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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3:1~28 악인의 형통    2021. 10. 20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1)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2)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표제어에 아삽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시편 73편부터 83편까지가 아삽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50편도 아삽의 시이기에 모두 열두 편입니다. 아삽은 레위인으로 찬양대의 우두머리입니다(대상16:4). 그리고 히스기야 왕 때 레위 사람들에게 찬양하게 하는데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합니다(대하29:30). 아삽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라는 말입니다.

 

시편 73편의 구조를 먼저 봅니다. 1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반적인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인 줄 압니다. 그런데 악인이 형통한 것에 대하여 이해되지 않는다고 2~12절까지 하소연합니다. 시인은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하는 데도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다고 합니다(13~14). 그래서 그 악인들처럼 말할까 할 정도로 이 문제로 인하여 심한 고민 중에 성소에 들어가서 깨달았다고 합니다(15~17). 그 깨달은 내용은 악인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을 보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 자신이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 하늘과 땅에서 사모할 분은 주님뿐이라고 하면서 주님을 가까이함이 복이라고 합니다(18~28).

 

본문 1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십니다. 이런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신이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정의로운 신이 있다면 악인에게 천벌을 내리고 의인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그런 정의로운 신이 없다고 여깁니다. 더구나 오늘 이 시대는 그런 사상이 더욱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기에 용감한 시대입니다.

 

2~3절입니다. 봉독 아삽은 선견자입니다. 그런데도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악인을 형벌하시고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율법이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끄러질 뻔한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이란 각주에 평안함입니다. 이런 질문은 성경 곳곳에서 나옵니다. 시편 37편에서도 나오고 하박국서에도 나옵니다.

 

하박국 1:13절과 4절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이스라엘 주변의 강대국이 이스라엘을 집어삼키는 일에 관하여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묵시는 정한 때가 있기에 종말이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합니다(2:3). 그래서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고 합니다(2:4).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질문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신이 있다면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는 겁니다.

 

본문 4~11절입니다. “봉독 악인의 형통함과 평안함을 보면 이 사람은 가장 정결하게 산 사람이 받는 복을 받은 모습으로 보입니다. 선한 자에게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공의로운 신이 있다면 이 사람의 모습은 가장 선한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선견자 아삽이 볼 때 이 사람은 아주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형통한 삶을 사는가 하는 겁니다. 죽을 때 고통도 없이 잘 죽고, 힘이 강건하고,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과 재앙이 없고, 소독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습니다. 이런 자는 교만하고 능욕하고 거만합니다. 그 입이 하늘과 땅에 두루 다닌다는 말은 하나님도 사람도 무시하는 겁니다. 그러자 백성들도 그 악한 자의 영향을 받아 살면서 하나님이 어찌 알겠느냐고, 지존 자에게 지식이 있는가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늘어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선견자인 아삽조차 이런 질문을 하였다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세상에 많은 사람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세상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믿고 살아갑니까?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시편 50:16~21절입니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아삽의 시입니다. 여기서도 악인을 하나님께서 즉각 즉각 벌하지 않으시니 이런 모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네 죄를 네 목전에서 차례로 베풀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돌이키라고 합니다.

 

전도서 8:11~14절입니다.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벌이 즉각 임하지 않으니 악을 행하는 일에 담대합니다. 악인들이 받을 벌을 의인이 받고 의인들이 받을 상을 악인이 받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잠잠히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본문 13~15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13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14 하나님, 주님께서는 온종일 나를 괴롭히셨으며, 아침마다 나를 벌하셨습니다. 15 "나도 그들처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다면, 나는 주님의 자녀들을 배신하는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다면 차라리 악인으로 사는 일이 낫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다고 해서 나도 악인처럼 살 수는 없는데 온통 재앙과 징벌뿐이니 심한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아삽은 이 고민을 안고 성소에 들어갑니다.

 

17~19절입니다. “봉독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그 악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께서 그들을 파멸에 던지시니 갑자기 황폐하여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다고 합니다. 완료형입니다. 이것이 바로 묵시적 시각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 악인이 형통하고 죽을 때 고통도 없고 재산은 늘어나고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주어도 악인이 당하는 재앙과 고난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가서 깨달은 바는 그들이 이미 심판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사야 6:1~5절입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아삽이 성소에서 악인의 종말이 어떠한지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깨달았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본 내용을 보았습니다. 아삽도 선견자 곧 선지자입니다. 이사야도 선지자입니다.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 영광의 현현 앞에서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러한 고백을 하였다면 다른 악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삽은 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든지 그 거룩함과 영광을 경험하였든지 모르지만, 악인이 이미 전멸하였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악인이 아직 온 세상에 가득한데 어떻게 악인지 전멸하였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성경의 독특한 시간 개념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운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서양철학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 개념과 인과율과 같은 내용은 서양철학이 바탕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시간 개념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완료된 것으로 말씀합니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자신이 있었고 아브라함은 자기를 기다리다가 보고 즐거워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그런 시간 개념이 있어도 예수님은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언제나 현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인은 이미 심판을 받아 진멸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도 이미 사라진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이는 자들은 이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진멸 당하여 마땅한 자임을 인식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종말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시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46:10). 이번 주 성경 읽기 본문인 이사야 47장에 바벨론을 여주인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 나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면서 과부가 되지 않을 것이며 자녀를 잃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종말을 생각하지 않는 모습입니다(47:7).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는 종말을 알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39:13, 90:12).

 

우리가 이사야와 아삽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예배당에 와서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악인을 어떻게 처리하시는데 이미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에 나오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사람들은 정의로운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지금도 온 세상에 악이 가득합니다. 그들이 오히려 큰소리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는다면 악인의 형통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머리 위에 있습니다. 물론 시간을 빼버리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우리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잠언 24:1~2,19~20절입니다. “1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19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있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장래가 없습니다. 악인의 등불을 꺼집니다. 묵시적으로 보면 그들은 이미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간 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나 아삽이 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입니다. 물론 성소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서도 자신들의 죄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 어떤 고백을 하겠습니까?

 

본문 20~22절 새 번역입니다. “20 아침이 되어서 일어나면 악몽이 다 사라져 없어지듯이, 주님, 주님께서 깨어나실 때에,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21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22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악인의 형통함도 한낮 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깨실 때, 곧 주님께서 일하실 때 그들은 한낱 꿈처럼,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악인들은 지금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세상의 헛된 권력과 금력과 영광을 위하여 온갖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본문 23~28절입니다. “봉독 주와 함께 하는 자들은 주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오히려 주께서 붙들어 주시니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의 교훈, 곧 주의 말씀으로 인도합니다. 우리의 어떠한 문제들도 주님의 말씀에 이미 답이 나와 있고 결론이 내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내 뜻대로 하려고 하니 답답하고 믿지 않으니 힘 드는 겁니다. 이미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그 약속 안에 사는 자들은 세상을 가볍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성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고난을 통과하지만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임을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서 주밖에 사모할 분이 없다고 합니다. 내 마음과 육체가 쇠약하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과 영원한 분깃입니다. 그러므로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완료형입니다. 음녀는 세상과 벗 되고자 하는 것이기에 간음입니다(4:4).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함은 말씀을 가까이합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다 사라져도 주님이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기에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