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의 『성경이 말하는 땅』

 

제3장 “너희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4. 부족함이 없음

 

이스라엘은 특별히 광야에서 여호와를 만나게 된다. 광야에서의 그분의 불분명한 존재 방법은 광야의 조건에 따른 것이다. 그분은 만나와 같이 넉넉하지만 넘치지 않는다. 그분의 광야 임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갖게 된 광야에서의 극히 불확실한 경험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 그분은 그의 백성과 더불어 황무함 속으로 들어가신다. 그분은 이스라엘과 같은 환경 속에 자신을 맡기신다. 그분은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그의 백성들과 더불어 정처 없이 우거하신다. 출애굽기 15장의 오래된 진술은 그의 백성과 함께 한 우거와 오랫동안의 우거 끝에 자신의 장소(place)를 스스로 취하시는 여호와로 끝맺고 있다(출 15:16-18).

 

이스라엘에게 땅없음의 상황이 된 광야는 양식이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그곳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곳이며, 그분의 백성에게 나타나시는 장소이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광야를 고대하였으며’, 거기서 그분의 이해하기 어려운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광야는 위험한 곳이기는 하지만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호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광야를 완전히 대면함으로써 그분의 임재를 의심 없이 경험하게 된 사람들만이 광야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먹을 것과 죽음에 대하여 근심하지만, 이스라엘의 전승은 그들의 광야 경험을 아주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행함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였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신2:7).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8:4).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 하    였 으며(신29:5).

 

땅없는 세월 사십 년은 이스라엘에게는 놀라운 확인의 기간이 된다. 죽음의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광야에 생명이 주어진다. 광야는 피곤, 아픔, 가난, 질병의 장소이지만 이스라엘은 잘 유지되고 보호된다. 이스라엘은 해어진 옷을 입지 않고 발병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 떨어지지만 잘 지켜진다. 여호와가 계심으로 인하여 모든 부족함의 장소가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곳으로 변화된다.

 

광야는 이스라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결코 좋아하지 않는 운명의 장소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불가능(아브라함과 사라) 가운데서 창조된 백성으로 모든 불길한 예언에 마주 싸워 견딘 백성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오직 기적에 의해서만 살게 된다. 그들이 운명적으로 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결국 바라는 땅으로 가는 도중의 땅없음은 견딜 수 있는 일이며, 그것은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심으로 오히려 축복의 사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심으로 선물이 주어지고, 치유가 행해지고, 새로운 일이 생기고, 어떤 것도 낡지 않게 된다. 그것은 이 세대의 영악한 생각, 즉 이스라엘을 광야에 버려두면 죽게 될 것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한 모든 사람들의 약삭빠른 기대에 반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여호와께서는 필요한 것을 허락하신다(참조, 창22:14)  생명은 불가능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땅없음은 그곳에서 땅을 약속하시는 분이 그의 백성을 붙들고 있는 조건이다. 만나의 놀라움, 기대치 않았던 메추라기, 솟아나는 물 등은 땅없음이 주는 실제적인 이적을 암시한다.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그곳에는 생명을 가능케 하는 식료가 지나치게 많지도 않고, 지나치게 적지도 않게 넉넉하게 주어진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생명이란 값없이 받은 선물이므로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여호와께서는 땅이 없는 그곳에서 그의 백성에게 주기 위하여 행하였으며, 생명을 위하여 주시되, 아주 넉넉하게 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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