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이런 의문이 많이 들었던 적이 있었죠.
시골에 글씨도 모르는 일자무식 어르신들이
뭘 깨닫고 은혜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말입니다.

글도 모르고 성경에 대하여는 잘 모르는데,
새벽기도 열심히 하고 설교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몰라도 열심히 아멘 하면서
은혜 받으면 그것으로 구원 받고 천국 갈 수 있을까?
이런 노파심 말입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듣고 또 들어도 잊어
버리고 오늘 옳다고 생각했건 것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그렇게 새론 말씀에 목말라하며 깨달음에
이르러도 날마다 가짜임이 폭로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알면 알 수록 나 자신에 대하여
늘 실망하고 도대체 믿음에 확신이란 것은
갖지 못하채 날마다 새로운 진리를
배우고 배워도 그 지식으론 만족할 수 없는
심령이라는 사실만 드러나고 마는데
말이죠.

언제나 나는 부인 당해야 함은 물론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받아 거룩함에
이르러야 하고
영생은 참 하나님과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데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난 아닌 자로 증명 될 뿐,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며..
유명한 목사님 설교는 찾아다니며 듣고
성경 지식을 마음에 새기고 간직해도
뭔가 확실히 잡히는 것은 없는 거 같은데,

도대체 일자무식자들도 은혜를 입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거죠.

우리는 간혹
내가 은혜로운 설교 말씀 많이 듣고
성경에 대하여 해박한 내가 그래도
구원을 얻는데 유리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것이 바로
은혜의 장애물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 원어를 섭렵하고
더 깊은 것을 알면 더 많은 은혜를
누릴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아마도
사막의 신기루 같은 것일 수 있어요.

성경을 더 깊이 알면 알수록
벅찬 감격과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우릴 인도해 줄거란 생각도 하나의 착각일뿐,

오히려,
나의 실체가 더 적나라하게 폭로 됨으로 인한
자기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아마도
더 클수도 있다는 사실인 거죠.
이것이 신앙인의 딜렘마입니다.

도대체 일자무식 시골의 노인들이
어떤 방법으로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알아
구원에 이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며칠 전 이 의문이 해결 되었던 거죠.

요즘 날씨가 무척 더운 탓에
대부분 보일러를 꺼 놓고 생활하잖아요.
그런데 방바닥이 너무나 차가운 겁니다.
(젊은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끔 온기를 데우기 위해 보일러를 틉니다.

그런데 깜빡하고 잊고 있었는데...
몸은 그걸 알더라 이 말입니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만,
몸에 느껴지는 온기 그리고 살갖으로 느껴오는
따듯한 감각은 이 여름에 보일러를 틀었다는
사실을 까막케 잊고 있었던 나에게
그 사실을 먼저 인지시켜 주더라 하는 거예요.

내가 진실을 잊고 있었음을 자각하게 해 준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었던 거죠.

비록 지식으로는 캐치하지 못하고
잊고 있었지만,
머리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그걸, 자각하게 해 주었던 것은
몸의 반응이요.
내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이었더라는 사실에
그래 은혜가 이런거로구나?
어떤 배움과 학습이 아니라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로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던 겁니다.

아마도,
시골의 일자무식 노인 어르신들이
더 민감하고 더 예민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누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