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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6:1~13 새 노래로 여호와께! 2022. 3. 30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12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1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오늘 본문으로 새 노래로 여호와께라는 제목으로 말씀으로 나누겠습니다. 시편 150편 전체가 다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 새 노래가 됩니다. 그 이유는 찬양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부르는 찬송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새 노래라고 하고 있기에 이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을 때 바벨론 사람들이 시온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합니다. 그때 이방의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137:3~4). 그러므로 새 노래라고 하는 이유는 주님과의 관계의 새로움입니다.

 

오늘 본문이 성경에 인용된 곳이 역대상 16:23~33절입니다. 이 본문을 인용한 문맥은 다윗이 언약궤를 시온에 매어온 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레위 지파가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105편과 106편도 함께 인용되어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옮겨 놓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시온에 옮긴 것은 시온에서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와 통치자와 심판과 구원의 주가 되심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의 찬송이지만, 동시에 온 세상을 향하여서도 찬양하라고 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봉독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고 합니다. 앞에서 본 대로 새 노래를 찬송할 수 있으려면 구원받아야 찬송할 수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은 결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가 사함을 받은 자들은 날마다 그의 구원을 전파하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노래하지만, 온 땅이 어떻게 여호와께 노래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전파하고,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 선포하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구원과 그 놀라운 일들을 온 세상에 선포함으로 모든 피조물이 주를 찬송하게 합니다.

 

4~6절입니다. “봉독 앞에서 본 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국에 선포함으로 참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리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분이라고 합니다. 모든 신들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신들은 우상들입니다.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만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10:11). 그러므로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다고 합니다. 역대상에서 이 시편을 인용한 배경이 언약궤를 시온에 메고 온 후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의 신들은 다 우상입니다.

 

이사야 40:17~25절입니다. “17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18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 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21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22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고 23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24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함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자꾸 우상을 숭배합니까? 그 이유는 언약의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이루시는데, 인간들은 자기 소원이 성취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한 것은 무엇이든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신들은 다 자기를 위하여 만들어 낸 금송아지와 같은 신입니다. 이런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여 내심을 통하여 온 세상에 여호와가 누구신지 드러내십니다.

 

이사야 42:5~9절입니다.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9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알리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에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창조주시니 새 일이 시작되기도 전에 알려주십니다.


이어지는 10~13절입니다. “10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13 여호와께서 용사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모든 만민에게 새 노래로 찬송하라고 합니다. 여호와는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친히 다스리시기에 대적하는 자를 크게 치시는 분입니다.

 

본문 7~10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시기에 만국의 족속들에게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리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리고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 예물은 구원받은 자가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신과 거래하기 위한 제물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은 사람이 만들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경외감으로 떨게 됩니다.

 

그런데 10절에서 여호와께서 다스리심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데모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지금 이 역사 속에서 주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주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행위로 든든히 여기는 자들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주께서 돌보십니다.


이사야 66:1~4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1)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성전을 지어 드리고, 엄청난 제물을 바치는 것들로 자기 마음을 든든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신들이 행한 일을 붙드는 자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타락한 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로 든든히 여기지 않고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하며 주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를 주께서 돌보십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주의 말씀에 떠는 자란 자기의 전부를 바쳐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무익한 종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61:1~3절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1)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42장과 내용으로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왔습니다.

 

누가복음 4:16~19절입니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자리에 앉으십니다. 말씀을 읽은 후에 모세의 자리라는 회당의 자리에 앉으셔서 읽은 말씀을 강론하는 시간입니다. 유대의 성인 남자라면 회당장이 지목하면 누구나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61장의 말씀을 읽으신 후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기기는 하였지만,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합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시면서 엘리야 때 사렙다 과부와 엘리사 때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구원받은 이야기를 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예수님이 피하여 가셨지만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버렸습니다.

 

본문 10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면 세계가 굳게 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시편 2편을 봐도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이 요란한 이유는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서 끊어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통치에 복종하지 않으면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왔지만 세상은 그를 죽여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 오시는 일은 심판이 일어납니다. 그 심판이 곧 다스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다스림을 받고 있으니, 마치 심판받는 모습처럼 보입니다(12).

 

본문 11~13절입니다. “봉독 심판의 주가 임하십니다.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함으로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세계와 그의 백성을 심판하러 오시는데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땅과 하늘과 바다와 산의 모든 것들이 그의 심판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으려면 구원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타락과 피조물의 타락을 함께 말하듯이 사람의 구원은 피조물의 구원과 함께 말합니다.

 

주께서 심판하러 오심이 기쁘고 즐거운 소식이 되는 것은 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이라고 생각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아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이 원하는 나라를 세워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 나라는 이 세상의 제국주의가 아닙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섬겨주시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받은 자들은 아직 탄식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 영광의 날을 기쁨으로 소망합니다.

 

로마서 8:18~23절입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오늘 본문도 묵시적으로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적 완성은 다시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 재림의 날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5:9~10절입니다.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이 두루마리 책을 취하시자 새 노래로 찬송합니다. 그 노래를 하는 자들은 이십사 장로로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모든 자들이 새 노래를 합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는 구원받은 자들이 하는 노래인데 이 역사 속에서는 심판을 받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징계를 받지만 그 심판하시는 주님을 노래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요한계시록 14:3절입니다.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시록에서 이미 본 말씀입니다만 땅에 속량함을 받은 자란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들이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이 역사 속에서는 도살당할 양처럼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함에도 그 새 노래를 멈출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다시 오시는 그날에 그 영원한 영광의 즐거움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