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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5:1~13 의와 화평의 입맞춤 2022. 1. 12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3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4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거두소서 5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에 진노하시겠나이까 6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7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시편 85편도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고라는 지난주에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레위 지파는 성소에서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다가 산채로 땅이 갈라져 스올에 들어갔습니다. 표제어에 나오는 고라의 자손은 그 반역에 가담하지 않은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성전에서 주를 섬김이 얼마나 과분한 은혜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본문 1~3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를 부릅니다. 여호와는 언약하시고 언약을 이루어 내시는 언약의 하나님으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가 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여! 주여! 라고 부르는 것은 주의 언약을 따라 간구하는 주님이어야지 우리의 사적 욕망을 위한 부름이 아닙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셔서 약속의 땅에 심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게 되면 적들이 쳐들어와서 포로로 잡아갑니다. 이런 내용이 출애굽 때 시내 산 언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경험은 늘 반복됩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 은혜는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셨다고 합니다. 어디에 포로로 잡혀갔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작게는 팔레스타인 주변의 나라들이고 큰 나라로는 앗수르와 바벨론일 수 있습니다. 그런 포로 된 자리에서 돌아오게 된 자들은 자신의 능력이 결코 아닙니다. 2절을 보면 돌아오게 된 이유를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셨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3절을 보면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켜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1~3절은 과거에 구원받았음을 회상하는 겁니다.

 

본문 4~7절입니다. “봉독 1~3절을 통하여 전에 구원하신 그 은혜를 상기하면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우리를 돌이키시고 우리에게 향한 주의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돌아갈 수도 없기에 돌이켜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근거는 주의 진노는 잠깐이며 긍휼은 영원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할 것이라고 믿는 겁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일어난다는 말은 주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는 겁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구원을 받은 자들은 주를 바라며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8:56절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아브라함은 예수님의 날을 보리라고 기대하며 즐거워하였고, 마침내 보고 기뻐하였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뻐한 것은 백 세에 낳은 아들로 인한 기쁨보다 그런 약속을 이루어 내실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뻐하였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일평생을 통하여 믿은 그 믿음의 내용은 죽은 데서 살리고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4:17).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일들을 아브라함은 모형으로 받았지만, 그 실체는 예수님입니다.

 

본문 8~9절입니다. 1~3절은 과거의 구원을 기억하면서 4~7절은 지금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이라고 생각하면 자꾸만 면허증 따듯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타락이기에 구원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 구원 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8절을 보면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듣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라고 합니다. 어리석은 데란 화평의 말씀이 아닌 곳입니다. 그 화평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이며 이들에게 구원이 가깝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8~10절입니다.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바울이 이런 고백을 하는 이유는 구원받은 자라고 하여도 날마다 자기를 의지하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 소망까지 끊어질 환난 중에서 할 일은 전에도 건지셨고 지금도 건지시고 이후에도 건지실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환난 가운데서 건지실 것을 말씀하지만,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로 구원받았고 받고 있고 받을 것입니다.

 

본문 10~13절입니다. “봉독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인애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사랑이기에 화평과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진리는 의와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가 서로 만나고 입을 맞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대로 하면 모든 죄인은 다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애와 화평도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이 어떻게 같이 만나서 입을 맞추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로 인하여 진리가 땅에서 솟아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아벨의 피를 흘린 이 땅은 저주를 받아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땀을 흘려 먹고 살아가는 양식은 육체의 양식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스스로 진리가 솟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니 땅에서는 온통 흑암뿐입니다. 그런 흑암의 땅에서 진리가 솟아나는 일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만 땅에서 진리가 솟아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주신 좋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좋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입니다(11:13). 그러므로 땅이 산물을 낸 그 산물이 의가 됩니다. 의가 주의 앞에서 앞서가며 주의 길을 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하나님의 의와 화평이 입을 맞춘 겁니다.

 

이사야 55:10~11절입니다.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 성취를 비를 비유로 말씀합니다. 비가 흘려 내려가지 않고 땅에서 소출을 내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그 열매를 맺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비처럼 내려서 땅에서 진리가 솟아나는 방식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을 이루시는 일에 끌려 들어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성도입니다. 이들은 헛된 양식을 위하여 재산을 허비하다가 값없이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찾게 된 자들입니다(55:1~2). 하나님의 말씀 성취가 이런 모습입니다.

 

로마서 15:8~9절입니다. “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함과 긍휼을 어떻게 이루어 내십니까? 진실함은 그리스도도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긍휼은 할례도 없는 이방인들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면 구원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에베소서 2:11~13절입니다. “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의와 화평이 입을 맞추어 땅에서 진리가 솟아 나와 의의 생산물이 나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기서 이방인이 포함됩니다.

 

이어지는 14~18절입니다.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막힌 담을 예수님의 육체의 죽음인 십자가로 허무시고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셔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내용을 오늘 본문인 시편에서 다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시편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도 비를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도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서 오셔서 죽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이루시는 의의 일입니다.

 

이어지는 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삼위 하나님의 일하신 결과로 땅에서 나온 주의 처소가 성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봉독죄와 인하여 포로 된 자들이 주의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죄를 용서하여 주셔야 합니다. 그 죄를 용서하심이 긍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와 화평이 입을 맞추는 자리가 십자가이며 그 십자가로 인하여 의가 생산되어 나온 자들이 이 땅의 교회이며 성도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는 자들입니다.

 

박진희 씨의 시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성령님이 하늘과 땅에서

서로 하나 되시어

최상의 은혜를 이 땅에 베푸시니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늘 화평으로 덮으시네

다시는 왔던 길 되돌아 가지 말라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포로 된 자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만 바라봤을 때

구속의 은혜로 어린 양의 피로 생명을 얻고

주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넜던 날

그날들을 다시 한번 기억합니다

 

죄를 알라 하며 주신 그 율법의 자유가

오히려 멍에가 되어 지킴의 자리가

내 육신의 쇠사슬 되니

하나님이 기쁨이 아니라 나의 분노가 됩니다

도망자 되어 스스로 간 길엔 고뇌와 슬픔만이

나의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처음부터 예비하신 어린 양의 피로 시작한 구속

언젠가는 이 희미한 기억을 반추하며

마지막에 예비하신 십자가의 피를 바라볼 것을

 

온전한 자유를 주시려 그 율법을 몸에 묶고

하늘을 우러러 땅에 묻고 솟아나

육신의 구속이 아닌 심령의 해방을

화평으로 인치시며 영원한 자유자 되어

다시는 왔던 길 되돌아가지 말라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가 되시어

서로 입 맞추며 뿜어낸 사랑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