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에스겔 48:35 여호와 삼마(2) 2013. 3. 6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이 참된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여호와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부터 인간은 타락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무리 이 땅에서 애를 쓰고 살아도 인간의 근본인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아담의 형상에서 스스로 벗어날 인간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수고하며 애를 쓰지만 모든 사람들이 결국 죽음으로 가야합니다. 이런 아담들의 세상에 마지막 아담이 오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45~50절입니다. “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여러 가지로 대비시킵니다. 생령과 살려주는 영,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서 나신 분으로 비교를 합니다. 모든 인류는 다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태어나 땅에 속한 것을 먹고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입니다. 이런 세상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분은 하늘에 속하신 분이시기에 이 분만이 땅에 것을 구하지 않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고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질그릇에 보배가 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삼마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는 것이 구약입니다.

 

지난주는 주로 출애굽기를 통하여 여호와 삼마를 보았습니다. 출애굽을 시키신 이유가 여호와의 자기 처소를 삼기 위한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과 광야의 여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는지 아닌지는 상관없이 자기들이 편한지 아니한지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애굽 안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출애굽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 함께 사는 것이 목적인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자기들의 만족과 유익만 구하는 자들이었음이 광야에서 다 드러납니다. 그러나 모세는 무엇이 구원인줄 알았습니다.

 

출애굽기 33:1~6절입니다. “봉독”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내산에서 떠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네 자손에게 주기로 한 그 땅에 올라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목은 곧은 백성이라서 함께 가시면 그들이 진멸당할까 염려해서 그들만 가게 합니다. 이때 백성들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몸을 단장하지 않습니다. 5절을 보시면 내가 한 순간이라도 너희 가운데에 이르면 너희를 진멸할 것이니 장신구를 떼라고 합니다. 이 장신구들은 이방의 풍속들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치장한 것들이 장신구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단장품으로는 결코 여호와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15절을 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괴로워서 이런 괴로움이 없는 천국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이기에 그 아들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습니다(요일5:12). 그런데 우리는 아들과 상관없이 천국만 꿈꾼다면 이것은 하나님 없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는 것이 구원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언약의 조문들이 있습니다. 그 언약의 조건들이 충족될 때에 여호와께서 함께 하십니다.

 

레위기 26:11~12절입니다. “11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성막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성막을 세우신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사시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는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 삼마입니다. 여호와 삼마가 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언약의 조문들이 있습니다.

 

레위기 26:1~2절을 봅니다. “봉독” 아주 간단한 규례이지만 율법을 다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언약의 조문을 지키면 상을 받고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레위기 26장 전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에 대하여 3~12절까지 말씀하시는데 가장 최고의 상이 무엇입니까? 방금 보았던 11~12절의 내용입니다. 여호와께서 장막을 그들의 백성들안에 세우시고 그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언약을 어기면 어떻게 벌을 받게 될 것인지를 14~3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14~39절을 봅니다. “봉독” 이 모든 내용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조문들을 스스로 지켜낼 능력이 없음이 드러나는 것이 구약입니다. 정말 죽도록 고생하는 자들입니다. 이 언약의 저주를 받은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에스겔의 내용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저주를 받아도 깨닫지 못함으로 그 벌을 칠 배나 더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결국이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약속의 땅은 안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기에 그 포로 되고 망한 자리에서 다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납니다.

 

40~46절입니다. “봉독” 나라가 망하였을 때에 그들의 죄를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이삭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형벌을 기쁘게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오는 것처럼 와도 그 마음은 마치 연예인 구경하러 온 것처럼 하였습니다. 입술로는 사랑을 말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랐습니다(겔33:30~32). 이 정도라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바로 바짝 마른 해골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시기에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그 언약-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여호와 삼마’의 언약을 이루어내십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성취에는 인간의 반역이 반드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기 이름의 거룩함과 영광을 위하여 하시는 일입니다.

 

에스겔 36:16~20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약속의 땅을 더럽혔기에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들이 그 흩어진 여러 나라에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혀진 것은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능력이 없어서 나라가 망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의 나라들은 그 신이 무능력하여 이렇게 되었다고 보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것입니까?

 

에스겔 36:21~28절입니다. “봉독” 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아끼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그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열국도 여호와를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을 고국으로 데리고 오실 때에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고 모든 더러운 것에서 정결하게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새 영을 그들의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어서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돌아왔지만 새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시면서 이 언약의 완성은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새 언약으로 인하여 성령이 부어짐으로 여호와 삼마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28절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내용을 시편 46편에서 봅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5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6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9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오늘 점심시간에 서울 서머나 교회 김성수 목사님이 소천 하였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한국에 들어와 개척한지 만 1년도 되기 전에 오늘 아침 심장마비로 만 50세에 돌아갔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제 무언가 좀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남으로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한동안 멍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피난처와 산성이 하나님이시니 그 품에 안식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구원이며 피난처이며 산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떠오른 말씀입니다. 이사야 57:1~2절입니다. “1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 2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 이것이 여호와 삼마의 복을 누리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여호와가 거기에 계신다고 하신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라면 그 사람이 여호와의 삼마가 일어난 자들입니다.

 

예레미야 30:22절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신 내용의 결론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반드시 나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버린 자라는 것을 인식시키시고 자기 백성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동일한 내용입니다.

 

호세아 2:23절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딸은 ‘로루하마’입니다. 긍휼을 입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아들은 ‘로암미’입니다. 로가 붙으면 부정접두어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입지 못하는 자와 내 백성 아니라고 한 자들을 다시 긍휼을 베푸시고 내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곳에는 오직 여호와의 일하심만 담긴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 일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피로 불러내신 자들 속에 여호와 삼마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