십자가로 완료된 일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신랑이 신부를 나와 함께 가자고 하시는 것은 이미 흠 없는 신부로 완성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입니다.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새 번역으로 봅니다. 레바논에서 오너라, 신부야! 레바논에서 오너라, 어서 오너라. 아마나 꼭대기에서,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들이 사는 굴에서, 표범들이 사는 언덕에서 내려오너라.”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개역 개정은 나와 함께 하고’ ‘나와 함께 가자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 번역은 나와 함께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도 생략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하려고 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를 빼 버리면 솔로몬의 말에 술람미가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이 주도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를 넣어서 보면 레바논에 있는 신부에게 와서 함께 하면서 나와 함께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모든 성경의 말씀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월요일에 극동방송에서 설교 녹음을 하고 왔습니다. 6년 전에 설교한 예레미야서인데 예레미야 41~43장을 두 편으로 설교했습니다. 설교 제목이 혼돈의 시대길을 묻다입니다. 붙여도 문장이 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유다가 멸망하는 시기입니다. 바벨론 왕이 유다 백성들을 사로잡아 가면서 그댜라를 총독으로 세웁니다. 흩어진 자들이 모여드는데 이스마엘과 요한난이 등장합니다. 이스마엘은 그댜라를 제거하려고 하고 요하난은 그 사실을 그다랴에게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다랴는 요하난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이스마엘에게 살해당합니다. 이스마엘이 남은 자를 이끌고 암몬으로 피난 가는 중에 요하난이 소식을 듣고 추격합니다. 끌려가던 자들이 요하난의 편에 서자 이스마엘은 도망갑니다.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일 때에 바벨론의 군인들도 죽였기에 요하난이 바벨론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피난가려고 합니다. 그때 예레미야에게 기도요청을 합니다.

 

그동안 거짓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은 다 엉터리로 드러났고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로 드러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요하난이 예레미야에게 기도요청하기를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것이니 기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애굽으로 피난가지 말라고 합니다. 피난가면 바벨론 왕이 애굽까지 와서 그들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런데 기도요청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면서 고집 부려 애굽으로 피난 갑니다. 이런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13:23절입니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들이 이러합니다. 악에 익숙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따라 사는 겁니다.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께 기도요청을 하고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거역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가자고 해서 갈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히브리어의 뜻을 살려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그 날이 숨 쉬고 그림자들이 도망갈 때까지 내가 나를 위하여 몰약의 산과 유향의 언덕으로 갈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갈 것이라고 합니다.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미 그 사랑하는 자를 흠이 없이 아름답다고 하시고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그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이끌어 내셔서 점도 흠도 없이 만들어 내십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흠 없는 아름다움은 예수님의 피 안에서 이루어짐을 에베소서를 통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가자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표현입니다.

 

본문 8절도 히브리어를 직역한 것을 봅니다. “레바논으로부터 나와 함께, 신부야, 너는 레바논으로부터 나와 함께 갈 것이다. 너는 아마나의 꼭대기로부터, 스닐과 헤르몬의 꼭대기로부터, 사자들의 굴들로부터, 표범들의 산들로부터 이동할 것이다.” 왜 이렇게 살펴보는가 하면 우리는 이런 말씀을 읽을 때에 신랑이 신부에게 나와 함께 가자고 하면 신부가 결단하고 따라가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읽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인간의 주체성 자체를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는 것이 선악과 이후의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런 우리가 성경을 읽어도 인간의 행함 위주로 읽게 됩니다.

 

레바논을 신부의 고향으로 봅니다. 다른 지명도 그 근처로 봅니다. 그러나 그 곳에 사자와 표범이 있다는 것은 신부의 힘으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에서 스스로 벗어날 사람이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어떻게 스스로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곳에서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랑이 그 레바논으로 들어가서 신부와 함께 하여 나와 함께 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여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4:4~5).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고후5:21). 이 목표를 이미 하나님께서 뜻하셨기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를 흠 없는 아름다운 자로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보기에는 게달의 장막 같은 모습입니다. 어떤 분이 오늘 뇌수술을 했습니다. 무섭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듣고 아멘 하여도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겁니다. 그런데 지난주 오전에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질 것이며 흩어진 그 작은 자들 위에 손을 드리우실 것이라는 말씀에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 어떠함과 상관없이 이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흠이 없는 아름다운 자로 보시고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보면 도무지 믿음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전혀 없는 자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려고 떠나라고 하시고 함께 가자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이루어내십니다.

 

아브라함을 봅니다. 지금 주일학교 성경읽기가 창세기이기에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한편씩 교사 단체 톡에 올리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나눔을 보면서 제가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까지 믿음이 하나도 없는 자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봅니다. 자기 아버지가 우상 만들어 파는 자라면 그 영향아래 자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은 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고대로 갈수록 집성촌이나 혈족으로 된 부족사회에서 떠남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등 떠밀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아브람을 결국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고서 앞으로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 내신다는 표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아브라함을 본 받자고 하면 그것이 성경을 잘 못 보는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면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51~55절입니다.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이런 말씀 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아브라함 보다 크냐고 합니다.

 

56~59절입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항상 함께 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믿지 못하니 예수님을 귀신 들린 자로, 사마리아인으로, 신성모독자로, 율법과 성전 파괴자로 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은 결국 아브라함으로 예수님을 믿게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하여서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들의 조상이라고 하신 것은(4:11) 믿음이 하나도 없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로 만들어 내십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믿은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4:17절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원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게다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다시 봅니다.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곳에서 내려 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자와 표범이 정말로 무서운 세력이 아니라 아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거리가 되는 것들로 속이는 것이 세상 신입니다. 스스로 나갈 수도 없는 강력한 권세로 장악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게 하여 나가지 못하게 붙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3:10~13절입니다.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아브람은 믿음이 없어서 아내를 바로 왕에게 동생이라고 넘기고 많은 재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를 지켜주심을 보고서 조금 믿음이 생겨서 조카 롯에서 먼저 택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택한 것입니다. 멸망하기 전에 소돔과 고모라 성은 온 땅이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에 죄악이 가득하여 멸망시킵니다. 그러므로 천사들이 롯의 가족들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창세기 19:14~16절입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는 말을 농담으로 여긴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롯과 아내와 두 딸도 지체하고 있습니다. 표준말은 뭉그적인데 사투리로 말하면 밍기적입니다.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사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기적이 밍기적이라고 하면서 음악을 신청한 것입니다.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기적이 이 세상에 들어붙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어 내십니다. 십자가에 합류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려고 오늘도 주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의 손에 이끌려 가는 길이 죽음의 길처럼 보이지만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요한계시록 18:4절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이것은 바벨론의 멸망을 배경으로 합니다. 온 세상이 멸망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음녀에 취하여 그곳에 들어붙어 삽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여도 나갈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안에 오셔서 죽음으로 우리와 연합하여 이끌어 내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십자가 지신 분이 나와 함께 가자는 그 음성이 들려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