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1:21~35 길을 열어라! 2021. 2. 28


21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22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23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치므로 24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25 이스라엘이 이같이 그 모든 성읍을 빼앗고 그 아모리인의 모든 성읍 헤스본과 그 모든 촌락에 거주하였으니 26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시혼이 그 전 모압 왕을 치고 그의 모든 땅을 아르논까지 그의 손에서 빼앗았더라 27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이르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28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 29 모압아 네가 화를 당하였도다 그모스의 백성아 네가 멸망하였도다 그가 그의 아들들을 도망하게 하였고 그의 딸들을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포로가 되게 하였도다 30 우리가 그들을 쏘아서 헤스본을 디본까지 멸하였고 메드바에 가까운 노바까지 황폐하게 하였도다 하였더라 31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땅에 거주하였더니 32 모세가 또 사람을 보내어 야셀을 정탐하게 하고 그 촌락들을 빼앗고 그 곳에 있던 아모리인을 몰아 내었더라 33 그들이 돌이켜 바산 길로 올라가매 바산 왕 옥이 그의 백성을 다 거느리고 나와서 그들을 맞아 에드레이에서 싸우려 하는지라 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와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할지니라 35 이에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다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더라

 

민수기 20:14~21절을 에돔의 거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보았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이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후손입니다. 족보를 따라 올라가면 이삭과 리브가가 낳은 쌍둥이 형제입니다. 그래서 형제라고 호칭하면서 아주 정중하게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지만 거절합니다. 그렇게 거절하는 이유가 무언지 성경 전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은 장차 메시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메시아를 거절하는 것이기에 저주가 됩니다. 그래서 에서가 비록 땅에서 강한 민족으로 살아간다고 하여도 하늘의 기업을 얻지 못하는 겁니다. 모압과 암몬도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땅은 그들에게 준 기업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2:8~9, 19절입니다. “8 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모압과 암몬은 롯과 두 딸 사이에 나온 민족입니다(19:36~38). 그들에게 주신 땅은 이스라엘이 차지하지 못 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회하여 아모리 사람의 땅에 이릅니다.

 

오늘 본문 21~24절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어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에돔 족속에게 길을 열어달라고 하듯이 아주 공손하게 요청합니다.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모리 왕은 거절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칩니다.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고 하지만 암몬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앞에서 본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25~31절입니다. 아모리 왕 시혼이 사는 헤스본은 원래 모압 민족이 살던 곳입니다. 그런데 시혼이 모압 왕을 치고 그곳을 차지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어떤 시인이 지은 노래가 있습니다. 27~29절을 시혼이 모압을 친 노래인데 이러한 성읍을 이스라엘이 차지하였기에 30절에서 이스라엘이 아모리를 쳐서 멸한 내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모리 사람의 땅에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합니다.

 

32~35절입니다. 아모리인의 땅 야셀도 점령합니다. 이렇게 약속의 땅으로 가는 중에 요단강 동쪽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던 바산 왕 옥이 백성을 다 거느리고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나니 너는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인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 같이 그에게도 행하라고 합니다. 그 말씀대로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의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바산 왕 옥이 거인임을 그의 철로 된 침대의 길이가 아홉 규빗 폭이 네 규빗으로 말합니다(3:11).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습니다. 거의 다 가로막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은 가로막아도 그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찾아본 대로 하나님께서 롯과 두 딸 사이에 태어난 모압과 암몬에게 그 땅을 기업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이 차지한 땅은 이 세상에 속한 땅이기에 결국은 멸망할 땅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심을 이런 내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길을 가로막는 아모리 족속은 공격하여 진멸하게 합니다. 아모리 사람들은 왜 점령하게 하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9:20~27절입니다.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1)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이 사건으로 함이 저주를 받지만, 오히려 땅에서 강대합니다.

