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14~21 에돔의 거절 2021. 1. 24

 

14 모세가 가데스에서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며 이르되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말에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 15 우리 조상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주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조상들과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16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이제 우리가 당신의 변방 모퉁이 한 성읍 가데스에 있사오니 17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 한다고 하라 하였더니 18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20 그는 이르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21 에돔 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이 그의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

 

지난번에 민수기 20:1~13절에서 므리바 물에 관하여 말씀을 보았습니다.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물이 없어서 원망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정한 반석 위에 서실 텐데 그 반석을 치라고 합니다. 모세가 반석을 치니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백성들과 짐승들이 마셨습니다. 광야 생활 마지막 때 다시 물이 없어서 백성들이 원망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위에 대하여 명하지 않고 반석을 칩니다. 이 사건은 여호와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모세와 아론이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갑니다.

 

오늘 본문 14~21절입니다. 봉독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정중하게 말합니다. 당신의 형제 이스라엘의 고난에 대하여 당신도 잘 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곧 에서의 형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겁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곳이 얍복강입니다. 얍복강을 건넌 야곱과 에서가 화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후손들은 야곱의 후손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에돔의 왕이 야곱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창세기 25:23~26절입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1)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나중에 로마서에서 찾아보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태어나기도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성경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이런 내용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인간을 이렇게도 철저하게도 무시하느냐는 겁니다.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하나는 미움의 대상으로 다른 하나는 사랑의 대상으로 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믿어집니까?

 

에서와 야곱의 근원을 보면 쌍둥이입니다. 외모가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이란성 쌍둥이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죽을 고생을 하고 또 장애인이 됩니다. 에서는 사병만 400명을 거느릴 정도로 강력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세상의 형통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환난을 겪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함이 참된 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돔의 왕이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음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출애굽기 15:14~15절입니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홍해 바다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홍해 바다를 건넌 소식을 들은 주변의 모든 나라가 두려움이 사로잡힙니다. 여기에 에돔의 두령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홍해 건넌지 약 40년이 지났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형제라고 하면서 정중하게 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여도 열어주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민수기 24:17~18절입니다.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왔던 발람이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에돔이 야곱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사무엘하 8:13~14절입니다.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2)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다윗 시대에 에돔을 복속시키지만, 그 후에 다시 에돔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로 등장합니다. 에돔의 모습을 몇 곳 더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49:19~18절입니다. “16 바위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7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한 것 같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으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에돔에 사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함부로 사람들이 공격하지 못하는 요새화된 곳에서 살아갑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됩니다. 그 모습이 아벨을 죽인 가인의 모습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가인이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문명을 발달시키는 것은 모두 자기를 위한 겁니다. 이런 모습이 에돔에서도 나오기에 멸망을 하는데 그 멸망이 소돔과 고모라 같을 것이기에 지나는 자들이 다 놀라게 됩니다.

 

이사야 34:5~8절입니다. “5 2)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 6 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숫양의 콩팥 기름으로 윤택하니 이는 여호와를 위한 희생이 보스라에 있고 큰 살륙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 7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가 함께 도살장에 내려가니 그들의 땅이 피에 취하며 흙이 기름으로 윤택하리라 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

 

오늘 오전에 이사야 34:1~4절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다 사라지는 심판인데 그 심판이 땅에서 누구에게 집행이 됩니까? 에돔입니다. 에돔은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들이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적들에게 침략을 당할 때 에돔도 같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사로잡아 팔아먹은 자들이 에돔 족속입니다. 그러므로 에돔이 심판을 받습니다.

 

에스겔 35:1~5절입니다.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 산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 3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세일 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가 황무지와 공포의 대상이 되게 할지라 4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네가 황폐하게 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5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마지막 때에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도다에돔이 이스라엘의 환난 때 어떻게 하였습니까? 형제라도 도와주기는커녕 한을 품고 칼의 위력에 그들을 넘겼다고 합니다.

 

말라기 1:2~5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2)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말라기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지만, 여전히 주변의 강대국에 의하여 시달림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선지자를 통하여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죽을 만큼 고생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사랑이냐고 따질 겁니다. 그때 하나님의 답변이 내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에서를 미워하여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무너뜨림을 당하여도 다시 쌓는다고 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불굴의 의지입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겠다고 요새를 만들어 스스로 힘을 강하게 하여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야곱도 에서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외삼촌 집에 가서 교묘하게 재산을 늘리는 모습을 보면 야곱은 에서보다 더 악착같이 자기를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기에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그래서 끝까지 따라가셔서 무너뜨립니다. 얍복강 가에서 그 환도뼈를 쳐서 장애인으로 만들어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꿉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호세아 12:1~6절입니다.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에브라임이기에 에브라임이라고 합니다. 에브라임이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기에 책망하면서 유다도 함께 책망합니다. 북이스라엘이나 유다나 간에 야곱의 속성이 그대로 나옵니다. 야곱이 형 발뒤꿈치를 잡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이겼다고 말하기 그러니 천사라고 하지만 하나님이 져주신 겁니다. 어느 정도로 져주신 겁니까?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져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에서는 이런 유다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힘을 쌓아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특징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일을 무조건 싫어합니다. 오늘 본문을 봐도 모세가 그렇게 정중하게 형제라고 하면서 길을 좀 열어달라고 하는데 거절합니다. 이것이 미움을 받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적용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무조건 싫어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도 않고 거저 자기들이 아는 것으로 욕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의 모습이 세상 사람보다 더 세속적이어서 욕을 얻어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교인들에 대하여 나쁜 감정도 없고, 심지어 교인들을 좋게 보는 사람이라도 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에돔이 거절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는 그 말씀도 오늘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야곱은 끝까지 무너뜨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미움을 받은 에서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도록 버려두십니다.

 

로마서 9:7~18절입니다.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ㄱ)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ㄴ)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ㄹ)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ㅁ)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ㅂ)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자신이 진흙 덩어리임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긍휼을 베푸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을 믿는 자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이 진흙 덩이임을 알고 주님께 모든 처분을 맡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