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예레미야 2:20 멍에와 결박 2013. 4. 24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지난주에 유다백성들의 두 가지 악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임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저는 근원적인 악으로 보았습니다. 이 악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모습들이 성경전체에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는 것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하여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책망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님 혼자 죽으신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안고 자기 백성과 함께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연합된 것입니다. 이 성령의 연합은 다른 말로 사랑의 줄에 묶인 것입니다. 그 무엇도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가 이 사랑의 줄을 얼마나 끊어버리려고 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20절입니다. ‘네가’라고 하는 것은 여성명사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제는 남 유다만 남았기에 남 유다를 향하여 한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신부로 부름을 받아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의 종 되었던 멍에를 부수고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레위기 26:13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애 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 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 한 그 멍에를 벗기시고 데리고 나오셨습니다. 이렇게 해방시켜 나오신 것은 네 마음대로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멍에와 줄로 결박한 것입니다. 이것은 종의 멍에가 아니라 사랑의 멍에입니다.

 

호세아 11:1~4절입니다.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종의 멍에를 벗기시고 사랑의 줄로 이끌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는데도 그들은 점점 멀리 갔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를 신명기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8:47~48절입니다.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지금 이 말씀대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멍에를 메게 되었고 남 유다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멍에와 결박아래 있는 것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언약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멍에와 사랑의 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으면서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것이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행입니다.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입니다. 이런 멍에와 결박을 끊어버리는 것이 과연 과연 자유일까요?

 

예레미야 5:4~5절입니다. “4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어리석은 것뿐이라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5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이 본문은 다음에 자세히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2:20절의 멍에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멍에를 어떻게 꺾어 버리는지를 봅니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길을 알지 못하기에 백성의 지도자들은 여호와의 길을 알 것이라고 갔지만 그들 역시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의 간섭이 싫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예레미야 27:1~8절입니다. “봉독”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실물을 만들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를 보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의 왕들에게도 보이라고 하십니다. 이들이 모인 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바벨론이 곧 망할 것이니 서로 연대하여 바벨론을 대적하자고 모인 것입니다. 이들 앞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고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는 그 큰 능력으로 사람과 짐승을 만들고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사람에게 그것을 주신다고 하시면서 지금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에게 이 모든 땅과 들짐승들까지 주신다고 하시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며 그 멍에를 메라고 합니다. 이와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예레미야 28:1~4절입니다. “1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니라” 예레미야와 하나냐 선지자가 정 반대의 말을 합니다. 누구의 말에 호감이 갑니까?

 

5~9절입니다. “봉독”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냐의 말에 아멘이라고 합니다. 나도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10~17절입니다. “봉독” 멍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하나냐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어버리고서는 여호와께서 2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목에서 멍에를 이렇게 꺾어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의 길을 갑니다. 아무도 예레미야의 말에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멍에를 꺾어 버린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하나냐가 네 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는 말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바벨론 왕에게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냐 에게는 여호와께서 보내지 아니하셨는데도 이 백성들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기에 금년에 죽으리라고 전하였더니 그 해 일곱째 달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됩니까? 그 형벌의 기간이 채워지고 나면 그 멍에를 여호와께서 꺾으시고 돌이키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30:8~10절입니다. “8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 9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1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 그 목에서 그 멍에를 꺾고 그 포박을 끊어버리시면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고 다윗을 섬길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이미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다윗이 섬기게 되는 것입니까? 다윗이 주로 고백한 그 그리스도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9:1~4절입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 멍에와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는 것입니까?

 

6~7절입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한 아기를 주셔서 이루어내십니다. 그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그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4:12~17절입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그늘에 있는 자들의 멍에와 그 결박을 끊으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회개와 천국의 선포로 시작이 됩니다.

 

마태복음 11:27~30절입니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전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야만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란 율법의 짐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외면적인 모습은 율법으로 인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서는 자기 백성들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신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란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마음이 쉼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이런 길을 가려면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지신 것이기에 우리가 그 멍에를 메는 것은 그리스도가 함께 메고 가시기에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그 십자가에 달려서 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10절입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킴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문제에 대하여 사도들이 회의한 내용입니다.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한 멍에를 제자들이 목에 두려고 하느냐고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기에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아무른 멍에를 메지 않아도 될까요?

 

빌립보서 4:3절입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사도와 함께 멍에를 같이한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멍에와 결박에서 해방이 되었으며 이제는 어디에 묶였는지 바르게 아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어떤 피조물도 끊어낼 수 없는 사랑의 줄로 묶여있음을 알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