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이 주님을 만나고서 장님이 되었다가 아나니아가 안수함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력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빛이 비추이게 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사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태초의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하셨지만 죄인을 의롭게 하시기 위한 창조는 말씀이
인자가 되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창조하여 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창조된 자들은 이제 주님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아 살아가는것입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이제 자기 힘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늘 주님으로부터 힘을 더 얻어서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힘을 다해 충성하였지만 그 충성이 결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사울이 주님께 힘을 더 얻어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힘 있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힘을 더 얻는 것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구하는 힘이라는데 늘 세상적인 힘입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하여 좋은 대학에 가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식이나,
사업이 잘되어 부자가 된다거나, 권세가 높아지는 것들을 힘이라고 여기고 이런 힘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시면 사울이 주님께 힘을 더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는데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사울을 죽이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럴 때 주님께 힘을 더 받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합니까?
성문을 지키는 자들이 사울을 잡으려고 하다가 사울이 나타날때 성문이 여리고성 무너지듯이
그들이 깔려 죽으면 이것이 힘이요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그들을 피하여 성문으로 가지 못하고 광주리를 타고 성 밖으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사단의 세 가지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빵문제 종교적인 능력, 세상의 권세와 영화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세상에서 못할 것이 없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것을 거부하시고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이길 만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힘을 더 얻어서 세상의 권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비록 광주리를 타고 담을 넘어
가지만 결코 복음은 방해 받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힘을 우리도 날마다 다 받아가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복음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