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5:9~34 도피성 2021. 9. 26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11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12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13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을 도피성이 되게 하되 14 세 성읍은 요단 이쪽에 두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 두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 15 이 여섯 성읍은 이스라엘 자손과 타국인과 이스라엘 중에 거류하는 자의 도피성이 되리니 부지중에 살인한 모든 자가 그리로 도피할 수 있으리라

 

민수기 35:1~8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에 땅에 들어간 후에 레위인이 받을 기업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레위인은 각 지파를 따라 도피성 여섯 개를 포함하여 48 성읍을 받게 합니다. 도피성은 요단강 서쪽에 세 곳, 동쪽에 세 곳을 마련하게 합니다. 도피성에 관한 내용은 신명기 19:1~13절과 여호수아 20:1~9절에 나옵니다.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와 민수기의 말씀대로 도피성을 지정한 내용입니다.

 

본문 9~15절입니다. 봉독 도피성을 만들라고 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부지중 살인이라도 그 피해자의 가족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도피성에 피하여 정당한 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도피성에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타국인과 거류하는 자도 피할 수 있습니다.

 

본문 16~20절입니다. “16 만일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자니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일 것이요 17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이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19 피를 보복하는 자는 그 살인한 자를 자신이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면 죽일 것이요 20 만일 미워하는 까닭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거나 21 악의를 가지고 손으로 쳐죽이면 그 친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 이는 살인하였음이라 피를 보복하는 자는 살인자를 만나면 죽일 것이니라

 

고의로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피를 보복하는 자란 히브리어로 하담 고엘입니다. ‘고엘은 원수 갚아주는 자도 되고 기업 물려주는 자도 됩니다. 그러므로 고의 살인자는 도피성에 들어갔다고 하여도 재판하여 끌어낸 후에 피를 보복하는 자고엘에게 넘겨서 죽이게 합니다. 고엘 하니 노엘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을 겁니다. 음주운전을 하고 운전사 바꿔치기하다가 집행유예를 받았는데, 집행유예 기간 중 다시 무면허 음주 운전하여 잡히자 경찰까지 들이받았다는 소식입니다. 그 아버지는 국회의원으로 음주운전은 살인과 다름없다고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법안을 낸 사람입니다. 그 할아버지는 목사이며 국회의원을 하였고 사학 이사장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게 하여 고의 살인은 어떤 벌을 받는지 보게 하자는 겁니다.

 

본문 22~29절입니다. “22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23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에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24 회중이 친 자와 피를 보복하는 자 간에 이 규례대로 판결하여 25 피를 보복하는 자의 손에서 살인자를 건져내어 그가 피하였던 도피성으로 돌려보낼 것이요 그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거기 거주할 것이니라 26 그러나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가면 27 피를 보복하는 자가 도피성 지경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피 흘린 죄가 없나니 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도피성 제도의 가장 특이한 내용입니다. 부지 중에 살인한 자가 도피성으로 피난한 후에 그 도피성의 제사장이 죽으면 자유를 얻어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죽기 전에 그 부지중 살인자가 도피성 밖에 나갔을 경의 그 피의 보복 자가 그 사람을 죽여도 피 흘린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부지중 살인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부지중 피를 흘린 그 피의 희생은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신한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9~34절입니다. “29 이는 너희의 대대로 거주하는 곳에서 판결하는 규례라 30 사람을 죽인 모든 자 곧 살인한 자는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32 또 도피성에 피한 자는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3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1)속함을 받을 수 없느니라 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살인이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고의로 살인한 자입니다. 이런 자는 두 사람의 증인으로 인하여 죽이는데 고의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부지중 살인자는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런 제도를 주신 이유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피는 땅을 더럽힙니다. 피 흘림을 받은 땅은 그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죄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피는 피로 속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규례를 주신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우리 각자에게 질문해 봅시다. 우리는 부지중 살인자입니까? 고의 살인자입니까? 현재 우리의 법에 과실치사상죄(過失致死傷罪)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업무 중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경우는 벌을 받지만, 고의 살인과 상해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의 살인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보니 제가 고의로 살인한 자임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도피성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끌어내어 죽여야 하는 자입니다.

