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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9:1~13 우리는 주의 백성 2021. 12. 1

 

1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 8 우리 1)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9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 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10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주소서 11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12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시편 79편도 아삽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적 배경으로는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는 때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극심한 곤경에 처하였을 때 어떤 기도와 소망이 나오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아삽의 시로 되어 있는 시편 74편도 오늘 본문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대적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있는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다고 합니다. 이러할 때 주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고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봉독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렀지만,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하므로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하소연합니다. 이렇게 처절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주의 기업, 주의 성전, 주의 종, 주의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까?

 

주의 기업, 주의 성전, 주의 종, 주의 성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음 단락에서 나옵니다만 조상들의 죄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8, 9).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이미 율법에서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면 복이 임하지만 어기면 저주가 임한다고 시내 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결과입니다.

 

신명기 28:25~26절입니다. “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준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 내용 중에 아주 일부만 보았습니다만 이 언약의 저주가 지금 예루살렘에 임한 것입니다. 적들이 쳐들어와서 성을 파괴하고 성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였는데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매장할 자도 없이 짐승의 밥이 되는 실정입니다. 이러함에도 주의 기업, 주의 성전, 주의 종, 주의 성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인은 이런 언약의 저주가 임하는 것은 아직 언약이 파기되지 않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5~9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 어느 때까지 노하시겠느냐고 합니다. 영원히 노하시겠느냐고 합니다.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겠느냐고 합니다. 이런 간구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되지 않았음을 아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진노는 잠깐이며 은총은 평생임을(30:5) 알기에 이런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진노는 주를 알지 못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에 쏟으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렇게 간구할 수 있음은 자기들의 죄를 알고 주의 이름으로 용서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하는 이 엄청난 재앙이 임한 것은 조상들의 죄악과(8) 우리 죄라고 합니다(9). 그러나 우리의 죄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의 이름의 영광과 주의 이름을 증거 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져주시고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나의 영광과 나의 이름을 증거 하기 위한 구원이 아니라 주의 이름의 영광과 주의 이름을 증거 하기 위한 구원, 곧 죄 사함입니다.

 

10~12절입니다. “봉독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겠느냐고 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당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전혀 없는 모습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찌 저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하는 이방인들의 비방과 조롱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 보여달라고 합니다. 주의 종들이 심판을 당하는 일은 언약을 어김으로 인한 것이지만 이 일을 보고 이방인들이 조롱하는 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비방하고 조롱하는 일이 되기에 이렇게 간구합니다. 그래서 갇힌 자, 죽이기로 정해진 자도 주의 크신 능력으로 보존하여 달라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은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아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원수 갚는 일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13절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시체들이 매장되지 못하여 짐승들에게 먹히는 그런 지경입니다. 어떠한 구원의 조짐도 없습니다. 그래서 온 이방 나라들이 조롱하고 비방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주의 백성이며 주의 목장의 양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겠다고 합니다. 구원이 일어나고 이런 고백을 한다면 이해가 되지만 그런 구원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주와 비방을 받는 자리, 누가 봐도 버림받은 그 자리에서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옵니까?

 

앞에서 신명기 28장을 잠시 보았습니다. 신명기 28장은 축복과 저주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복을 받지만,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이런 언약의 체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시내 산에서 모세가 언약 중보자가 되어 언약을 체결합니다. 그러나 광야 40년 동안 그 언약을 지키지 못함이 다 드러납니다. 그러함에도 모세가 죽기 전에 모압에서 다시 언약을 갱신하면서 축복과 저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이방인에게 더럽혀지고 시체를 매장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만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이 드러나는 일입니다. 이런 저주가 임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버려진 백성이며 언약이 파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버려둠이 심판입니다.

 

욥기 10:20~21절입니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욥이 까닭 모를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친구가 와서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모르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말하는 죄는 짓지도 않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하여 자기 생일을 저주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냥 내 버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잠시라도 평안하게 될 거라고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잠시라도 내 버려달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욥 7:19 절에서는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께서 버려두지 않으심의 증거입니다.

 

로마서 1:28~32절입니다. “28 또한 그들이 5)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6)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이런 일을 옳다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면 이런 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고난입니다. 고난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을 잃음이 크다면 어떤 사람은 명예가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에 주께서 책망하시고 돌이키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버려둠은 심판이지만 고난을 통하여 돌이켜 주시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히브리서 12:5~8절입니다.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오늘 본문 1~4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이방 나라가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고 주의 종들, 주의 성도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됩니다. 그들을 매장할 사람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예루살렘의 파괴를 보고 이웃 나라들이 비방을 하고 조롱을 합니다. 이렇게 망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이방인들이 말합니다(22:9). 이러한 비방과 조롱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13절에서도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겠다고 합니다. 이들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본문 9절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 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합니다.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9:10). 주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이스라엘을 통하여 알려주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약속하신 일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의 언약을 배반함으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더럽혀지고 시체를 매장할 자도 없지만,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주의 이름의 증거를 위하여 구원하여 주시고 죄를 사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레미야 14:20~21절입니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우리 조상과 우리의 죄로 인하여 멸망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주님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 주의 영광의 보좌를 위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자기 언약에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내시는지를 보면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다니엘 9:18~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바 됨이니이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우리의 공의가 아니라 주의 긍휼을 의지하며 주님 자신을 위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둔 백성이기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든 말씀의 성취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주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온갖 비방과 조롱을 죄 없는 분이 우리의 죄가 되셔서 받으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 모든 간구가 십자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고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지만 사흘 만에 살아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20:18,19). 그러므로 그 십자가는 온갖 조롱과 비방을 받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비방과 조롱은 예수님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를 짊어지셔서 받은 조롱과 비방입니다. 그 조롱과 비방을 받으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시니 성령이 임한 사도들도 이 조롱과 비방의 길로 갔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부활을 증거 하여도 조롱합니다(17:32). 재림을 말씀하여도 조롱합니다(벧후3:3). 자기 정욕대로 사는 자들이 믿음을 따라 경건하게 사는 자들을 조롱합니다(1:18). 바른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사는 삶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세상의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저주받고 미련하고 그래서 온갖 비방 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을 창조주와 구원의 주와 심판의 주로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세상의 비방을 받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 영광의 영이 그와 함께 하는 증거입니다(벧전4: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조롱과 비방은 하나님의 영, 영광의 영이 함께 합니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하나님의 영광이기에 그 영이 고난받는 성도들과 함께하기에 하나님께 영광입니다(벧전4:16).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 일어나는 교회에 대한 비방과 조롱은 어떤 것입니까? 세상에 속한 사람들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기에 오는 비방과 조롱입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교회와 교인을 조롱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방과 조롱을 통하여 우리를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비방과 조롱을 당함이 자기 조상들의 죄와 자기들의 죄로 인함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런 조롱과 비방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서 세상의 헛된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저주받아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바로 알게 하여 주시고 그 영광을 구하며 살 수 있도록!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여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