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강 다윗 언약(1)  ( 방송을 저장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세례요한님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다윗 언약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언약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땅과 후손이었습니다. 그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땅의 경계를 다 차지한 사람이 바로 다윗 왕입니다. 이 다윗 왕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는데 다윗의 후손과 그 위를 대대에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 위(位)란 왕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연결이 됩니다.

 

다윗을 보기 위하여 먼저 사울을 보아야 합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것은 백성들이 요구한 왕입니다. 사무엘 노년에 사무엘의 자녀들은 사사로 합당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사무엘조차 자식농사를 망친 것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기도를 쉬지 않는 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의 역할로서 기도를 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기도는 로마서 8장에서 성령께서 성도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마치 자신의 소원성취를 위한 방법론으로 여기는 것은 성경을 잘 못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무엘의 사사사역 말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섭섭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무엘상 8:6-9절입니다.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상이 어떠한지를 여기서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왕을 원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통하여서 다 보여주셨는데도 그런 여호와 하나님보다 다른 이방나라의 왕들처럼 힘 있는 왕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버리는 것입니다. 출애굽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이러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왕을 허락하라고 하십니다. 왕을 세우면 고생 할 것을 말하여도 왕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주어진 왕이 사울입니다. 백성들보다 머리 하나 더 있을 정도로 키 크고 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처음에는 겸손하였지만 왕이 되어 전쟁에서 몇 번 승리를 하자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에 더 관심을 가지고 백성들 앞에서 존귀함을 받기를 원하고, 전쟁의 승리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념비를 세우는 그런 사울이었습니다. 이런 사울을 하나님께서 폐하시고 자신의 마음에 맞는 왕을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다는 것은 다윗의 마음이 선천적으로 착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맞는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원한 왕인 사울과 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를 택하셨다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13:21-22절입니다. “21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신 것은 사울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원한 왕이고, 키가 보통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한 사람입니다. 키만 껑충하게 큰 것이 아니라 싸움도 잘하는 장군입니다. 이런 왕을 백성들은 만세하면서 따랐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는 소년 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 데리고 하나님의 제사에 참여하라고 하였을 때에 다윗은 참석도 시키지 아니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것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한 일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을 말할 때에 영웅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인간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 등장할 때부터 골리앗을 죽임으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칭송을 들으며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그 또한 죄인임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다윗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런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가질 지를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이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극적으로 묘사를 합니다만 그러나 여호와의 기름 부으심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가 넘고 창은 6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창을 휘두르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 키 크고 힘 있는 왕인 사울과는 비교도 할 수도 없는 용사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이 됩니다.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에게 보고할 때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과 알아봅니다. 요나단 자신이 이미 여호와의 전쟁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삼상 14:6절입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의 구원을 세상의 힘으로 가늠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수가 많고, 돈이 많고, 능력이 많아야 세상을 이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과 다윗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여호와의 전쟁은 세상의 방법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다윗과 같은 약한 자를 택하여 세상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일에 다윗이 합당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않고 세상의 원리를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한 고발조치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 1:26-31절입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