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9장25.26)


 저는 1970년대 초반에 워치타워 여호와의 증인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전 광풍처럼 이 조직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되었는데 한 동안 정말 꿈같은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죠. 저의 모든 꿈과 소망과 기대가 이 조직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성취되고 저를 만족케 할 것이라는 환상이 들면서 더 이상 세상의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 였습니다.

그러나 그같은 희열과 기쁨은 3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세상 물질 명예 권세 부귀영화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을 체험하며, 제 안에서 잉태되어 자라난 지상낙원에 대한 소망이 저의 전 인생과 미래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낙원은 저의 목적이요, 소망이요, 믿음이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희열과 기쁨에 도취되어 보낼 수 있었던거죠.

‘약 3년 동안은 말입니다.’

이 집단이야말로 하나님이 말세에 남겨두신 깨끗하고 정직한 단 하나, 참 종교의 남은 자 교회로구나!’ 이 종교 조직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없는 감사와 감격 속에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왜 내가 진작 이 조직에 들어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을 곱씹으며 말이죠. 저의 믿음은 하늘을 찌를 듯 했고 한 때는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낙원의 기쁨을 맛보는 체험도 했습니다. 성경만 보고 있으면 그것이 천국이요, 저에게 최고의 꿈같은 시간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이 조직을 위하여 목숨 걸고 충성해야 하겠다는 의협심(義俠心)은 제 인생을 포기하게 할 정도로 맹목적인 추종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오래된 분들에게 넌지시 듣게 되는 충고 아닌 충고는 “너무 열심을 내지 않는 것이 일상에 좋을 거야?”라는 식의 말이었죠.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답니다. 역시 신념과 사상은 어떤 틈만 생기면 모든 구조가 마치 피라미드처럼 연결되어 있기에 와르르 무너지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참 신앙과 신념은 그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고야 마는 법

그간 신념과 열정이 다 고갈 되었는지 근근이 명목만 유지하는 그런 종교생활이 반복될 뿐이었죠. 이 조직에 들어 온지 3년 이후 부터는 말입니다. 이것이 모든 이단의 피할 수 없는 함정이요. 이를 감추기 위하여 스스로 외골수로 빠지고 독단에 흐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 함정이요.오류인듯 합니다.

서서히 드러난 교리의 조작은 그 악마의 마각을 드러내고야 말았지요.
이제 10년이란 조직 생활에서 가졌던 신앙심마저 다 까먹고 남은 것은 그저 성경을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풀어대는 저들의 잔재주와 이중성으로 내 영혼은 피곤하여 지쳐 버리고 그날 그날 연명하는 종교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증인들이 당연히 거치는 과정이리라 생각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란 이름으로 자기를 속이는 이중성이 여기에서 형성되게 되어 있는 것이고요, 언제나 겉과 속이 다른 그럴싸한 외식이 자리 잡게 되는 사단의 덫이었음을 저들은 모르는 것입니다.

 누구하나 이를 내색하는 자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겁니다. 왜 얼마나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가식화 하는지 이것이 체질화 되었기에 어느 누구도 감히 조직에 불만을 갖게 되거나 교리에 이의를 제기할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하고 지내는 것이 솔직한 표현입니다.

만일 그런 내색을 보인자가 있다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어느새 부터인가(?) 지목의 대상이 되고 경계의 대상이 되어 그를 주시하게 되는 그야말로 저 동토의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감시체계가 작동하는 것이 바로 워치타워의 체계입니다. 언제 여호와의 증인이 다른 종교 조직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는 해 보았나요? 그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내 것에 갇혀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다른 종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진지하게 연구하는 자세마저 저들에겐 없는 것입니다.