 

창세기 10:6~20절입니다. “봉독함의 후손들 족보입니다. 이름들은 대부분 지역의 이름과 연결됩니다. 함의 후손들이 차지한 땅이 바벨론 지역과 이집트와 그 사이의 가나안입니다. 그러므로 두 제국을 차지한 후손이 됩니다. 그래서 니므롯과 같은 세상의 영웅이 함의 후손에게서 나옵니다.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후손들이 셈의 종들의 종이 되리라고 하였지만, 오히려 세상에서는 강대한 나라들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기에 함의 후손들을 정복하게 되는 일이 모세와 다윗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것도 이 땅에서는 부분적으로만 그렇게 됩니다. 결국 이런 내용을 통하여 메시아의 길을 열어주는 자는 복을 받지만, 메시아의 길을 가로막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15:16~21절입니다.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5:1~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이며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자기에게 자식이 없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하시면서 네 자손이 이처럼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을 아브람이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브람의 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약속의 자녀가 이삭이며 결국 그리스도라고 성경이 증언합니다(3:16). 그러면서 그 땅도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언약을 체결한 내용이 읽은 내용입니다. 쪼개진 짐승 사이로 타는 횃불이 지나감으로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자기 생명을 걸고 하신 것이며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져 환상 중에 구경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언약이 성립되는 것이 일방적인 은혜 언약입니다. 이 언약에서 아모리 사람들의 땅을 정복할 것도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따른 죄에 대한 심판이 집행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기에 언약의 전쟁인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 제목을 길을 열어라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전체가 메시아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하여 메시아가 오실 길을 예비하고 있음을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 오시는 길을 가로막아 서는 자들이 저주받은 자들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민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에 가로막는 자들만이 아니라 그 길을 열어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2)이며 가나안 땅의 기브온 족속(10)입니다. 이들은 조국을 배신하고 가나안 원주민 연합전선을 배신하였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저주 속에 은혜를 입은 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계시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의 나라들이 무엇을 복이라고 합니까? 자기 나라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복이라고 합니다. 나라마다 이것을 복이라고 하기에 세상이 조금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모양은 다르지만 늘 전쟁 중입니다. 그 전쟁의 목적은 부국강병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교회당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복입니까? 교회에서 말하는 복이 가인의 후손들과 함의 후손들처럼 땅의 영웅을 원한다면 그것이 바로 저주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이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여기기에 메시아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이사야 40:1~2절입니다.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위로하라고 합니다. 왜 위로하라고 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길을 찾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방의 길이란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한 후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다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어지는 3~5절입니다.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는 길은 곧 메시아를 맞이하라는 말씀입니다. 메시아를 맞이하는 길은 광야에서 외칩니다.

 

이어지는 6~11절입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구약 전체가 메시아 오시는 길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세례 요한으로 연결됩니다.

 

마태복음 3:1~3절입니다. “1 그 때에 1)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ㄱ)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길을 열라는 외침이 세례요한에게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1:29). 그러나 세례요한도 헷갈립니다. 그 정도로 메시아의 길은 사람들이 상상한 메시아의 길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맞이하는 일은 오직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1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님께서 자신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단어가 에고 에이미입니다. 출애굽기 3:14절에서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물었을 때 여호와의 대답이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도 길 안내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실 텐데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18:15, 7:37). 그러므로 모세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길잡이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제 설교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길이 이미 있습니다. 나의 길을 더 평안하고 번창하는 길로 인도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죄인 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나의 길이 끊어져야 주님이 나의 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든 나의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이 웨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살았지만, 주체적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환갑이 되는 때에 뒤를 돌아보니 나의 길이란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나는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 말은 나는 길이 아니며 진리가 아니며 생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길을 여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기의 길을 우리 안에 열어주시는 길이 십자가라는 길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서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가 외칠 복음은 인생은 풀이며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전하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만이 영원하다고 전하는 겁니다(벧전 1:23~25). 이 복음의 선포에 우리의 마음 길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