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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4:1~23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 2022. 3. 16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이 계신다고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사십니까? 성경에서도 공의로운 하나님의 다스림에 의문을 품고 질문하고 항의한 자들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욥기서와 하박국서 시편 37편과 73편과 같은 내용은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세상이 왜 이러냐고 질문하였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강한 나라와 강한 자가 약한 나라와 약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하나님은 안 계신 것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보면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세상이 그렇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금 세계와 우리의 현실을 볼 때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세계를 심판하심이 믿어집니까? 정말로 믿으신다면 지금 내가 억울해하는 일들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면 하나님께 세상의 힘을 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힘으로 원수들을 심판하려고 합니다.

 

본문 1~4절을 봅니다. “봉독 여호와를 부르면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두 번이나 말합니다. 오래전에 거제로 이사 간 조용배 집사님이 성경에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데 복수하시는 하나님임을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복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시편 7편을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으로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칼을 가지고 활을 당하여 예비하여 두셨다고 합니다(7:11~12). 그러면 누구에게 복수하십니까?

 

교만한 자들입니다. 이들을 다른 말로 악인이며 오만하고 자만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악을 행하여도 벌을 당장 받지 않으니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악을 행하면서도 오만하고 자만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입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이런 악인들은 이방의 악인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악인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입니다.

 

본문 5~7절입니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困苦)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백성의 지도자들이 주의 백성들 특히 약하여 율법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한 과부, 나그네, 고아를 죽이고 살해하면서 여호와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런 말을 할 정도가 된 것은 온갖 악을 행하는데도 그들이 심판을 받지 않으니 이런 말을 합니다.

 

시편 73:1~5절입니다.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1)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앞에서 이미 살펴본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6~12절입니다.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2)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악인이 벌을 받기는커녕 형통하니 악인들이 하는 말이 이러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3~15절입니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악인은 늘 형통한데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는 종일 재난만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당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다면 악을 행하였겠지만, 그 고민의 해결은 성소에 들어가서 악인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본문 5~7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시편 73편의 압축과 같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주의 백성들 특히 약하여 율법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한 과부, 나그네, 고아를 죽이고 살해하면서 여호와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런 말을 할 정도가 된 것은 온갖 악을 행하는데도 그들이 심판을 받지 않으니 이런 말을 합니다. 이들이 교만하고 오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8~11절입니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1)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보지 않는다고, 알지 못한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귀를 지으신 분이 듣지 않으시며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않겠습니까?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가 어찌 그 피조물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백성을 징벌하시는 분,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분이 세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도 인생들의 생각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인생의 생각만이 아니라 그 생각의 결과물들도 다 허무할 뿐입니다.

 

전도서 2:10~11절입니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로 자기 눈과 마음이 즐거워하는 모든 일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생각해 보니 자기 손으로 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 무익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지혜 자가 증언한 말씀을 우리가 보고 있지만, 우리도 이 허무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눈과 마음이 원하는 일을 이루어 나를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는 일을 이사야 선지자는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호흡이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거라고 합니다. 허무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불에 태워지는 심판입니다(33:11~12).

 

본문 12~15절입니다.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이 없다고 여기며 악을 행하는 자들은 시편 73편처럼 세상에서 형통합니다. 그런데 주의 심판을 믿으며 경건하게 사는 자는 날마다 징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교훈을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징벌 그 자체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징벌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복을 받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생자는 내버려 두시기에 경건한 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악인이 형통하더라도 그것은 그 악인이 들어갈 구덩이를 파는 동안입니다. 구덩이를 파는 동안이란 악인을 최후의 심판으로 심판하시기까지 악인은 형통하지만, 그것이 심판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히려 징계를 받음으로 저주를 받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 영혼은 평안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들은 주의 의로우신 심판을 믿고 살아갑니다.

 

16~19절입니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을 믿고 살지만, 역사 속 현실은 고달픕니다. 행악자들이 나를 칩니다. 그러므로 이런 행악자들을 누가 물리쳐 주겠느냐고 합니다. 이런 행악자들은 물리적인 악도 행하지만 그런 일만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내 영혼은 벌써 침묵 속에 잠겼을 거라고 합니다. 이 침묵은 적막함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들어 주셨고 내 속에 많은 근심도 주의 위안으로 내 영혼을 즐겁게 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제가 처음 교육 전도사를 할 때 학생회 수련회 장소를 답사하려고 무척산에 갔습니다. 산 중턱까지만 차가 가는데 차를 돌릴 장소가 없어서 후진하여 내려오는 중에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당황하여 미끄러진다고 소리치는데 갑자기 차가 멈추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성경을 보는데 이 내용이었습니다.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 주의 인자함이 나를 건졌다는 말씀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사고가 나면 주의 인자함이 붙들어 주지 않은 것입니까?

 

미국에서 사는 유대인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를 몇 편 보았습니다. 율법을 따라 겉옷에 네 가닥의 줄을 달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 친구 세 명이 근처의 산에 갔습니다. 많은 사람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중에 한 사람이 18절의 말씀을 암송하면서 언덕길을 가다가 미끄러져서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래서 자기 친구들을 부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통성기도로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참 소리를 지르자 친구들이 듣고 와서 부축하여 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시편 91편에서 보았듯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붙들어 준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예수님께 적용한 자가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말씀을 보든지 간에 나의 선입견과 나의 가치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읽는 자도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성경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떠나면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5“39).

 

본문 16~19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여기서 나오는 자기 자신으로 대입하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것입니다.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도 제가 전도사 때 이야기를 간증으로 말하면서 여러분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께서 건져주십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면 정말로 미끄러져서 다친 사람들은 주께서 도와주지 않은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씀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느냐고 하였습니다. 미끄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버림받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 버림받음을 통하여 주의 인자를 죄인들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본문 20~23절입니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2)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과 대비되는 자가 악한 재판장입니다. 이 악한 재판장은 율례를 빙자하여 재난을 꾸밉니다. 율례를 빙자(憑藉)한다는 말은 율법의 말씀을 이용하여 재난을 만들어 내는 자들입니다. 아직도 모세의 수건이 가려진 자들은 구약을 보든지 신약을 보든지 간에 인간의 행위로 구원과 복을 말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재난에 밀어 넣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3:10 절을 보면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재판장은 모여서 의인의 영혼을 치려고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며 피를 흘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요새 시며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인하여 그들을 끊으십니다. 악한 재판장들이 바른 재판을 한다고 하면서 행한 일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을 빙자하여 율법을 어기는 자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예수님을 재판한 자들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이루어진 예루살렘의 공의회 회원들입니다. 이들은 백성의 지도자로 재판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합니다. 빌라도가 심문해보니 정치적으로 죽일 죄가 없다고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재판관들 소리가 빌라도를 이겼습니다.

 

재판관이 죄가 없다고 한 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한 자들이 악한 재판장들입니다. 결국 불의한 재판관들이 세계를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이런 말씀, 곧 세계를 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심판을 십자가로 심판하십니다. 세상에서 율법을 빙자하고 세상의 정의를 빙자하는 종교 정치 지도자들이 불의의 재판관으로 온 세계의 심판 주이신 예수님을 죽였기에 세상의 심판기준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세계를 심판하는 자로 착각하면서 살았음을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악한 재판관으로 살아가는지 말씀을 자신에게 비추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죄가 온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님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가 심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힘을 가지고 세상을 심판하려고 하지 않고 온 세계를 심판하시는 십자가 지신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자가 믿음의 사람입니다(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