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에스겔 48:35 여호와 삼마(3) 2013. 3. 13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지난주 시간상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부터 다시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0:22절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신 내용의 결론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여 버린 자라는 것을 인식시키시고 자기 백성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호세아 2:23절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지어주십니다.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딸은 ‘로루하마’입니다. 긍휼을 입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아들은 ‘로암미’입니다. 로가 붙으면 부정접두어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을 입지 못하는 자와 내 백성 아니라고 한 자들을 다시 긍휼을 베푸시고 내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와 비슷한 말이 임마누엘입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이고 임마누엘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가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심판과 함께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7:13~14절을 봅니다.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하스 왕은 악한 왕입니다. 주변국들의 정세의 흐름을 따라 자신과 나라의 살길을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남 유다를 공격하였을 때에 왕의 마음과 백성들의 마음이 얼마나 두려워 떨었는지 숲이 바람에 떨리듯이 떨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여호와께서 적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징조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겸손하게 말하는 것처럼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불신앙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적들이 연합하여 쳐들어오게 하겠느냐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불신의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보여주신다는 내용이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의 약속이 주어집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약한 여자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처녀에게서 나온 아이가 태어남으로 적을 물리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일차적인 성취는 두 나라가 망한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배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역대하 28:1-8, 16-27절을 봅시다. “봉독” 아람 왕과 북 이스라엘에 의하여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또 다시 앗수르에 원조를 요청합니다. 아람의 신들이 그들을 도와서 강하여 졌다고 보았기에 아하스는 여호와를 버리고 그들의 신을 섬겨서 힘을 얻어 보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문을 닫고 우상들을 세웁니다. 이 발상이 바로 하나님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나라를 벌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하나님께서 몽둥이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이 임마누엘의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7:17절에 앗수르 왕이 와서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유다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의지한 앗수르가 벌이 되고 삭도가 되어 너희를 괴롭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 땅은 황무하게 됩니다. 그 땅의 남은 자는 겨우 먹고 살게 됩니다. 가장 좋은 포도원이 질려와 형극, 가시밭이 되어서 들짐승이 거하고 사냥꾼이 사냥하는 곳으로 폐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러한 불신앙의 유다를 심판하시고 그 심판의 기능을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행하시는데 그 심판 후에 스알야숩을 하시는 것입니다. 남은 자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스알야숩은 임마누엘의 약속과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10:20-23절입니다.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임마누엘과 스알야숩의 예언이 이루어지면 심판을 통하여 남은 자만 돌아오게 되는데 그 돌아오는 자들은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시면 이것이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 삼마가 됩니다. 이러한 예언들이 신약에서 어떻게 성취가 되는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21~23절입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일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은 반드시 자기 백성의 죄에서 구원하여 내시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고 약 400년이 지났지만 에스겔이 예언한 땅의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증축과 개축을 하여 화려한 돌로 된 성전이 지어졌지만 메시아가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임마누엘의 예언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예언의 성취만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구원은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9~21절입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사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해석한 내용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일이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임마누엘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가시는 길에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근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거할 곳이란 황금보석 꾸민 집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이어지는 16~23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하여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임마누엘과 여호와 삼마가 함께 이루어지는 내용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기에 임마누엘의 일이 되며 그렇게 죄를 책망하여 해결된 자들에게 여호와 삼마로 여호와께서 거기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보내셔서 영원히 함께 거하시게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의 영이시기에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합니다.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가 너희와 함께 거하시고 너희 속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를 보혜사(保惠師)란 우리말로 번역하면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스승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성령이며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야 임마누엘과 여호와 삼마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20절의 말씀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그 결국은 21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거와 함께 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여호와 삼마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한 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고린도후서 5:1~10절입니다. “봉독” 성령이 임한 자만이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 즉 우리의 몸이 무너질 것은 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압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보증이란 담보물입니다. 하나님이 담보물이 되셨기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주와 따로 있다는 것은 주의 영으로 함께 하시는 것이지만 하늘의 처소를 완전하게 덧입게 되면 그 날에는 얼굴과 얼굴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원하는 것은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아직 자신의 죄와 죄를 능가하는 그 은혜와 사랑을 더 알아야 하고 또 각자의 일들이 있기에 이 땅에 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몸으로 행한 일이 그 날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는다는 것은 육체를 따라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며 성령을 따라 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여호와 삼마의 처소가 이제 다 지어져 갑니다. 복음이 땅 끝 까지 증거 되고 주의 백성이 다 돌아와 그 처소가 완성이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여호와 삼마가 이루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1:1~8절입니다. “봉독”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습니다. 바다는 아래의 물이기에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위에 있는 물은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입니다. 이 생명수가 샘물을 값없이 마시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것이 생명의 나라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7절을 보시면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고 합니다. 그 상속이 바로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합니다. 이기는 자들이란 자기 행위를 믿지 않고 값없이 주시는 생명을 받는 자들이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자기 행위로 이 자리에 이르고자 하는 자는 종이나 하는 짓입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영원히 거합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 삼마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믿어진다면 여호와 삼마가 가장 큰 복임을 알고 영원을 준비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잠시 잠간후면 오실이가 오실 것입니다. 지체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여호와 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