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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1~12 복이 있나이다 2022. 1. 5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그들이 1)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2022년 첫 수요일입니다. 아직도 새해에 복을 받으라는 인사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을 받으라고 하는 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우리의 문화적인 상황에서 말하는 복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유교문화라서 청백리가 존경을 받고 탐관오리로 부자가 된 자는 멸시하는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면서부터 물질적인 복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래전에 은행카드 광고에서 부자 되라는 광고를 노골적으로 하였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의 복은 무엇입니까?

 

표제어를 보면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입니다. ‘고라라고 하면 저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모세에게 반역한 일입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레위 지파의 자손인 고라가 주동이 되어 르우벤의 자손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함께 지도자 250명이 모세를 거역합니다. 고라가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는데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고 합니다. 마치 종교개혁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은 스스로 높인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강권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레위자손과 고라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고 합니다. 레위 지파가 여호와의 성막을 위하여 봉사하고 역시 레위지파인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니 불만이었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아론을 여호와께서 세우신 것인데 너희의 이런 행동은 여호와를 반역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엎드려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 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느냐며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합니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땅이 갈라져 반역자들이 산채로 스올에 들어가고 그들이 분향하던 향로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살라버립니다. 그리고 전염병이 일어나자 아론이 향로를 들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니 전염병이 멈춥니다. 이때 고라의 자손이라도 그 반역에서 떠난 자들이 있었기에 고라 자손의 시편이 나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고라 자손에 관하여 살펴본 이유는 고라 자손이 레위인인데 이들이 고라의 반역을 잘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윗 시대에 고라 자손은 성막의 봉사를 위하여 임명받습니다. 물론 그들의 조상들도 여호와의 진영 출입문을 지켰습니다(대상9:19, 대상26:1,19).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성전 문지기로 있는 일이 좋다는 말이 나옵니다. 성전 문지기만이 아니라 성전에 사용되는 전병을 굽는 일과(대상9:31) 찬송도 합니다(대하20:19). 고라 자손은 그들 조상의 반역도 알기에 성전의 봉사가 얼마나 귀한 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배경이 어떠한지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성전에 나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나가기를 갈망하면서 찬송합니다. 새 번역은 소제목을 붙이는데 예배의 기쁨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에 성전에서 예배할 때 그 기쁨을 알고 있는데 지금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배경이 앗수르에 의하여 침략을 받은 히스기야 왕 때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앗수르 왕이 유다를 공격할 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내라고 하자 히스기야 왕이 성전과 왕궁의 은과 금을 앗수르 왕에게 주었습니다(왕하18). 그러나 이 상황은 적들에게 포위는 당하였지만, 성전에 나갈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기도하였더니 적들이 하루아침에 185천이 송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배경이 어떠한가보다는 지금 시인이 하나님의 성전에 나가서 예배할 수 없기에 그 예배의 갈망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오늘 서론이 깁니다. 모퉁이 돌 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를 보면 북한 소식을 자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1년이 지났습니다. 그 당시에 북한에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정권을 차지함으로 많은 사람이 남한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 중에 신앙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 후손들이 지금도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소식을 보면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십일조를 모아 둔다고 합니다. 신앙의 자유가 오면 교회당을 짓겠다고 준비한답니다. 지금의 소원은 마음껏 찬송하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숨어서 몰래 예배하는데 들키면 강제 노역장에 끌려가거나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예배의 사모함이 어떠한지를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봉독 주의 장막을 얼마나 사랑하고 사모하였는지 상사병이 들어서 몸이 쇠약한 사람처럼 쇠약하여 졌다고 합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부릅니다. 만군(萬軍)은 이스라엘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만유(萬有)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유는 성전에 나가서 예배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정인지 이 사람은 지금 성전에 나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주의 제단을 보니 참새도 제비도 자기 집과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못 나가는 자기 신세보다 연약한 참새와 제비가 부럽다는 겁니다. 그들은 주의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기에 복이 있는 것입니다.

