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이다.

 

주 예수의 사람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나'라는 인간에게
그것이 가능하긴 한 일인가?

 

'나'라는 인간은
그저 욕구와 욕망들로 가득한
생존하는 기계와 같은데 말이다.

 

심리학자 마슬로우가 말하는
인간의 다섯가지 욕구가 생각난다.

 

1. 생리적 욕구
2. 안전 욕구
3. 애정과 소속의 욕구
4. 자존심의 욕구
5. 자아실현의 욕구

 

어느 것 하나에도 난 자유롭지 못하다.
하루종일 나의 생존을 위해 살고
나의 자존심을 위해 살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인정 받고 싶어하고
끝내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를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살아간다.

 

'나'라는 존재가
'나'를 위해 지어진 존재가 아닌데
'나'는 '나'를 위해 살아갈 뿐이다.


이것이 사망에 처한
인간의 실존이다.

사도 바울은 이 실존을 깨달아
외친다.

아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존재감도 없고... 나이는 쳐 먹고..."

 

얼마전 한 개그프로에서 나온 유행어이다.
웃고 넘기기는 했지만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난 주 목사님 설교 중
인간은 자기 보람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란
부분을 듣다가
문득 다시 떠오른 말이기도 하고
하루 종일 이 말이 맴돌아서
이 글이 적고 싶어졌다..

 

나의 존재감?

 

나이가 들어간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옆 머리색깔은 희어지고
주름은 늘어가고
거울 속을 보면
옛날의 그 매력(?)적이던
젊은 이는 어디갔을까..?

 

기도를 하면서도
기도를 잘하고 싶다..왜?

 

강의를 하면서도
강의를 잘하고 싶다..왜?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으니까..
이게 나란 인간의 욕망이다.

 

언제나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욕구다..

 

예수를 믿고
사람이 나아진 것이 없다.

 

다만, 내 속에 전에 알지 못했던
이런 욕망들이 들끓고 있다는 것을
더욱 더 발견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날마다 해체되어 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니 해체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웬지...
다시 젊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이 감사하다.

 

거지 나사로에게
사는 보람이 있었을까?
그에게 의미있는 인생이란 게 있기는
했던걸까?

 

주님께서 내게
너도 그런 인생을 살아라 하시면
꾹 참고 살아갈 수나 있을까..?

 

감당할 정도의
인생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우주도
역사도
인생들도
나도
다...
꿈처럼
사라져갈 것이다.

 

오직
주님만 영원한 현실이 될 것이다.
주님과 주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