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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8:1~72 기억하라! 2021. 11. 24

 

1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편 78편도 아삽의 마스길입니다. 마스길은 교훈이라는 뜻임을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2주 전에 본 시편 76편의 설교를 듣고 몇 분이 자기 이야기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제목이 주께서 꾸짖으시매입니다. 주님께서 피조물을 꾸짖어야 하는데 피조물인 인간이 주님을 꾸짖는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겨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것이 하나님을 꾸짖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한 것은 감사와 자원과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연락이 온 몇 분의 이야기는 거의 같습니다. 무슨 일을 계획할 때 많이 기도하고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잘되면 선교사도 돕고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였기에 자신이 시작한 일이 잘 안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까지 닥쳐서 큰 손해를 보게 되니 하나님 왜 이르시느냐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업을 하였는데 망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과 기도가 하나님을 꾸짖는 행위라는 말씀을 듣고 그때부터 나오는 찬송이 나 행한 것이 죄뿐이라는 찬송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봉독 본문이 상당히 길기에 큰 단락을 간단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귀를 기울이라고 합니다. 율법이라고 하지만 율법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부모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그들도 그 부모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말씀을 강론하게 함으로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그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버리게 되면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않기에 세상에 썩어질 것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망하는 길이기에 여호와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9~11절입니다. “9 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11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인데 야곱이 손을 어긋나게 축복하여 장자의 복을 받아 강성한 지파가 됩니다. 그들이 무기를 갖추고 활을 가졌지만,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율법 준행을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호와께서 보여주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의 힘이라는 활과 무기와 사람의 수로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잊어버렸기에 에브라임이 무기를 갖추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12~17절입니다. “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그들의 조상들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13 그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그들을 지나가게 하셨으며 14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셨으며 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매우 깊은 곳에서 나오는 물처럼 흡족하게 마시게 하셨으며 16 또 바위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17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 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 자를 배반하였도다열 가지 재앙, 출애굽, 홍해 건넘, 구름 기둥 불기둥, 반석에서 생수를 마심과 같은 엄청난 일을 보고서도 계속하여 범죄하고 배반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버리고 믿지 않는 결과입니다.

 

18~22절입니다. “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20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21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셨으며 야곱에게 불같이 노하셨고 또한 이스라엘에게 진노가 불타올랐으니 22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때문이로다하나님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은 이유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23~29절입니다. “23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24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25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26 그가 동풍을 하늘에서 일게 하시며 그의 권능으로 남풍을 인도하시고 27 먼지처럼 많은 고기를 비같이 내리시고 나는 새를 바다의 모래 같이 내리셨도다 28 그가 그것들을 그들의 진중에 떨어지게 하사 그들의 거처에 두르셨으므로 29 그들이 먹고 심히 배불렀나니 하나님이 그들의 원대로 그들에게 주셨도다

 

18~22절에서 보았듯이 열 가지 재앙, 홍해 건넘,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 반석에서 샘물이 나와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양식 없다고 원망합니다. 고기 없다고 원망합니다. 원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풀어주겠느냐고 고기를 예비하여 주겠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라도 이 많은 사람에게 양식을 주시고 고기를 주실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신실한 구원을 눈으로 보고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23절을 보면 그러나가 있습니다. 나님의 능력을 보고서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심을 믿지 않음에도 만나를 내려 주시고 고기를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 능력을 자주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주신다는 말씀에 아브람과 사래가 다 비웃었습니다. 그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을 받은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웃음을 주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비웃음을 배경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일이 십자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30~35절입니다. “30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욕심을 버리지 아니하여 그들의 먹을 것이 아직 그들의 입에 있을 때에 31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염을 나타내사 그들 중 강한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32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 34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 하나님이 그들의 반석이시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비처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탐욕을 부렸는지 일박이일동안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고 합니다(11:32). 하나님께서 그 탐심을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의 무덤을 기브롯 핫다아와, 곧 탐욕의 무덤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심판하셔도 그들이 여전히 범죄 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햇수를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십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을 이대로 두면 안 되기에 이런 자들을 죽이십니다. 죽임으로 구원하십니다(고전5:5, 벧전4:6). 그렇게 죽어갈 때 그제야 하나님을 구하고 간절히 찾고 그들의 반석이며 지존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구속자임을 기억합니다.

 

36~37절입니다. “36 그러나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하나님께서 죽이시는 심판을 통하여 구원하여 내십니다. 그래서 실제로 심판하시는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며 그들의 반석이며 지존하신 구속자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36절에서 다시 그러나가 나오는 것처럼 그것도 아첨이며 거짓을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간의 그 어떤 행위로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에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誠實)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언약에 성실하신 분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37절까지를 보면 인간은 죽는 순간에 잘못하였다고 회개하지만, 그것조차도 아첨이며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오늘 어떤 분이이 전두환이 5.18에 관하여 사과하지 않고 죽었다는 글을 보냈습니다. 제가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살해하고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이렇게 답을 보냈습니다. 다시 문자가 오기를 그래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다시 답을 하기를 회개도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의 회개조차 아첨이며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죽인다고 하니 겁을 내서 하나님을 기억한다고 하지만 그조차 자기 살기 위한 아첨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도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도 오직 은혜입니다.

