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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0:1~5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2021. 9. 29


1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3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4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표제어가 다윗의 시로 기념식에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입니다. 무슨 기념식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이런 시가 노래로 불리는 기념식이 어떤 기념식인지는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기념(記念)하라는 내용은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내용은 유월절입니다(12:14). 이어지는 무교절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여호와께서 적을 물리치신 것도 기념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날과 달과 절기는 전부 여호와 하나님께 행하신 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글 성경에서 기념이라는 단어가 구약에서 31회 신약에서 3회 나옵니다. 신약에서 기념하라는 내용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라는 말씀인데 예수님과 바울 사도가 말하였습니다(22:19, 고전11:24,25).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하나님께 나를 건져 달라고 합니다. 건져달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 나올 수 없어서 건져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상태가 너무 위급하니 속히 나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시편 기자가 빠져 있는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나의 영혼, 나의 전 존재를 찾아서 상하게 하고 죽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에게서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대적들이 하나님의 택한 자를 조롱하기에 오히려 그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봉독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란 주의 택함 받은 자가 고난과 환난을 겪습니다. 흔히 말하는 영육 간에 고통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조롱하는 웃음이 아하, 아하입니다. 비웃음이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입니다. 또 그들끼리 낄낄거리며 웃는 웃음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때 주변 나라가 아하하며 조롱하기도 합니다(25:3, 26:2, 36:2). 그렇게 조롱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인하여 뒤로 물러가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구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5절 새번역입니다. 그러나 불쌍하고 가난한 이 몸, 하나님, 나에게로 빨리 와 주십시오. 주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나를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지체하지 마십시오.” 1~4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주의 도움을 절박하게 간구합니다. 그래서 구원하여 주시면 대적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가고, 구원받은 자들 곧 여호와를 찾는 모든 자는 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를 찬양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가난하고 궁핍하기에 속히 구원하여 달라고 하면서 시가 끝이 납니다.

 

이런 내용은 무엇을 기념하는 시가 되는 것입니까? 주의 구원을 경험한 자가 기념하기 위한 노래인데 우리가 기대하는 주의 구원을 경험하였다면 원수들이 완전히 물러가고 내 발 앞에 그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땅에 통용되는 수많은 간증이 그런 간증들 아닙니까? 내가 예수 믿고 나서 성공하고 나니 나를 가난하다고 괄시하고, 무식하다고 조롱한 자들이 내 앞에서 엎드리게 되었다는 식의 간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에서는 그렇게 구원을 간구하였는데 여전히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말은 물질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으니 오직 주께서 구원하여 달라는 표현이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말입니다.

 

지난주에 본 시편 69:29~32절의 말씀입니다. “봉독” 29절을 보면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여 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 가난과 궁핍은 물질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슬픈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제물이나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로 인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황소를 드릴 수 있지만, 그것보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가난하고 슬픈 자,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즉 자기 행위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자들이 역시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들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시편을 보면서 여러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편 기자가 다윗이든 누구이든 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는데 왜 대적들이 나타나서 죽이려고 하는 겁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기름 부음 받기 전에는 형들에게 그렇게 미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름 부음을 받고 나니 형들이 시기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특히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니 사울 왕에게서도 미움을 받습니다. 이러한 택함을 받음으로 미움을 받는 일은 이미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옵니다. 타락하여 에덴에서 쫓겨난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아주시자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받아주시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하는지 창세기를 시작하면서 보여주십니다.

 

요한복음 15:15~19절입니다.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구약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어떤 미움과 박해를 받았는지, 그리고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어떤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인지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이 택함을 받은 자들의 고난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구라고 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서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택함을 받은 자들이 조롱과 핍박을 받습니다. 이럴 때 이들은 가난하고 궁핍하다며 주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단어가 성경의 다른 곳의 번역을 보면 물질적인 가난을 말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가난의 단어를 고난과 겸손으로도 번역합니다. 먼저 물질적인 가난이 생기는 이유는 지도자라는 자들의 억압으로 인하여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권력으로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함으로 가난한 자들이 생깁니다.

 

이사야 3:13~15절입니다. “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이 가난한 자들의 재산을 탈취하였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렇게 불의한 재물로 그 아내들이 온갖 사치품으로 장식하였는데 그 장식 품목만 스물한 가지나 됩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참 선지자들은 이러한 죄를 고발합니다. 그러므로 불의의 기득권자들은 이런 선지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심령이 가난하고 슬퍼서 주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사야 26:5~6절입니다. “4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5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6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높은 데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고 빈궁한 자를 그 위에 세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또 문자대로 해석하면 유대인의 메시아니즘이 되어 가난하게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시편 37:7~11절입니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여기서도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난입니다. 여기서 온유한 자가 오늘 본문의 가난한 자의 단어와 그 뿌리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들은 가난하고 고난받고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을 어떻게 구원하실까요?

 

스가랴 9:9~12절입니다.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구원자가 백마를 타고 오시지 않고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여기의 겸손이라는 단어가 오늘 본문의 가난과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온다면 백마를 타고 엄청난 병거와 말과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올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귀 새끼 타고 오시는 구원자는 그런 무기들을 다 끊어버리고 화평을 전하신다고 합니다. 그 화평을 이방인에게도 전하여 땅끝까지 전한다고 합니다. 그럴 때 갇힌 자를 구덩이에서 건지시는데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에게 돌아오라고 합니다. 오늘 시편 본문의 내용이 어떻게 응답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갇혀 있는 모습입니까?

 

스가랴 11:7~11절입니다. “7 내가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8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하였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9 내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하는 자는 망하는 대로, 나머지는 서로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0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꺾었으니 이는 모든 백성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 당일에 곧 폐하매 내 말을 지키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스가랴 7장의 내용은 은 삼십에 팔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본문입니다. 다 말씀드릴 수는 없기에 가련한 양만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난하다는 말의 뿌리와 같은 단어가 가련한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가련한 양들만이 버림받는 목자를 압니다.

 

이사야 53:1~6절입니다. “1 우리가 1)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2)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가련한 양이 그릇 행하여 각자 제 길을 갔는데 그 가련한 양의 죄악을 담당하시려고 더 가련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마태복음 5:1~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가난하고 궁핍하고 슬픈 자들이 구원하여 달라는 자들의 구원이 무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구약이나 신약이나 가난하고 슬픈 자들입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가난과 슬픔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물질적인 가난도 슬픔이지만 하나님 앞에 가난한 자들이란 자기 의가 없음을 아는 가난과 슬픔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난한 자라고 하여도 자기 의가 부자들보다 더 많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자라도 자기 의가 없어서 가난하고 슬퍼하는 자가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숫자는 적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하게 하셨다고 합니다(2:5). 그러므로 가난하고 슬프고 궁핍한 자의 의미는 자기 의가 없기에 탄식하는 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구원이 되십니다.

 

고린도후서 8: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함이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부요함입니다. 그의 가난함이란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에서 자기 의가 없기에 가난하고 슬프고 궁핍한 자들의 탄식을 십자가로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슬픈 자들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가난해지신 구원자가 완성이며 충만이며 기쁨입니다. 그러나 아직 탄식하는 이유는 몸의 구속이 남았기에 그러합니다(8:23).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탄식이 아니라 몸의 구속을 바라는 소망의 탄식입니다. 이런 자들은 가난하고 슬퍼도 괜찮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