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3:15~22 안식일의 개혁(3) 2018. 8. 22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안식일의 개혁에 대하여 두 번에 걸쳐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구약의 안식일의 뜻이 무엇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안식일과 주일성수로 연결하여 지키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부분은 창원시기독교 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에서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변을 인용하면서 뒷부분에서는 안식의 완성이 날짜에서 날짜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보겠습니다.

 

질문: 주일에 대하여 일반 교회의 주일성수 개념과 대치되는 발언을 하는데 과연 전통교회 주일성수는 잘못된 것입니까? 어떤 다른 날이라도 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김 목사의 주일(가끔 귀하는 일요일이라고도 함) 예배에 대한 견해는 어떠합니까?

 

답변: 고 김성수 목사와 연결하여 세 번이나 질문을 하시는데 제가 고 김성수 목사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15년 전에 미국에 있던 고 김성수 목사가 저의 설교원고 요한복음, 창세기, 이사야 세권을 구입해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을 질문하셨는데 적어도 우리가 개혁주의라면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주일(主日)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주의 날이 네 번 나오고(살전5:2, 살후2:2, 벧후3:10, 1:10) 안식 후 첫날이 여섯 번 나옵니다(28:1, 16:2,9 24:1, 20:1, 20:19). 그리고 매주의 첫날이 나옵니다(고전16:2). 이러한 구절들을 일일이 찾아서 설명을 하려면 책을 한권 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경구절들이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는 여러분들도 찾아보시고 해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주의 날로 언급된 세 번의 내용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여호와의 날 또는 주의 날과 같은 의미입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날 또는 주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기다린 여호와 날 곧 주의 날은 메시아가 오시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 메시아의 날이 그들에게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된다고 선지자들은 무수히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까지 일일이 성경을 다 찾아가면서 증거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주의 날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신약에서 주의 날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나오는 계시록 1:10절의 주의 날은 문자대로 해석하면 주께 속한 날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주의 영광을 뵙고 계시를 받는 날이기에 주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과 연결시켜서 교회가 주일이라고 사용하지만 성경에서 주의 날에 대하여 증언하는 내용이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제자들이 찾아간 날을 말합니다. 그 날에 부활하신 것이며, 안식 후 첫날의 마지막 구절인 요한복음 20:19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신 날입니다. 이들은 예배를 위하여 모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 주님이 찾아가신 날입니다.

 

그리고 매주 첫날은 고린도전서 16:2절입니다. 매주라는 말은 매주(每週)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의 첫날이라는 의미이지 주()의 날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기에, 이 날을 주의 날이라고 하여 귀하게 여기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만 주의 날이라고 하면 나머지는 나의 날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만유란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날을 귀하게 여기거나 아니거나 하는 것은 다음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4:5~6절입니다.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여러분의 교인 가운데 주일날 일해야만 하거나, 당직을 서야하는 직장이라면 어떻게 권면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으로 권면을 합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날과 달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나는 수요일을 귀하여 여기겠다고 생각하면 그 날을 귀하게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다 귀하게 여길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서 2:16~19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구약의 날과 달과 절기들이 그림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렇다면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났기에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그림자를 붙들게 되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놓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10~11절입니다.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라디아 교회가 복음을 받고 나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율법 조문을 지켜야 한다고 하니 흔들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인용합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생명의 말씀사 상편 563~564페이지의 소제목 33. 무슨 까닭에 일요일을 지키는가? 이 내용을 보면 일요일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는 것을 방어하려고 답변을 합니다. 그러나 그 답변은 요지는 날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교회내의 질서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같은 책 561페이지의 소제목 31번을 보면 안식일 계명의 약속은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34번의 성일의 영적 준수에 대하여 일부분만 인용합니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우리가 말하는 주일(主日)로 안식일을 대신한 데는 신중한 고려가 없지 않았다. 고대의 안식일이 대표한 저 진정한 안식은 주의 부활에서 그 목적이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끝낸 그 날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그림자였던 의식을 고수(固守)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된다. 나는 일곱이라는 수를 고집해서 교회를 거기 예속 시키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날에 엄숙히 모이는 교회들도 미신만 없으면 나는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칼빈의 이러한 말은 또 다른 날도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한 것이며 이러한 견해는 위에서 인용한 성경구절이 충분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6번의 질문은 충분한 답이 되었다고 봅니다.

 

올해가 종교개혁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의 원리 중에 가장 중요한 원리는 오직 성경입니다. 중세 타락한 가톨릭은 교황의 어록과 교회의 전통이 성경과 동등 내지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타락이 가속이 된 것입니다. 이런 구교에서 개혁한 가장 중요한 원리가 오직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혁주의에 속한 목사라면 그 어떤 것보다 성경을 가장 우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답변을 보낸 지 일 년 삼개월이 넘었습니다만 아직 답변이 오지 않습니다. 안식일의 개혁에 대한 결론으로 히브리서 4:8~11절입니다. “8 만일 1)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참된 안식이 성도에게 아직 남아있습니다. 안식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그것은 안식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참된 안식을 맛보며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날과 달과 절기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을 기다리면 모이기를 힘쓰는 자들이 됩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모였습니다. 날마다 모여 떡을 떼며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히브리서 10:22~25절입니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십자가의 완성으로 성령이 임한 자는 안식을 맛보지만 완전한 안식은 아직 기다리게 됩니다. 구약의 안식일이라는 날짜가 주일이라는 날짜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역사 속에서 안식을 맛을 봅니다. 맛을 본다는 표현은 아직도 몸의 구속이 남아있기 성도로서 안식을 부분적으로 누리지만 여전히 탄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8:23).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성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 날에 완전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안식일이라는 날짜가 아니라 참된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안식의 완성입니다. 그 날을 소망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기다리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요한계시록 14:11~13절입니다.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두 가지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 편은 밤낮 쉼이 없습니다. 이들은 땅에 속한 자이며 바벨론이라는 세상의 지배를 받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세상의 욕심을 채우느라고 평생을 쉬지 못하고 달려갑니다. 여기에는 종교적인 사람들도 포함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기의 이름과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살면서 저 세상에서도 자기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면서 밤낮 쉼이 없이 달려갔는데 그 결론이 밤낮 쉼이 없는 곳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수고를 그치고 쉰다고 합니다. 이는 그 행한 일이 따른다고 합니다. 무엇을 행하였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땅에서 밤낮 쉬지 못하면서 추구하는 사람들의 행함과 다른 행함이 있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과 가치가 전혀 다릅니다. 시민권이 땅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 무엇으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과 목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빌립보서 3:17~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요한계시록 14장의 대비나 빌립보서 3장의 대비가 같습니다.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시민권이 땅에 있는 자는 땅의 일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는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그가 오실 때에 우리의 낮은 이 몸, 탄식하는 이 몸도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참된 안식을 완전하게 맛보며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