 

5~8절입니다. “봉독 주께 힘을 얻는 자들은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 예루살렘의 성전을 순례합니다. 몇 날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리는 여행을 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따로 분류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시인이 성전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전을 사모하면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앞 단락에서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단락에서는 지금 주의 성전에 나갈 수 없기에 그곳으로 가려는 마음이 있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마음이 있는 자들은 비록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준다고 합니다. 우리 찬송가에서도 눈물 골짜기 더듬으면서 나의 갈 길을 간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 힘을 얻어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은 그런 눈물 골짜기에서도 주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그 은혜로 힘을 얻고 더 얻어서 결국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어달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당이라는 장소에 모여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종착점이 아닙니다. 여기는 정거장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그 성소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이 아닌 하늘의 성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모임을 하는 곳에서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그 시온을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떠나자고 하는 모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를 않습니다. 우리 교회 자유 게시판에 서울지역의 개척교회를 소개하였습니다. 박정우 전도사인데 4평이 되는 공간에서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몇 사람이 왔을까요? 서울에서 교회 소개하여 달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본문 5~8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우리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까? 구약에서 이 말은 성전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그 성전이라는 건물이나 장소보다는 더 궁극적인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은 주께 힘을 얻은 자들입니다. 지금 비록 성전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마음은 시온을 향하여 대로가 열려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눈물 골짜기에서도 주의 은혜를 경험함으로 더욱 힘을 얻고 더 얻어 결국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성전만이 아니라 영원한 시온의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9:9~12절입니다. “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구약의 장막이나 성전은 모형이며 비유입니다. 영원한 장막은 이 창조에 속한 것이 아니기에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단번에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히브리서 10: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구약의 성전은 모형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피로 하늘 성소로 가는 자들이 신약의 성도입니다.

 

이어지는 23~25절입니다.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오늘 본문의 시인이 하나님의 집에 나아가 예배하기를 사모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신약의 성도도 모이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 성소에 관한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을 위하여서 모이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그날이 가까움이란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 영광의 날은 영원한 하늘 성소가 드러나는 일입니다. 내 사모하는 주님을 뵙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고 격려하기 위하여서 모여야 하는 교회 모임이 어떻게 변질이 되었습니까? 예배 성공하여 인생 성공하자는 말을 합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얼마나 열심히 모이는지 일주일 내내 모입니다. 때로는 하루에도 두세 번을 나갑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교회당으로 모으니 큰 건물을 세울 수 있고 보암직한 비전 센터는 많이 세워졌는데 정작 하늘 성소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세상의 힘을 키우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세상의 힘을 빼고 떠날 준비라는 하라는 모임을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나 핑계로 아예 모이지도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본문 9절입니다. “봉독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부릅니다.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방패이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봐 달라고 합니다. 구약의 기름 부음 받은 자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입니다. 이런 자들은 백성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일을 제대로 못 하면 주의 성전이 황폐하여지고 적들이 쳐들어와서 예배도 드릴 수가 없게 되기에 이들을 봐달라고 합니다. 주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살펴봐 주시면 그들의 회복으로 성전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12절입니다. “봉독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돌봐주심으로 성전이 회복되고 성전에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겁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일보다 낫다고 합니다. 주님이 왕이시니 주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나 궁정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어디서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집의 성전 문지기로 있음이 좋다고 합니다. 고라 자손이 성전 문지기를 했습니다. 성전 문지기가 고달픈 일이지만 내 사모하는 주님을 뵙는 일이기에 세상의 그 어떤 영광된 자리보다 좋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와 방패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좋은 것이란 무엇일까요? 시편 65:3~4절입니다. “3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주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셔서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기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복이란 주와 함께 사는 겁니다.

 

이번 토요일에 결혼하는 청년이 있습니다. 결혼을 왜 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랑해서 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데 왜 결혼합니까? 늘 함께 있고 싶은 것입니다. 연애할 때는 헤어지기가 싫은 겁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늘 같이 있고 싶은 겁니다. 아침에 같이 눈을 뜨고 싶다고 노래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환상이 깨어집니다만 그러나 성도는 그런 과정을 통하여서도 자신의 죄가 무언지 알게 되고 그 죄가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와 결혼하시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한 자는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린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그 영원한 시온을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길 다 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주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