 

38~39절입니다. “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39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오늘 본문이 너무 길어서 이 내용만 강조하려고 하였습니다. 1~37절의 내용을 알았다면 우리는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복음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죄악을 덮어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육체가 히브리어로 바사르입니다. 몰락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인간임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기에 이런 바사르가 하는 일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과 같기에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기억하셔서 긍휼을 베푸십니다.

 

40~53절입니다. “40 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42 그들이 그의 권능의 손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그들을 구원하신 날도 기억하지 아니하였도다 43 그 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의 표적들을, 소안 들에서 그의 징조들을 나타내사 44 그들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그들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45 쇠파리 떼를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46 그들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셨고 그들이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47 그들의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그들의 뽕나무를 2)서리로 죽이셨으며 48 그들의 가축을 우박에, 그들의 양 떼를 번갯불에 넘기셨으며 49 그의 맹렬한 노여움과 진노와 분노와 고난 곧 재앙의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셨으며 50 그는 진노로 길을 닦으사 그들의 목숨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생명을 전염병에 붙이셨으며 51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들의 기력의 처음 것을 치셨으나 52 그가 자기 백성은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 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53 그들을 안전히 인도하시니 그들은 두려움이 없었으나 그들의 원수는 바다에 빠졌도다

 

다시 열 가지 재앙과 출애굽과 광야의 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을 목격하고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광야에서 한 일은 늘 원망과 불평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 하심을 믿지 않고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한 조그마한 일을 늘 기억하는데 다른 사람이 행한 큰일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하나님께서 행하신 어마어마한 일을 기억하지 않고 자신이 무언가 조금이라도 한 일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럴 수 있느냐고 늘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에 들여놓으십니다.

 

54~64절입니다. “54 그들을 그의 성소의 영역 곧 그의 오른손으로 만드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55 또 나라를 그들의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분배하시고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그들의 장막에 살게 하셨도다 56 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57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58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61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 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63 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64 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

 

애굽에서도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늘 원망과 불평하는 그들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그제야 간절히 주를 찾는 것 같지만, 그마저 아첨이며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았다면 행동을 고쳐야 하는데 고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정말로 잘못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심판을 받아 혼인도 못 하고 제사장들도 죽었습니다. 과부들은 곡도 하지 못합니다. 이런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이스라엘이며 오늘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 약속은 언제나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자기 죽음으로 그 약속을 지켜내십니다(15:17).

 

65~71절입니다. “65 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66 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67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며 69 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70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심판을 받아 다 망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아무런 구원의 조짐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께서 잠에서 깨신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합니다. 이런 표현은 주의 구원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시편 78편만이 아니라 다른 시편에서도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합니다. 이런 죄로 인하여 멸망하여 어떤 구원의 조짐도 없을 때 갑자기 임하는 구원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은 쉼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멸망하여 완전히 망하였다고 하는 일도 주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18:27).

 

완전히 망해버리고 어떤 구원도 없어 보이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십니다. 요셉도 아닙니다. 에브라임도 아닙니다. 요셉과 에브라임은 그들의 활과 무기를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자를 택하지 않으시고 양을 치는 어린 목동을 선택하십니다.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합니다. 이것이 다윗 언약입니다. 다윗 언약은 이미 유다 지파에서 왕의 지팡이가 나오리라는 야곱의 유언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49:10). 하나님께서 다윗을 목동에서 끌어내셔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십니다. 여기서는 다윗이 백성들을 잘 인도한 왕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다윗도 온전한 왕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윗도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이 주라고 하신 그 주님이 참된 목자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0:9~12절입니다.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예수님이 양의 문이며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만이 자기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습니다(10:18). 자기 목숨을 우리에게로 버려서 우리를 짊어지시고 그 목숨을 얻어 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홀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시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 자들을 모두 끌어안아 부활하신 일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 완성으로 인하여 승천하셔서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 자기 백성에게 보내주십니다. 그 성령이 임한 자들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게 됩니다. 이들이 말씀이 마음에 새겨진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요한복음 16:24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예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생각이 난다는 말은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십니다. 생각나게만 하실 뿐만 아니라 믿게도 하십니다(14:2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기에 하나님을 반역한 모습을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시편 78편에서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여도 그들은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마음에 기록하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31:33). 이 새 언약을 십자가로 이루신 예수님도 주의 죽음을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기억하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11:24,26). 기념하라는 말이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을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