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기도하여 하나님을 이겼다! 그래서 우리도 소나무 뿌리뽑힐 정도로 기도하여 웅답받자는 말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인지 보여주는 글입니다.  이호익씨는 신학을 한 분이 아닌데 늦은 나이에 성경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성경을 보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때부터 성경을 보면서 정리한 글입니다. 이스라엘의 뜻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뜻으로 본 신학자들 중에 칼빈과 케일과 델리취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 중에 야곱만큼 순종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쌍둥이 형 에서의 낮을 피해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하고 거래를 한 사람입니다(창28:20~22).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의 잔꾀를 더 믿었던 사람입니다. 다른 식으로 이야기하면 자아가, 자기의 의(義)가 무척 강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맡기는 평탄한 인생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의존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능력으로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에서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재산을 다시 배치를 하고 자신은 얍복 강에서 거의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형인 에서를 만나야 되면서도 형의 아직도 갖고 있을 지도 모르는 분노로 인하여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절체 절명의 위기의 순간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의 머리에서 나오는 방식대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잔 머리를 굴려서 피해를 그나마 최소로 하기 의하여 다시 재 배치를 하였던 것입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자리잡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 보다는 자신에 더 의존을 했던 것입니다.  밤에 야곱을 찾아온 것은 하나님입니다. 밤새 씨름을 시작한 사람은 야곱이 아니라 즉 야곱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성경을 인간의 시각에서 읽게 되면 야곱이 절대 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과 밤새 씨름하여 결국은 하나님도 야곱을 꺾지 못하고 야곱의 기도 응답을 해주고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싸워서 이긴 자(이스라엘) 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으로 창세기 32장 24절부터 28절까지 얍복강의 씨름을 이해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면 이상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이들 생각합니다. 28절에 이스라엘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이유까지도 나와있으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28절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음이라 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28절의 성경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는 말은 그러한 해석과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28절은 그날 밤 싸움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 야곱이 사람과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싸움은 야곱이 하나님께 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싸움을 건 것입니다(24절). 밤새 씨름한 것이 야곱의 피눈물 나는 기도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라는 말은 ‘이스라’ 라는 말과 ‘엘’ 이라는 말이 합쳐진 말입니다. ‘이스라’는 싸워서 이기다, 겨루다, 다스리다, 지배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엘’ 은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 ‘엘’ 이라는 단어에 아무런 격(格)이 없이 단어만 되어있습니다. 즉 ‘싸워서 이기다’, ‘하나님’이라는 두 개의 단어만 있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격(格)이 없습니다 주격인지 목적격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목적격이라면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자라는 해석이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격이라면 뜻은 전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겨루어 싸워서 이긴 자, 하나님의 다스림, 지배를 받는 자 라는 의미가 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읽게 되면 바로 주격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물론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야곱입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밤새 씨름하지 않아도 벌써 하나님에게 무릎 꿇고 나왔겠지만 야곱은 보통 자기 의(義)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밤새 씨름하게 된 것이고 그 것도 그냥은 말을 안 들으니까 최후의 강수로 환도뼈를 치기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길고 긴 싸움 후에 야곱의 항복을 받아내고, 항복 후에 야곱의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하나님의 지배, 다스림을 받는 자다 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배,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얍복강의 씨름은 인간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야곱이 하나님께 이길 정도로 끈질긴 기도의 결과로 야곱이 변화되고 그의 원 하던 바를 얻어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야곱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하나님은 야곱의 변화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비록 육 적인 혈통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지만 영적인 이스라엘 즉 하나님이 다스리고 지배를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무엇을 해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끈질기게 기도를 해도 하나님에게 우리의 원하는 바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이 이름을 야곱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준 이유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아는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은 어느 정도 조금은 갖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우리의 자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서 씨름을 해야 하는 인생입니다. 우리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으로 우리들의 자아를 무너뜨린다는 이야기가 바로 얍복강 의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