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피조물에게 말이 필요할까?

이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다.

“목사님, 천국에서는 어떤 언어로 말을 하며 살아요?”

아마 천국에서는 방언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어떤 얼빠진 설교자의 말에 ‘글쎄’하며 던진 질문인 것 같았다.

 

천국의 말은 ‘로고스’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이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면서도 우리의 이름을 ‘그리스도의 편지’라 칭했던 것이다.

그것을 보았을 때 천국은 어떤 말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나라가 아니라

자기 객체의 말을 빼앗기는 나라라 해야 옳을 것이다.

 

아담, 즉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입에서 내어 놓은 말은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는 말이었다.

그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창조의 원리와 복음의 핵심을,

하나님의 스피커가 되어 던져낸 것이었다. 자기의 말이 아니다.

 

그런데 피조물의 ‘말’이 등장하면서 ‘죄’가 들어온다.

뱀이 말을 하고 사람이 자기의 말을 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 말들을 ‘나하쉬’라 부른다.

그 말은 ‘진짜 말이 아님, 말이 없음’이라는 뜻이고, 개역 성경은 그 단어를

‘뱀’이라 번역을 했다.

요한계시록은 그 가짜 말을 내 뿜는 존재를 ‘옛 뱀’이라고도 부르고,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용, 음녀, 등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의 말을 가지고,

스스로를 설명하고 증명하고 자랑하는 모든 악의 총합이다.

 

두들겨 맞은 게 억울해서 자살한 사람을 보았는가?

그런데 휴대 전화로 날아온 문자 몇 통에 투신자살을 하는 게 인간이다.

익명의 악플러들이 심심풀이로 던진 몇 마디 말에 연예인들이 목을 맨다.

휘트니 휴스턴이 죽었다. 유명한 드라마 피디가 목을 맸다 한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 인간의 ‘말’이었다.

인간이 마귀의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그 뱀의 혀, ‘말’을 빼앗겨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깊이 이해한 자들의 입이 점점 무거워 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주시면서 ‘내 말을 너희 안에 넣어주마’고 하셨다.

그건 하나님의 법이고, 하늘 살이의 모범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 하나님의 법을 육신에 담고 그 ‘말씀’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그 분의 별명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

성도는 그렇게 하나님의 편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자기변명이나, 자기 증명, 자기 자랑, 자기주장, 자아 확장, 등이 그들에게 해당이 없다.

예수님이 그렇게 살다가 가셨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굳이 인간들에게 자기를 증명하거나 변명하거나, 자신의 일을 설명하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늘의 존재는 무조건 자기 안의 것을 밖으로 쏟아내어 다른 존재를 유익하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도는 그 안에 성령을 품은 사위일체의 존재다. 하나님과의 연합. 그들은 하나님과 방불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이 땅의 ‘없음’들이, ‘아파르’ 들이 이해를 할까...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말을 하며 살아야 할지 궁금해 하기보다, 지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그 삶이 정말 자유 한 삶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긍정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말 많은 인간들이 싫다. 결국 ‘나 좀 알아 주세요’라는 복선을 깔고 있는 여러 종류의 말...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 ‘인터넷’이란다. 인터넷이 뭔가? ‘나’를 증명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말’의 네트워킹이다.

그래, 그건 에덴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말의 네트워킹, 그건 ‘나하쉬’에 불과하다.

그 ‘나하쉬’가 존재를 죽인다. 어서 빨리 하나님께서 그 인간의 말을 몰수해 버리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복음을 설명한다고 하면서 ‘나’를 증명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나’를 말할 수밖에 없는 이 비루한 인생들이여.

떠나라. 그 말에서 떠나라.

 

성산포에 온지 여러 날이 지났다. 철저하게 혼자다. 아니 철저하게 하나님과 둘이다.

하나님과만 말을 하고 하나님만 생각한다. 그리고 천지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을 본다.

하늘, 바다, 비, 조랑말, 자맥질 하는 늙은 해녀, 등대, 한라산, 이게 내 눈에 들어오는 세상이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하나님을 ‘말씀’으로 살아내고 있다.

거기에 평화가 있고, 거기에 자유가 있다.

말이 왜 필요한가? 며칠만 입을 닫아보자.

며칠만 ‘나’를 증명하고 자랑하는 데에서 자유로워 보자.

 

며칠만 그 불타는 지옥 같은 인터넷에서, 이메일에서, 블로그에서, 게시판에서, 휴대전화에서 자유로워 보자.

그리고 생각하자. 내 혀에서 끊임없이 말을 뽑아내려하는 마귀의 궤계에서 벗어나 보자.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로 수없이 난자당하고 있던, 곁에 있는 이들이 살아남을 볼 것이며,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