결국 통치체의 일방적인 독주와 비성경적임을 지적한 나는 그 조직에서 견디지 못하고 조직은 배교자란 누명을 씌워 추방 시키게 된 것이지요. 너무나 우스운 것은 사법위원이란 자들이 나에게 와서 확인한 것이라고는 “당신은 통치체를 유일한 신권조직이라고 믿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되는 것이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가?” 라고 묻지 않았던 것이 너무 다행스런 일입니다. 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인간이 만든 통치체의 조종을 받고 있는 배교자 집단임을 자인한 꼴입니다. 참과 거짓의 기준이 인간이 만든 조직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권조직임을 믿는지 안 믿는지로 결정되다니요? 이러고도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을 믿고 있는 참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잠시 동안이나 이곳이 참 조직이라 믿었던 제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이 조직을 박차고 나갈 엄두는 내지 못 했죠. 아니 그럴 용기마저 없었습니다.
아무리 조직이 부패하고 썩었을지라도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전적 헌신을 해 온 터라 달리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죽으나 사나! 여기서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요? 늘 언제나 여호와증인 조직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위로 아닌 위로를 삼는 성구가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디로 가리이까?" 베드로의 "쿠오바디스도미네"(quovadis domine)도 아니고 체념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포기 선언이요. 한맺힌 절규입니다.

이 조직이 잘못 된 것도 알고, 거짓 예언을 한 것도 알고, 사랑이 없는 것도, 진실성이 없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 조직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들이 이 조직을 떠나서 어디로 갈 곳이 있단 말인가?" 란 협회의 질문에 아무도 다른 곳에는 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아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없었으니까요. 감히...(대단한 세뇌의 결과이죠).

결국 이 조직이 참이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갈 데가 없어 못가고 있는 그 신세가 너무 안타깝기만 했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거짓 종교집단에 머물 수 없다고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어쩔 수 없이 밀려서 떠나게 되었던 것이죠.

애정 쏟은 조직에서 강제로 쫏겨난 것입니다.
10년 이상이나 애정을 쏟은 이 조직에서 떠나는 것을 너무나 아쉬워하며 말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이단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들이 자력으로 구원을 이루어 보겠다고 하면서 도달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단 아닙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는 간 곳이 없고 인본주의가 판을 치는 곳 어설픈 논리와 이론과 사상으로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의식화 시켜 하나의 생각으로 묶어 버려 인간의 이성을 말살시키는 곳이 바로 이단 사이비 집단입니다.

아마도 저를 이렇게 쳐 내지 않았다면 지금도 난 그 조직을 감히 제 발로 떠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역사 없이는 도저히 이곳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 아니 빠져 나온다 할지라도 기독교 복음을 진리로 받아들일 확률은 0.1%도 안 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죠.

이렇게 되어 갑자기 배교자로 낙인찍히는 영광의 상처는 안고 살게 되었지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왜 여호와의 증인은 사상이 의심되는 자를 제명시키고 단교의 쓴맛을 보게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조직의 쓴맛" 을 보여 준 꼴입니다.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외톨박이 신세, 그리고 이상하게 보는 눈초리 아마도 왕따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차가운 형제들의 시선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으며, 인격 모독 그 자체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당사자는 스스로 격리 시키고, 회중 형제들의 접근을 차단시켜 조직의 와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고도의 전략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게 된 것도 서글픈 일인데 절대적으로 교제를 끊게 하여 스스로 자포자기 세상에서 타락으로 떨어지든가? 아니면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라고 사죄하고 다시 그 치욕을 감수하고 조직 안으로 제발로 기어 들어오든가? 양자택일 하게 하려는 것이 숨겨진 음모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사랑도 가족 형제지간의 정도 다 끊어버려야 하는 냉혹함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배교가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니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진정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어느새 저는 여호와의 증인 배교자가 되었고.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화위복이었다니요? 아무튼 자의반 타의반 이 조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얼마나 서운했던지, 못 이기는척하며 “‘통치체’가 하나님의 유일한 신권조직이라는 것을 믿는다” 고 한마디만 했으면 그 조직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있었는데, 공연히 화를 자초했나? 후회도 했답니다. 이토록 이단의 사상은 뿌리 깊게 인간의 정을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 조직을 떠난 제겐 창조주에 대한 신앙심이 없음이 밑바닥처럼 드러나 버리고 결국 사변적 철학과 인본의 사상에 물들고 관념에 포로가 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직을 떠나서는 어떤 것 하나 스스로 내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아예 없었다는 거예요. ‘아하! 그 동안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인간 조직을 믿고 신뢰 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아주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시각과 인간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보다가 지쳐서 그만, 회의론자가 되고 맙니다.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은 찾을래야 찾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불신자가 되어 가는 겁니다. 여기도 저기도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신세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하여 나갔지만 광야에서 모세에게 우리를 왜 여기까지 이끌어 내서 이런 고생을 하게 하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처럼 조직을 박차고 나온 내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할 정도로 나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지요. 결국 나의 신앙의 혼돈의 계절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진리에 대한 고독한 싸움을 멈추지 않게 하십니다.
이때부터 진리에 대한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제가 발을 디딘 곳마다 기독교의 은혜 복음은 아니고 다 이단의 그림자가 넘실거리는 행위구원론의 가르침이 있는 그런 종교 집단들이었다는 것이지요. 복음의 맛을 보기 앞서 이단의 쓴맛을 보게 하심으로 진짜 은혜는 네가 추구하던 그 반대편에 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처럼 철저하게 이단 종파를 두루 섭렵하게 하시는 거예요, 이단은 철저한 인본주의 사상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게 하셨고 진리는 그 반대쪽에 있음을 보게 하셨던거죠.

