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3장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그 방향성이
곧 구원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쉽게 난 양심적으로 살았다.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살아왔다는 말보다
더 막연한 표현은 없겠다.
각사람들이 다 자기 양심에따라
거리낌없이 살아 왔단다.

사람들은 증언대에서도
숨김과 보탬이 없이 양심에 따라 증언한다고 선서한다.
과연 그러할까?

그러나 우리에게
이러한 최소한의 양심의 기준마저 없다면
세상이 어떻게 지탱될 수 있겠는가?
끔찍하지 않은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런 것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는 어떤 본성을 주신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양심적으로 살면 다 되는가?
성경은 화인맞은 양심이 있을 수 있고(딤전4:2),
착한 양심이 있고(딤전1:19 ),
선한 양심이 있으며(딤전1:5),
깨끗한 양심(딤전3:9)이 따로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양심이란 기능이 있지만
그것이 어떤 자들에게는 율법의 역할을 하여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
우리에게
죄를 지적하고 이렇게 살아선 안되는
인간임을 자각하게
만들고 결국 자기를 믿고 의지하지
않게 함으로 예수께로 이끌어 주기도 하지만,

어떤 자들에게는
그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질 수
있다(고전8:7)고 말한다.
그래서 결국 이 양심이 파선한자들도
있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1장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선한 양심을 갖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베드로전서 3장16절)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한다.
누구나 있는 그 양심은 언제나 선하고
옳은 기준이 될 수 없으며
화인맞을 수 있으며 감각이
없어질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착한 양심 선한 양심을 갖게
되기를 소망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히브리서 9장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우리의 양심으로 하여금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착한 양심 선한 양심을 갖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피가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22절)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에겐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는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