 

로마서 1:28~32절입니다. “28 또한 그들이 5)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6)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스물 한가지 죄의 목록이 나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두신 결과입니다. 이런 목록 하나하나가 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6:23). 그러므로 노엘이야기를 하였지만 내가 그 아이였다면 저도 별 다를 바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할 돈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그런 짓을 못 한 것뿐입니다.

 

야고보서 2:10~11절입니다.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모든 율법을 다 지키다가 하나만 어겨도 다 어긴 것이 된다고 합니다. 로마서 1장에 나오는 그 목록 중에 하나만 어겨도 우리는 다 간음한 자이며 살인한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중에 살인하는 자들이 아니라 날마다 고의로 살인하는 자들입니다.

 

요한일서 3:15 절입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문맥이 있는 내용입니다만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영생이 없는 증거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은 형이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우 아벨의 제사는 받아 주시고 형 가인의 제사는 받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8~12절입니다.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3)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땅이 아벨의 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여 내시고 약속의 땅에 심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그 땅에 억울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얼마나 많은 자의 피를 흘렸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재판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종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들은 선지자들의 시대에 살았다면 우리를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즉 고의 살인자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도 고의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3:29~36절입니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지금까지 찾아본 말씀에서 저는 부지중 살인한 자가 아니라 고의로 살인한 자임이 아주 분명하여 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들은 고의로 살인한 자가 아니라고 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고의로 살인한 자들의 후손임이 분명하다고 하시면서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그들이 죽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살해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세대에 그 피 흘림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스라엘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사건입니다. 악한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죽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고의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세상이니 심판이 당연합니다.

 

요한계시록 18:24 절입니다.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주일 오전에 요한계시록을 보고 있습니다. 계시록 17장과 18장이 다 바벨론 곧 음녀의 멸망을 말합니다. 이러한 바벨론이 된 곳이 먼저 예루살렘 성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곳이 소돔이며 애굽이기에(11:8) 바벨론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십자가로 심판받는 이유는 의로운 자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의로 살해한 자는 반드시 피의 복수자에게 넘겨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피의 복수자는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그런데 피의 복수자가 오히려 죽임을 당하여 고의 살인자들까지 용서하여 주시는 도피성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일서 3:15~16절을 봅니다.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우리는 그를 미워하여 그를 죽였는데 그는 그 죽음으로 우리의 저주와 죽음을 대신하시고 우리를 살리신 사랑을 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들은 같은 사랑을 받은 자들끼리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어디로 달려가겠습니까? 자신이 고의로 살인한 자인 줄 알기에 날마다 순간마다 도피성으로 달려갑니다.

 

히브리서 6:17~20절입니다.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우리의 도피성 곧 피난처는 든든한 영혼의 닻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을 몇 주 전부터 준비하다가 약 2천 년 전(서기 79824) 베수비오산 화산폭발 이야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그 화산의 폭발로 폼페이 도시가 불덩이와 7가 넘는 화산재에 순식간에 덥혀버렸습니다. 약 십 년 전에 노회 주관행사로 그곳에 다녀와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베수비오 화산보다 천배 더 큰 화산폭발이 약 일천 년 전 백두산 폭발이었다고 합니다. 백두산도 연변에 갔을 때 다녀왔습니다만 백두산은 지금도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두산 화산 전문가가 말하기를 방송하는 지금 다시 폭발하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질문자들이 놀라서 폭발 때 물에 들어가면 안 되느냐고 하니 물에 들어가도 화산폭발로 불붙은 돌과 재가 날아오면 아무 소용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전문가는 백두산 화산이 지금 폭발하여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분명한 사실을 알기에 그 폭발이 일어나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지난주에 약 삼천육백 년 전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유성이 폭발한 증거가 나왔다고 세계적 과학지에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우리는 어디에 도피성을 마련하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순식간에 사라져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타난 그 도피처는 영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여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자신이 고의로 하나님을 살해한 자인 줄 알기에 날마다 십자가로 달려갑니다(2:3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