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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1 언약대로 오신 주님 2014. 6. 1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오늘부터 마태가 전한 복음을 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이 신약의 처음 복음서라는 것은 구약과 신약의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와 신약의 처음 성경인 마태복음을 연결해 보아야 합니다. 말라기와 마태복음의 시간상의 차이는 약 400년이 걸립니다. 말라기 4:6절에서 마태복음 1:1절이 이렇게 붙어있지만 이 기간이 약 400년입니다.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400년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가 왔지만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라기와 마태복음을 통하여 봅니다.


말라기 1: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구약의 마지막 성경에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말라기 당시의 성전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재건된 성전입니다. 처음 건물로 된 성전은 솔로몬 성전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우상이 가득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립니다. 그런 성전을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하여 무너뜨립니다. 포로로 잡혀간 후 70년이 지나서 하나님의 언약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가 드려집니다. 그런데 왜 성전의 문을 닫아 버릴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까?


말라기 1:2~4절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항의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힘겹게 성전을 재건하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는데도 그들의 삶의 환경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여전히 외세에 짓눌려 살면서 숨 한번 크게 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는 이 말에 화가 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게 무슨 사랑이냐고 항의를 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했다는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한 에서는 고생한 기록이 성경에 없습니다. 승승장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시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에 넘기시는데도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겠다고 합니다. 이것을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불굴의 정신입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하면 된다는 정신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의 모습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들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 2:13절에서 이스라엘의 두 가지 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두 악이란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이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간들은 이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에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야곱의 생애를 보면 형 에서 보다 더 야망이 큰 사람입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장자의 권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성공하여 자신의 장자 됨을 스스로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야곱을 끝까지 무너뜨리십니다. 에서는 무너뜨리는데 자기 힘으로 다시 일어서겠다고 합니다. 야곱도 동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환도 뼈를 쳐서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장애인으로 만들면서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 약속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자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에 하나님의 약속 하나 붙들고 죽는 것이 야곱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야곱의 모습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감복하면서 주를 섬기겠습니까? 아니면 멸시하겠습니까? 우리가 신을 섬긴다는 것은 내가 잘 되기 위하여 신을 섬기는데 야곱같이 만드신다면 나는 그런 신을 잘 섬기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본심입니다.


말라기 1:6~9절입니다.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멸시한다고 하자 우리가 어떻게 멸시하느냐고 또 대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고 하시는데 그 대답은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데 왜 이런 고생을 시키느냐며 하나님의 제사는 대충 드리자는 것입니다. 복도 주지 않는데 좋은 것을 드리지 않겠다고 더러운 것들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제사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성전 문이 닫히는 것이 사실은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그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말라기 4:1~6절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란 하나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이 심판의 날이란 성전마저 파괴되는 날입니다.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갈 때에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성전의 파괴가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겨우 재건된 성전의 문을 여호와께서 닫아버릴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심판의 임하기 전에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친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3:1~12절입니다.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사역을 합니다. 지금 자기 뒤에 심판의 주가 오시기에 지금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말라기와 마태복음이 이렇게 딱 들어붙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말입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며 타작이 시작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세례요한을 예수님은 엘리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7:10~13절입니다.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스러운 변화의 모습을 부활하시기 까지 알리지 말라고 하시자 제자들이 엘리야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읨의로 대우 하셨다고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은 그 엘리야가 세례요한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란 성전이 파괴되는 멸망의 날입니다. 성전 문을 닫는 정도가 아니라 성전자체를 파괴하여 버리시는 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2:6~7절입니다.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이 책망하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안식일에 일해도 제사장은 안식일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며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1:12~13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 쫓으십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대한민국에 오시면 어떻게 하실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말하는 교회들을 뒤집어엎지 않으십니다.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의 백성들이 성전이며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피와 땀과 종교적인 거래로 이루어진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4: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유대인들의 멸망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자기들의 멸망을 막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26:59~61절입니다.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61 이르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이러한 예수님을 죽이는 것은 그들의 성전을 지키는 길이며 그들의 멸망을 막는 것 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마지막과 신약의 시작이 이러한 약속과 성취를 통하여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종말이라는 말씀입니다. 건물 성전을 헐어버리고 자기 몸으로 세우신 성전을 세우신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율법과 의식과 제사와 성전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그 다 이루심을 자기 백성들에게 영으로 부어주시면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구약의 약속들을 성취하신 것을 믿게 됩니다.


이것을 오늘 마태복음 1: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고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메시아가 예수라는 것을 증거 합니다. 마태가 이 복음을 기록할 당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로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자들은 로마를 반역하여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로 보기도 하고 유대인들은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를 받은 죽음이라는 신명기 법에 의하여 저주 받아 죽은 죽음으로 보았습니다(신21:23). 그런데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아브람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그리스도라고 마태는 증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금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창세기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여정을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이 하나도 없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땅과 씨를 약속하시면서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땅도 씨도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자기 생명을 걸고 언약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언약 체결에 구경만 합니다. 이것을 일방적인 은혜언약이라고 합니다.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자신의 혈과 육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자 한 것이 이스마엘입니다. 사람의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자손을 만들어 내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고 사라는 폐경기가 되고나서 주신 자녀가 약속의 자녀가 됩니다. 이는 없는데서 생기고 죽은 데서 살리시는 것이 약속의 자녀가 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씨는 이삭의 계통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집니다. 그 땅은 다윗 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다 차지합니다.


다윗의 왕위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영원히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씨와 땅의 완성 자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또한 영원한 왕위를 가지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예언들을 다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의 완성은 십자가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종말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등 떠밀어서 그 약속의 완성인 십자가로 밀어 넣습니다. 이 일을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의 언약을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구약은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 모든 구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 하였고 그 증거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으로 주와 그리스도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의 결단과 결심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그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불러내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어떤 고백을 하게 됩니까?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을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을 완성하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만 구원의 능력이 됨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의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