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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6:1~17 은총의 표적을 보이소서! 2022. 1. 19

 

1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2 나는 1)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3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6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8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9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10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11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2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13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4 하나님이여 교만한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의 무리가 내 영혼을 찾았사오며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아니하였나이다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17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표제어를 다윗의 기도입니다. 고라 자손의 시가 나오는 중에 다윗의 시가 들어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고라 자손의 시도 다윗의 시로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고라 자손은 작곡이나 찬송 인도자로 보는 겁니다. 그런데 시편 전체를 다윗의 시라고 봐도 되는 이유는 구약 전체를 율법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벧전1:11).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주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절에서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가 감히 주님 앞에서 자신이 경건하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경건하다는 각주를 보면 주께서 은혜를 주신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은혜를 주신 자가 경건하다고 하는데 그 경건한 자는 시편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로 나타난다고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2절과 연결하여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에 가난하고 궁핍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 때 어떤 것을 은혜받았다고 합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도 통용되는 세상에서 잘 되는 일만을 은혜라고 한다면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2절에서 내 영혼을 보존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은 육신과 영혼을 분리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말합니다. 나의 육체적인 잘 됨만을 은혜로 여기면 육에 속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을 보존하여 달라는 말은 영적인 말입니다. 이 말은 영혼만 구원하여 달라는 말이 아니라 전인이 하나님이 관계성 속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다는 말입니다.

 

3~5절입니다. “봉독 종일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영혼이 쉬지 않고 주를 우러러보면서 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 사함으로 인한 영혼의 기쁨입니다. 내 영혼의 기쁨이 죄 사함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기쁘지 않다고 여기는 삶은 어떤 것들입니까? 가난, 질병, 외로움, 환경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신은 그런 문제만 해결되면 기쁠 것이라고 속입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무리 해결되어도 영혼의 참된 기쁨은 없습니다. 다시 공허하여지기에 또 다른 기쁨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종일 간구하는 은혜는 죄 사함으로 인한 영혼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선하심은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즐거워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가 후하심은 그 죄를 사하여 주심이 후합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들은 찬송가 가사처럼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다고 찬송합니다.

 

6~10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간구하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환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음으로 인하여 수많은 환난을 겪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께 간구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수많은 신 중에 주와 같은 이가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세상에 많은 사람이 많은 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런 신들은 참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주께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만이 위대하시고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찬양합니다. 우리가 어떤 환난 중에 기도할 때 그 환난이 해결되지 않아도 찬양이 나온다면 참된 기도입니다. 간구가 찬양으로 바뀝니다.

 

11~13절입니다. “봉독 이제는 환난으로 인하여 기도하지 않고 주의 도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도를 가르쳐주시면 주의 진리에 행하겠다고 합니다. 주의 진리로 행하는 일은 한마음으로 주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문제해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행하고 주를 경외하여 찬송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다고 합니다. 스올이란 무덤입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건지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음과 같은 환난에서 구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시편 16편을 봅니다. “봉독 다윗이 하나님께 피한다고 합니다.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고 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기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단지 자신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죽어서 무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멸망시키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기에 주 앞에서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이 있음을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예언한 다윗이며 성령이 임한 베드로와 바울이입니다(2:24~32, 13:35~39).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구약의 시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보고 믿게 됩니다.

 

본문 14~17절입니다. “봉독 앞 단락에서 스올에서 주께서 건져 주셨다고 찬양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를 치는 자들이 교만하고 포악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은 자를 공격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은 자기 앞에 주를 두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미 구원을 경험하여 주를 찬양하고 있는 자를 공격하는 자가 있기에 또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로도 어려움이 닥치면 흔들립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여 이런 환난이 오는가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긍휼과 은혜는 한량이 없기에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라고 바울도 베드로도 말하고 있습니다(딤전1:16, 벧후3:15). 그러므로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하여 달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이기에 더욱 대적들이 공격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흔들려고 하는 자들이 주를 그 앞에서 두지 않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구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스올에서 건져 올림을 받아 주를 모시고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를 주를 그 앞에 두지 않는 자들이 공격합니다. 주를 그 앞에 모시지 않은 자들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됩니다. 주를 그 앞에 두지 않은 교만한 자들이 자기 앞에 하나님을 둔 자를 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백성이며 구원받은 백성임을 알 수 있도록 은총의 표적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그 은총의 표적을 보여주시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분이라고 마무리합니다. 그러면 그 은총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나의 원수보다 더 강한 세상의 힘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은총의 표적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구원을 받으면 부자가 되는 길입니까? 나는 경건하다고 합니다. 경건한 자란 주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주께 은혜를 입게 되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심정으로 주의 의를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런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애통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원하지 않은 복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합니다.

 

마태복음 12:38~40절입니다.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수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음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표적 보여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합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실 유일한 표적이라고 합니다. 부활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삼 일간 무덤에 계심이 표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인 십자가의 도는 유대인들에게 저주받은 죽음이기에(21:23)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미련합니다(고전1:23).

 

오늘날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데 온갖 환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환난을 겪지 않는 사람보다 더 당당하게 기쁨과 감사로 산다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미쳤다고 말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간증이라고 말하면서 은총의 표적이라는 것이 과연 거리끼고 미련한 십자가의 도가 전해집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표적, 표징, 징표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나서 세상에서 잘 된 나를 증거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예수님의 증인이 아닙니다. 은총의 표적은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가 무엇을 이루신 표징입니까?

 

사도행전 2:24~32절입니다.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ㄴ)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16:8 이하)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 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3)이 일에 증인이로다

 

다윗이 선지자로 미리 본 은총의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제자들과 약 5백여 명의 형제들에게만 보여주셨고(고전15:5~6)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승천은 목격한 사람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증거 할 수 있는 내용은 십자가에 죽은 예수입니다. 이 사건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수천 명이 목격한 너무나 분명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저주받아 죽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셨고 승천하셨으며 그가 성령을 보내신다고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하면서 다시 오실 것도 전합니다. 그러므로 은총의 표적은 십자가입니다.

 

고린도전서 2:1~2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1)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하나님의 증거가 하나님의 비밀인데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 알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11~14절입니다.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은총의 표적은 십자가입니다.

 

빌립보서 3:18~21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십자가의 원수는 욕망이라는 신을 따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은총의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8~12절입니다.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1)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1)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 외에 다른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은총의 표적은 십자가이기에 성도는 그 십자가로 구원받고, 그 십자가를 전하고, 그 십자가에서 천국 갈 때까지 머무릅니다. 그 십자가가 요단강을 건너서 무한 영광입니다. 그러나 이 역사 속에서는 자기 부인이며 고난이며 환난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은총을 받았다고 십자가를 자랑하는 자가 성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