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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6:1~12 주께서 꾸짖으시매 2021. 11. 10

 

1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도다 (셀라) 4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5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10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12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오늘 본문도 아삽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본문 전체를 간략하게 본 후에 역사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역사적인 사건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내용상 일치하는 내용을 살펴본 후에 이런 내용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는지까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말씀이 옛날 옛적에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다고 합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전체에 하나님이 알려지고 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라고 따로 말하는 이유는 다윗 언약을 따라 예루살렘에 성전을 두셨기에 특별히 유다를 언급하고 있다고 봅니다.

 

2절입니다. 그의 장막, 곧 하나님의 장막이 살렘이 있으며 그 처소는 시온에 있다고 합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하나님의 처소를 예루살렘 시온에 두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위를 영원히 허락하겠다고 하셨기 때문에(삼하7:16) 다윗의 성으로 불리는 시온(삼하5:7) 곧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장막을 두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성전을 위하여 준비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입니다.

 

3절입니다. 거기란 곳 하나님의 장막과 처소가 있는 곳인 시온산 예루살렘에 전쟁을 없애버리십니다. 그래서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하셨다고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자입니다(삼상25:28). 이 말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한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전쟁은 화살과 방패와 칼을 많이 가지는 군사 대국을 만드시는 일이 아니라 살렘 곧 평화의 나라를 만드십니다. 스가랴 9:9~10절을 보면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셔서 전쟁하는 무기를 없애버리고 평화를 전합니다.

 

4~9절입니다.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롭고 존귀하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여호와의 전쟁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것을 약탈해간 세력을 주께서 되찾아 오시는 전쟁의 표현입니다. 그런 여호와의 전쟁을 하실 때 마음이 강한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힘 있는 장사들도 도움을 줄 수가 없게 됩니다. 주께서 꾸짖으시면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듭니다.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 누가 주의 목전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심판입니다. 온유한 자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10~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신 결과는 사람의 노여움이 주를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십니다. 사람들이 분노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분노합니다. 그러나 이런 분노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버리면 그 심판 자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남은 분노는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께서 고관들의 기를 꺾으신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은 호흡을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왕들이 두려워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심판을 오늘 본문에서 주께서 꾸짖으신다는 표현으로 합니다. 꾸짖는다는 말은 윗분이 아래 사람을 책망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높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 없기에 하나님의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한 번 꾸짖으시면 어떤 일어나는 것입니까? 유다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온 대군이라도 깊이 잠들게 될 뿐만 아니라 영원히 잠들게 만들어버리는 죽음이라는 심판이 집행됩니다. 이제 주의 꾸짖음을 보겠습니다.

 

역대상 16:15~22절입니다. “15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16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17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18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9 그 때에 너희 사람 수가 적어서 보잘것없으며 그 땅에 객이 되어 20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백성에게로 유랑하였도다 21 여호와께서는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시고 그들 때문에 왕들을 꾸짖어 22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해하지 말라 하셨도다

 

다윗의 시편입니다. 이 배경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메고 온 후에 찬양한 내용입니다. 처음에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정병 삼만을 동원하여 자기가 언약궤를 호위하여 오려고 하다가 베레스 웃사 사건이 일어나 실패하고 두 번째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온 것입니다. 7~8절을 보면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으로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리라고 합니다. 그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내십니다. 그런데 언약을 받은 자들은 믿음이 없어 거짓말도 하고 자기 살기 위하여 아내를 바로 왕에게 내어 주지만 하나님은 바로 왕을 꾸짖으십니다. 이러한 일들로 아브라함은 믿음이 자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씨를 약속하실 때 그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라고 바울 사도가 증거 합니다(3:15).

 

열왕기하 19:20~24절입니다. “20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보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하셨나이다 2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비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23 네가 사자들을 통하여 주를 비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많은 병거를 거느리고 여러 산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 깊은 곳에 이르러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잣나무를 베고 내가 그 가장 먼 곳에 들어가며 그의 동산의 무성한 수풀에 이르리라 24 내가 땅을 파서 이방의 물을 마셨고 나의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강들을 말렸노라 하였도다

 

산헤립이 여러 나라를 무찔렀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하여서도 교만하여 졌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을 듣지 말라고 하면서 조롱하는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이 편지를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펴 놓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산헤립의 태도가 여호와를 꾸짖고 비방한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처녀 딸 시온을 조롱하는 일은 하나님을 꾸짖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온은 작고 연약합니다. 앗수르와 같은 무기도 없고 군사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는데 이러한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것이 하나님을 꾸짖는 일이며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꾸짖는다는 말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높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을 꾸짖으면서 사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계신다면 세상이 왜 이러느냐며 원망합니다. 기도하는 내용도 하나님이 나에게 이러시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기도조차 하나님을 꾸짖는 일이 되는 겁니다. 또는 내가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니 나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한다면 이런 예배도 사실은 하나님을 꾸짖은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산헤립만 하나님을 꾸짖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는 것도 하나님을 꾸짖는 일입니다.

 

이어지는 25~28절입니다. 봉독하나님께서 사용하시려고 심판의 도구로 산헤립을 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산헤립은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셔서 이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이런 교만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향한 분노이며 하나님을 꾸짖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연약한 딸과 같은 시온을 조롱하는 모습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며 하나님을 꾸짖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갈고리로 네 코에 꿰고 재갈을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신다고 합니다.

 

32~34절입니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29~31절은 연약한 딸과 같은 시온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합니다. 읽은 본문은 산헤립이 이 성을 향하여 화살도 쏘지 못하고 방패로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고 토성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언약하신 그 언약으로 인하여 이 성을 보호하고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을 여호와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5~37절입니다.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여호와를 꾸짖은 산헤립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다 송장이 됩니다. 그리고 산헤립은 홀로 돌아가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게 믿었던 신 앞에서 죽임당함은 여호와를 꾸짖은 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꾸짖은 결과가 이러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꾸지람을 듣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8:26~27절입니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 어부인 제자들이 두려워죽을 지경입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릅니다. 바람과 바다를 창조하신 분이시기에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마태복음 17:18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불에도 물에도 넘어진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십니다. 바다와 바람을 꾸짖으시며 귀신도 꾸짖으시셔서 쫓아내시는 주님입니다. 그런데 제자도 꾸짖으십니다.

 

마가복음 8:33절입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제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행을 가로막고 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시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꾸짖음을 어디에서 듣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산헤립과 같은 많은 군대와 무기를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런 힘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계시를 보시면 이런 모습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구약의 성경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의 눈이 감겨 있기에 힘 있는 메시아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의 일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아의 일을 하시자 모든 사람이 다 돌아섰습니다. 십자가를 보고 온갖 조롱을 하는 일이 하나님을 꾸짖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립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꾸짖으신 이유는 베드로와 같은 생각이 사탄이 심어준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는 십자가의 사건을 알게 하신 일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십자가로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알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예수 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조롱하는 일이 하나님을 꾸짖는 일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꾸지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두 곳만 보고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입니다.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십자가로 완성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성령의 임함으로 알고 믿게 된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독하는 일이 심판입니다.

 

베드로전서 4:16~19절입니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1)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바울이나 베드로나 간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 복음은 세상의 힘을 주는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순종하지 않음이 심판인데 하나님의 집부터 심판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구약은 성전이지만 신약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복음을 순종하지 않으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버리면 그것이 심판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집, 교회가 이러하다면 복음을 멸시한 세상은 어떤 심판이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꾸짖음을 받아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이 영원한 복을 받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