 

이단의 모든 술수는 결국 은혜의 맛을 잃게 만드는 마귀의 술책임을 적나라하게 보게 하시네요. 저들은 스스로의 연구로 성경을 깨달을 수 있고, 제가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제가 노력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이 생각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저주임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그것이 바로 회개해야 할 그 불순종임을 알게 하셨던 겁니다. 아멘~

제가 연구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임해야 하며, 제가 하나님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야 하며, 스스로 노력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가 오셔서 내 대신 죽어주시고 피 흘려 속죄해 주신 그 은혜를 믿고 거저 받게 되는 것이 구원임을 알게 하셨던 겁니다.

드디어 인간의 노력만으로 진리에 이를 수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게 되면서 주님 앞에 항복하게 됩니다. 이 깊은 방황의 늪에서 벗어나 구세주 예수 앞에 서게 하였으며, 제 자신의 실존을 보게 하였던 겁니다. 주님을 만나는 체험과 더불어 내가 죄인인 것이 실감이 나고, 이제까지 찾아 헤매던 때에 그 하나님은 이미 제게 와 계셨습니다. 구원은 노력하여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가 이루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내 것이 된다는 사실과 왜 그토록 삼위일체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았던가? 왜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행위구원에 집착하게 되었던가? 이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신 것입니다. 회개란 바로 어떤 죄지은 것 하나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려 했고,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 했으며, 내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이 교만이었다는 것을 비로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오직 은혜의 선물임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것이 일시에 믿어지고 깨닫게 하시는 은총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죠. 진리는 내가 성경을 풀어 해석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임이 성경에 의하여 해석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조명에 의하여 내가 구원 받아야 할 타락한 죄인임이 폭로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심으로 나의 처음자리에 대한 확인에서 나의 긴 방황의 터널을 지나가는 순간이 되었던 것이죠.

드디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진리는 제가 연구하고 탐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의 조명 아래 내가 회개할 자로 드러나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될 때만이 주님은 나의 구세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진리가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간단하게 표현했지만, 제게 이단 사상에 찌들었던 종교의 위선을 벗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이 질긴 이단의 영을 떨쳐 버리고 물붓듯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이 후로 목회의 일선에 뛰어 들었지만, 기독교의 기복주의, 고지론, 상급론, 천국간증등은 저로 하여금 왜 은혜로 시작했다가

다들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는거야~회의감 때문에 8년의 목회를 때려치고 야인으로 돌아가 '주님의 부르심' 이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거의 완성되어갈 즈음에 김성수 목사님의 설교를 접하게 되었고, 난 다시 해체되기 시작 했던거고요

그 얼마 후에 이장우 목사님도 계시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거죠.

하나님의 남겨 둔 자가 있음을 알고 말입니다. 아멘

 

이 모든 것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