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내 어깨에 지워진 십자가가 없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까? 

살다 보면 부모가 십자가가 되고, 
남편이 십자가가 되고, 
아내가 십자가가 되며, 

자식과 형제와 친척 
그리고 친지가 서로에게 십자가가 되고, 

이웃과 조국이 십자가가 되고, 
가난과 병고가 심지어는 
하느님도 신앙도 십자가가 된다.

그 많은 십자가들을 내 어깨에서 내려놓는 날 
나는 바라던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의 목적은 
이런 십자가들을 내려놓는 것일까? 

우리는 안다. 
내 어깨에 지워진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기꺼이 하고,
분노하다가도 인내하고 용서하며 
화해하게 된다는 것을.

십자가는 내게 사랑이 
인내라는 것을 가르쳐주며 
그 자체로 사랑임을 깨우쳐주는 선물임을.

십자가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존재로 키워주고, 
겸손하게 하고, 
없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고, 
희생이 기쁨이며 
그게 바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은총이라는 것을. 

십자가를 내 어깨에서 내려놓는 날, 
나는 희생도 용서도 화해도 모르는 
비정한 인간이 되고,

내 몸에서 사랑을 발산하지 못하는,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돌같이 차가운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을. 


작자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