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1~5   열왕기 서론, 늙은 다윗     2014. 11. 16

성경 한권을 마치면 다음 성경은 무엇을 할지 고민이 됩니다. 금요일 밤까지 열왕기를 계속하느냐 아니면 욥기서를 하느냐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욥기에 관한 책을 몇 권 봤는데 성서 유니온에서 나온 크리스토퍼 애쉬의 책이 좋았습니다. 서론에서 욥이 선지자라는 말과 함께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것이라는 베드로전서 1:11절을 인용한 것을 보고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욥기의 부제로 ‘십자가의 지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를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들의 역사를 보고 나서 욥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列王記)라는 말은 왕들의 이야기를 가지런히 벌려놓은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두 권으로 나누지 않고 한권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70인 역에서 두 권으로 분리하였기에 열왕기 상하로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왕들의 이야기는 단지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계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서가 아니라 예언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왕이 필요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께서 영원한 왕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용사가 되셔서(3절) 애굽을 무찌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기업에 심으신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처소를 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의 땅에서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었기에 왕을 요구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8:4~9절입니다.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애굽의 전제군주 아래서 430년을 종살이 하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따라 출애굽 시키시고 약속의 땅에 들여놓았습니다. 세상의 왕이 다스릴 필요가 없기에 여호수아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없어지지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 그 결과 온갖 우상숭배로 흐르게 됩니다. 그러자 이웃의 지배를 받아 고통 중에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워주십니다. 그런 사사가 다스리는 동안 평안하다가 그 사사가 죽고 나면 다시 같은 일의 반복이 일어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 나라처럼 왕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왕의 요구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 왕을 허락하라고 하심으로 왕으로 인한 고역을 당하는 것이 열왕기 상하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을까요?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인가라는 책에서 자유에 대한 한 단락을 인용합니다. “2차 대전을 경험한 에리히 프롬이 쓴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그토록 출중하고 탁월하며 논리적인 게르만 민족이 어떻게 히틀러 같은 작자한테 열광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괴테와 실러, 바흐와 베토벤을 배출한 나라가 어떻게 히틀러 같은 광인에게 열광할 수 있는지,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끊임없이 질문한 그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자유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회가 제도와 법에 묶여서 목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그런 모습을 지적하면서 말한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이 안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사용하지 못하고 누구에게 종속되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도 역대 최고로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가 18년 동안 독재를 한 박정희입니다. 그 독재의 추억이 그리워서 그 딸을 대통령으로 뽑는 나라입니다. 이런 모습은 북한은 더 합니다. 삼대를 세습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에 자유를 누릴 만한 성숙함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랜 세월 중국이라는 나라에 사대의 예를 갖추고 살아야 했으면 일제 36년의 강점기와 미국의 신탁통치와 지금도 군사주권조차 찾아오지 못하는 이 나라는 계속하여 종이 되려고 합니다. 이런 습성들이 교회에서도 독재자 같은 목사들에게 종속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독재자 같은 목사들과 이단들에게 메이는 자들을 보면 그들이 눈에 보이는 누구에겐가 지배를 받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참된 자유를 줍니다. 그 복음의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바울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사도가 참으로 진리를 알아서 진리로 자유 하여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런 바울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오히려 이런 바울을 배척하고 자신을 종으로 삼아 독재를 하는 그런 지도자를 원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1~27절입니다.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자였습니다. 이런 자가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참된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진리로 자유 하였기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진리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자기의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에게 무엇을 잘해 주라는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내가 자랑하는 이 복음이 헛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바울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지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0절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바울사도가 복음으로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 섬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유를 감당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오랫동안 지배를 받아온 그 속성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람이 자신들을 종으로 삼는 것을 좋아합니다. 종으로 삼아서 잡아먹고 빼앗아가고 스스로 자신들을 높여서 뺨을 칠지라도 용납한다고 합니다. 이런 독재자 같은 목사들의 교회와 이단 집단들에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엘리트라고 하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조차 복종하고 있는 것은 사무엘시대 왕을 요구한 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이 바로 종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아들로서 자유 함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1:1~4절을 봅니다.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윗이 늙었습니다. 늙은 증거는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녀를 넣어준 이유는 이것이 늙은 왕의 몸을 따뜻하게 하려는 치료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결코 늙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왕이라는 것이 이러합니다. 그 어떤 인간도 온전한 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왕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왕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으로 성도 안에 임하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제부터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됩니다. 세상의 왕 체제는 백성들이 왕을 섬기는 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백성들이 종이 아니라 왕의 아들이 됩니다. 

로마서 8:14~17절입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갈라디아서 4:1~7절입니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왕의 종이 아닌 왕의 아들로 살아가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