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하 목사님은 약 한 달전에 우리교회에  와서 저와 잠시 교제하고 가셨습니다.  영원에서 지상으로 라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책과 유기적 교회 세우기를  번역하셨고 그 책의 내용대로 살고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짜리 블로그에서 옮겨놓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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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 체제 인사였던 류샤오보(劉曉波, 62)가 2017년 7월 13일 오늘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1989년 6월의 천안문 항쟁 이후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201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진 류샤오보에 관해 제가 특히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해외 망명 길이 열렸는데도 중국에 남아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에 맞서 비폭력으로 저항하며 인권 활동을 하는 그의 용기를 높이 샀기 때문이고 또 그와 제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34세 때인 1989년 이후 28년 동안 네 번 구속 당하며 투옥과 출옥을 반복했고, 그리고 석방 이후에도 모든 공직을 박탈 당하며 당국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자유 한 번 제대로 누려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2008년 12월 공산당 1당 체제의 종식을 요구하는 ’08 헌장’ 의 발표를 준비하던 중 국가 전복 혐의로 체포되어 11년 형을 선고 받고 지난 8년 동안 수감되어 있다가, 2017년 5월 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한달 후인 6월 말 병보석으로 출감해서 보름만에 숨졌으니 그의 인생 행로는 그야말로 거친 가시밭길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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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의 천안문 항쟁 이전까지 류샤오보는 중국의 명문 베이징 사범대학교에서 중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문예창작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위 엘리트 학자로서 학술 활동에 전념했던 사람입니다.

천안문 항쟁 직전까지도 그는 미국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마자  황급히 귀국해서 비폭력 평화 시위를 주도하며 중국 공산당에 맞섰다가 ‘반혁명 선전선동죄’로 구속되면서 그의 험난한 인생 여정이 시작되었고, 오늘 6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그 삶에 종말을 고했습니다.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린 류샤오보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저항은 어떤 면에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타협하지 않고 신념을 고수했던 그를 보며 중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류샤오보 같은 사람들의 희생이 모아져서 언젠가는 저 난공불락의 성과 같은 중국 공산당의 1당독재 체제도 무너지고 중국에 자유가 찾아오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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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류샤오보가 맞섰던 요지부동의 중국 공산당 체제를 보며 또 다른 체제를 떠올려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갖고 계시던 영원한 목적을 희석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부 곧 인격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교제하는 인격체로서의 교회를 제도화시켜버린 기독교라는 체제 말입니다.

성경을 수 십, 수 백독을 해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의 차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 없게 하는 그런 체제…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 17:21-24)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 땅에서 실지로 살아가는 교회를 이루는 것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단 둘이 나누신 대화이므로, 즉 그렇기 때문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리 만무하므로 꼭 실현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은 거대한 제도권 기독교의 홍수에 밀리고 가려져 지난 2천 년 동안 자취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박해를 받아가며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로 살아가기를 고수한 그리스도인들의 희생으로 깊은 산 속의 맑은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내려 오늘날도 건재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시내들이 모여 강을 이루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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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노래 가사는 이 블로그에 종종 언급했던 가사입니다.

9년 전 KBS 드라마 ‘대왕 세종’의 OST인 ‘소원’ 이라는 노래를 제가 개사한 것인데, 여기에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강조하신 위의 말씀이 결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님을 이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되새기곤 합니다.

 

1) 크나큰 시련이 있어도 단 하나 목적이 있기에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 다시 복음 따라 살리

*** 창세 전에 하나님 안에서 고동치던 그 심장 소리가

오늘 여기 이 교회 안에 끊임없이 울려 퍼져 가슴 설레네

 

2) 한 여름 새벽의 이슬이 하나 둘 풀잎에 맺혀서

언젠가는 이 땅 위에 흐르는 푸른 강이 되리

 

3) 언젠가 사라질 세상에 아무런 미련 두지 않고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인생을 복음 위해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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