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오신 예수께서도 분명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이다.
말씀은 완벽한고 완전한데 말씀만 이해하면 되지 왜 기도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말씀의 실제화는 기도로서 가능해 진다는 뜻이된다.
헌데도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말씀은 중요시 여기지만 그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방편인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느다. 즉, 방향은 중요하지만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방향이 올바르면 당연히 방법도 올바르게 되어있다. 방향이 아무리 옳은 듯 보여도 방법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 방향의 목적지는 결국 다른 방향일 수 밖에 없다.(이를 깨닫는 사람이 부디 있기를) 왜 사도는 굳이 말씀으로 거룩하여 진다는 말을 하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는 표현을 썼을까? 왜 예수님은 기도의 중요성을 언급하시면서 성령을 따라 행하시며 항상 기도에 힘쓰셨을까?

바로 이런 여러가지 질문들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더욱 접근하도록 만든다. 특히 나와 같이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말이다. 
흔히 말씀은 인간의 지성에 새겨진다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달리 나는 그것이 인간의 중심에 새겨진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물론 지성 또한 마음의 일부분이라는 전제 하에 그렇다. 하지만 지성이 마음에까지 내려오려면 그 지식은 산 지식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배운 수학 공식은 마음에 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을 차갑고 더욱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만들지만 그러한 공식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유레카'로 유명한 저 아르키메데스의 이야기 처럼 그가 목욕을 하다가 알게된 몸의 부피 만큼 물이 넘친다는 부력의 공식은 그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 둘의 차이는 간단하다. 바로 그러한 공식이 자신의 삶에(혹은 그 내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사람들에게 말씀이 능력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간단하다. 많은 지식을 배우고 깨달아도 그 지식이 믿음과 결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마음에서 일어나므로 믿음과 결부된 다는 것은 말씀이 분명 산 지식으로 신자의 삶과 내부에 깊은 영향을 줄 때야 가능하다. 즉 말씀이 신자를 이끌어가고 신자가 그렇게 동참되는 방식으로 말씀은 신자의 내부에서 깊은 통찰을 내어준다. 자, 그러면 말씀만 있으면 되는가?
왜 기도가 중요하다고, 쉬지말고 기도를 해야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을까?
매우 간단화 시켜서 말씀이 지성의 부분이라면, 기도는 감성의 부분이다(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한 것)
마음에서 일으키는 느낌이나 감정 그로인한 표현등은 잘알듯이 감성의 부분이다. 기도는 인간 내부에서 말씀을 문자의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말씀으로 전환하여 신자의 악한 본성의 마음을 파괴한다. 또한 그의 새 마음의 내용을 풍성하게도 하며, 욕망의 이불에 덮여진 새마음에 다시 빛을 주기도 한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씀을 통하여 신자의 중심 곧 마음을 타격하며 그로 말미암아 신자의 중심이 돌이키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 내용상 필히 인간적으로 갖아야 할 어떤 필요사항이나 도덕적 덕목의 추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 근거이어야만 한다.

쉽게 말해 기도를 잊어버리면 신자는 실제 생활에서 말씀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은 신자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그의 마음은 완악하고 굳어져 있으며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할 수 있다. 그것은 분명 신자가 말씀의 능력을 상실한 즉, 그가 믿음에 있어서 멀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렇다. 그는 현실의 그리스도 안에서 떨어져 나갔고 다시 옛사람의 행실에 사로잡혀 갈 바를 알지 못한 채로 서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도이다.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의 능력이 살아나도록 애통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신자의 내부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성령은 신자로 하여금 탄식하게 만든다. 그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며 그것을 위하여 부르짖는다. 믿음이 내어주는 그러한 능력들을 다시금 사모하며 그 능력의 실제를 기다린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찮게 여긴다. 나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기도할 것이 없다고 말씀만 얻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는 것은 그 말씀이 내 안에 살아있는 성령의 말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십자가의 죽음을 외치고 말해도, 계약신학을 이해해도, 자아의 부패를 선포해도 성령의 탄식이 동반되지 않는 기도가 따르지 않는다면 그러한 지식은 그저 문자적 죽은 지식으로 남아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 목말라야 한다. 기도에 목마른다는 것은 바로 말씀에 목마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나의 삶의 전체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울부짖고 마음을 찢고 속을 쏟아내어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아야 한다. 주님은 바로 그런 마음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러한 자에게 성령 부어주시기를 결코 피곤해 하지 않으신다.

[출처] 말씀과 기도|작성자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