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2:1~42 요단강 건너기 2021. 7. 18

 

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2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와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지휘관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3 아다롯과 디본과 야셀과 니므라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스밤과 느보와 브온 4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요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5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지난주에 민수기 31장을 중심으로 여호와의 원수에 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원수란 미디안 족속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음행하도록 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에게 속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민족을 하나님의 원수, 이스라엘의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원수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원수란 하나님의 뜻에 관심 없이 자기만족에만 관심이 있는 자도 역시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그런 원수를 사랑하신 확증이 십자가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은 요단강 건너기를 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봅니다. “봉독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습니다. 르우벤과 갓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은 목축할 만한 장소라고 하면서 당신의 종들에게는 가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재산과 안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창세기 15:18~21절입니다.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후에 씨와 땅에 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도록 여러 가지 믿음의 훈련을 시키신 후에 언약을 체결하는 내용이 창세기 15장입니다. 이 언약도 일방적인 은혜 언약인데 그 언약의 내용 역시 씨와 땅에 관한 약속입니다. 그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여주십니다. 그리고 땅은 애굽 강에서 큰 강 유브라데까지입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다윗과 솔로몬 때에 부분적으로 이루어집니다(삼하8:3, 왕상4:21). 그리고 요단강 동편은 강을 경계로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본문 7절입니다. 모세는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싶어서 간절히 간구하였지만 므리바 사건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신명기 3:23~28절입니다.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2)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모세의 마음은 요단강을 건너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때가 왔는데 자기들의 평안함을 위하여 요단강 동편에 머물려고 하기에 모세가 책망합니다.

 

6~15절입니다. “6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7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8 너희 조상들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냈을 때에 그리 하였었나니 9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올라가서 그 땅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을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갈 수 없게 하였었느니라 10 그 때에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11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결코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에게 사십 년 동안 광야에 방황하게 하셨으므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한 그 세대가 마침내는 다 끊어졌느니라 14 보라 너희는 너희의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15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르우벤과 갓 자손의 말을 들은 모세가 가데스바네아 사건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정탐꾼이 약속의 땅을 보고 온 후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사람이 열 명입니다. 들어갈 수 있다고 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입니다. 백성들이 열 명의 말을 따라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 결과 광야에서 출애굽 1세대가 다 죽었다고 말하면서 너희도 지금 그 열 명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책망합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너희는 너희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라고 합니다. 출애굽 1세대가 다 죽고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 앞에 와서 다시 이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는 일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엄중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이 책망을 듣고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우리도 형제와 함께 가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싸움을 싸우겠다고 합니다.

 

16~19절입니다. “16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17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18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19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모세의 책망을 들은 후에 르우벤과 갓이 이 약속을 합니다. 모세가 이 약속을 받아들입니다.

 

20~23절입니다. “20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만일 이 일을 행하여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서 싸우되 21 너희가 다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고 22 그 땅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시기까지 싸우면 여호와 앞에서나 이스라엘 앞에서나 무죄하여 돌아오겠고 이 땅은 여호와 앞에서 너희의 소유가 되리라마는 23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 하면 여호와께 범죄 함이니 너희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그 약속을 다 지키면, 즉 약속의 땅을 형제들이 차지하게 하도록 함께 싸우면 무죄하여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께 범죄 하는 것이기에 그 죄가 너희를 찾아낼 것이라고 합니다. 약속 성취가 우선입니다.

 

24~32절입니다. “24 너희는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의 입이 말한 대로 행하라 25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모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주의 종들인 우리는 우리 주의 명령대로 행할 것이라 26 우리의 어린아이들과 아내와 양 떼와 모든 가축은 이곳 길르앗 성읍들에 두고 27 종들은 우리 주의 말씀대로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다 건너가서 싸우리이다 28 이에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명령하니라 2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만일 각각 무장하고 너희와 함께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앞에서 싸워서 그 땅이 너희 앞에 항복하기에 이르면 길르앗 땅을 그들의 소유로 줄 것이니라 30 그러나 만일 그들이 너희와 함께 무장하고 건너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너희와 함께 땅을 소유할 것이니라 31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행할 것이라 32 우리가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가나안 땅에 건너가서 요단 이쪽을 우리가 소유할 기업이 되게 하리이다모세의 말대로 행하겠다고 하자 모세가 허락합니다.

 

33~42절입니다. “33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나라와 바산 왕 옥의 나라를 주되 곧 그 땅과 그 경내의 성읍들과 그 성읍들의 사방 땅을 그들에게 주매 34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35 아다롯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36 벧니므라와 벧하란들의 견고한 성읍을 건축하였고 또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었으며 37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38 느보와 바알므온들을 건축하고 그 이름을 바꾸었고 또 십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에 새 이름을 주었고 39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가서 길르앗을 쳐서 빼앗고 거기 있는 아모리인을 쫓아내매 40 모세가 길르앗을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주매 그가 거기 거주하였고 41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빼앗고 1)하봇야일이라 불렀으며 42 노바는 가서 그낫과 그 마을들을 빼앗고 자기 이름을 따라서 노바라 불렀더라약속의 땅을 함께 싸우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 요단강 동편의 땅을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절반 지파에게 나누어줍니다.

 

오늘 말씀의 뜻을 약속과 성취라는 큰 틀에서 봅니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가고 싶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여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말하는 자를 책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거저 우리 집안 부자 되고 안전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입니까?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의 개인이나 그 민족을 위한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위한 구원입니다.

 

이미 앞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땅의 경계도 보았습니다. 그 땅의 경계선이 남은 나일강이며 북은 유프라테스강입니다. 동은 요단강이며 서는 지중해입니다. 사방이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은 강을 건너야 합니다. 히브리인이라는 말의 뜻도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때가 되어 출애굽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5: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홍해를 건넌후에 모세가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 시켜 약속의 땅에 들여놓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처를 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 거처에 하나님이 영원 무궁히 다스림이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을 모르면 르우벤과 갓처럼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 동편에 살겠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구원도 우리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구원이기에 구원이 무언지 배우라고 두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하셨습니다(18:20). 개인 구원이라면 혼자 있어도 되는데 왜 꼭 두세 사람이라도 모이라고 하실까요?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을 만드시기 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지체가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그 몸의 머리도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한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3:13~17절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1)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1)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1)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2)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지금까지의 말씀을 보고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를 보면 구약의 약속을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루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일이 모든 의를 이루는 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죄로 삼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음으로 죄인들과 연합됨이 예수님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자들입니다. 요단강 건너간다는 찬송은 장례식의 찬송으로 알고 있기에 죽지 않고 여기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단강의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십니다. 요단강의 세례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세례도 받으십니다. 십자가도 세례가 되는 이유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성전이 되고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아브라함 언약과 모세의 언약을 보고 예수님께서 그 약속을 어떻게 이루심도 보았습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나타난 겁니다. 이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경험하는 자리가 주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라도 모인 교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처소를 만드시기 위한 교회임을 안다면 사람이 만들 수도 없고 사람이 무너뜨릴 수도 없습니다. 이미 다 이루었다는 그 주님이 영원히 함께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생활이 어떤지 두 곳의 말씀만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4:1~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1)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ㄱ)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2)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3)사랑 안에서 4)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고린도전서 12:12~27절입니다.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1)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런 말씀이 이해되고 이 말씀에 이끌리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지금 여기서 건너는 겁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일이 예수 믿는 일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사태로 대면 예배니, 비대면 예배니 하는 말들을 합니다. 저는 이 코로나 사태도 다 주님의 손안에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게 하십니다. 과연 나는 요단강 건너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요단강 건너가지 않고 여기에 살겠다고 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