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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1-10 깊어지는 고난 2016. 1. 6


1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3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 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6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7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까닭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욥 자신이 자신을 살펴보아도 이런 재앙을 당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천상회의에서 하나님과 사탄에 의하여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모든 자녀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욥이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 경배의 내용, 찬송의 내용은 자신이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기에 알몸으로 간다고 하면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며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라고 하면서 입술로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인정하신 욥의 온전함과 정직함과 악에서 떠난 모습입니다.

 

욥이 날벼락을 맞듯이 이런 재앙을 당하였습니다만 욥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은 우리들은 압니다. 천상회의에서 하나님과 사탄이 욥에 대한 내기를 할 때에 무엇이 쟁점이 됩니까?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까닭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까닭 없이 여호와 하나님, 보이지도 않는 신을 잘 섬길 리기 없다는 것이 사탄의 공격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하나님은 욥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자 사탄이 그러면 욥의 모든 소유를 제거하여 보라고 합니다.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욥이 주를 향하여 욕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는 손대지 말고 소유물을 다 사탄의 손에 맡김으로 하루아침에 욥은 그의 모든 소유가 다 날아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욥기를 모른다고 전제하고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욥이 이런 재앙을 당하고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경배와 찬양을 드렸기에 이제 더 많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욥을 넘어뜨리기 위한 제안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생각입니다. 욥은 거저 고난을 감내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하며 그 고난을 견뎌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엄청난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이런 사고방식이 까닭이 있는 생각 곧 인과율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욥기서는 이러한 전화위복이 아니라 더 깊은 고난으로 들어갑니다.

 

욥기 2:1~3절입니다. 1장의 천상회의와 같은 내용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1장과 다른 면이 3절입니다. 다른 부분은 같지만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순전함을 지켰다고 합니다. 일차 소유물 테스트에서 사탄이 참패를 하였습니다. 사탄이 얼마나 장담을 하였습니까! 그의 소유를 치면 틀림없이 주를 욕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장담을 했다면 이제 부끄러워서도 다시 도전을 못할 것인데 그것은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짓말하는 사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을 들은 사탄은 다시 여호와를 충동합니다.

 

본문 4~6절을 봅니다. 사탄도 인간을 압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 그의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꾼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몸을 위하여 모든 소유를 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강도들이 소유를 빼앗아 갈 때에 항상 흉기를 들고 협박을 합니다. 네 소유를 내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살기위하여 남이 다 죽어도 자신은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도 생각하는 일들입니다. 뉴스를 보면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난 소식을 듣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는 저런 현장에 있었다면 죽은 자 속에 자기를 포함시킵니까? 산 자 속에 자기를 포함시킵니까? 자신은 산 자 속에 포함을 시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사탄이 이런 인간의 속성들을 알기에 이번에도 장담을 하면서 여호와께 제안을 합니다.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욥을 맡깁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을 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제 소유가 아니라 그의 몸 곧 뼈와 살을 칩니다. 그러나 사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선 까지만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그 생명은 사탄이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천상회의의 결과로 욥의 고난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소유물이 날아가는 고통도 사람들은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도 아주 정직하고 온전한 부자입니다. 그런 자가 하루아침에 모든 소유가 날아갔는데 이제는 자기 몸까지 재앙을 당합니다.

 

본문 7~10절입니다. 욥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납니다. 다른 번역은 악창, 악성 종기라고 합니다. 전신에 악창이 나서 진물을 나고 가렵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습니다. 이때 아내가 욥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신이 이런 재앙을 당할 일을 아내가 봐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내입니다. 그런데 이런 재앙이 갑자기 닥친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보았기에 그런 하나님이라면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의 아내도 철저한 인과율에 붙들려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남편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데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다면 아내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면 그런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욥의 아내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이라면 차라리 욕하고 죽으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시각입니다.

 

오늘 어떤 분의 전화가 왔습니다. 복음을 들은 지 1년 정도 되었다고 하면서 복음이 옳지만 많은 사역자들이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는 것이 성경에 나오니 떨칠 수도 없다고 전화가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10분 정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그런 능력을 원한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되면 결국 내가 좋은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성령이 임한 사도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전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않은 것을 전하는 것인데 우리가 구하는 것이 생명도 아니고 썩어질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복음의 내용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욥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시는 것입니까? 소유물이나 우리의 몸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4~26절입니다.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만으로 섬기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까? 거의 대부분 후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여도 사실은 하나님을 통하여 돈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합니다. 음식이나 의복이란 몸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의식주에 대하여 염려는 하지만 이 목숨에 대하여 즉 생명에 대하여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누가 주시고 유지하시는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들도 하나님이 기르시는데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지금 욥은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유도 없이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모든 자녀들을 다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송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몸까지 침을 당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죽으로 가죽을 대신한다는 말을 사탄이 하나님께 하면서 몸을 치면 욥이 틀림없이 하나님을 원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맡기면서 그의 생명은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욥의 몸을 치자 온 몸이 악창이 나서 쓰레기 더미에서 기와 조각으로 악창을 긁고 있을 때에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2:4~5절입니다.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할 분은 소유물을 빼앗고 몸을 죽이는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욥은 지금 소유물을 다 잃어버리고 자기의 몸도 전신에 악창이 들었습니다. 그러함에도 그의 순전함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어서 욥의 친구들이 등장하고 욥의 탄식이 쏟아집니다. 자신의 생일까지 저주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 놓고 항의를 못하지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또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까? 다음 주에 계속하여 보겠습니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다는 것은 결국 그분이 전부이시고 나는 전무가 됨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자들이 성도라고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어제 창원에 첫 눈이 왔습니다. 오자 말자 녹아버렸지만 눈이 오기 전에 우박이 조금 왔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딸이 받기에 우박이 온다고 하면서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우리가 재앙 속에 마땅히 죽어야하기에 조용히 죽어가야지요! 이러는 겁니다. 이게 대학교 1학년이 하는 말입니까? 이 말이 신앙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 사는 것이 자기 뜻대로 안 되기에 그냥 죽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정작 본인에게 어려움이 닥치고 괴로운 일이 닥치면 짜증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많은 세월이 남아있습니다.

 

욥의 고난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평생의 걸리는 일입니다. 욥이 까닭 없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예수님의 그림자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욥도 죄인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을 통하여 이유 없는 고난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줄 뿐 아니라 모든 성도가 욥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리하며 모든 논리와 모든 이론들이 다 무너지고 나서 내가 귀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주를 뵙는다는 그런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죄 없는 고난과 사람들의 모든 논리들이 무너지는 성경말씀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7~21절입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송구영신한다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새로운 시각이 생깁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이 화목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욥이 이런 재앙을 당할 이유가 없이 고난을 당한 것은 더욱 완전하고 분명한 십자가로 나타날 고난의 의미를 그림자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참소가 없습니다.

 

로마서 8: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죄 없으신 자기 아들에게 죄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란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인과율로도 정죄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십자가로 사탄이 패배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2:7~12절입니다.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하늘에서 사탄이 쫓겨난 것은 이제 하늘에서는 더 이상 참소할 수 없는 곳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자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쫓겨난 이 참소 자가 땅과 바다로 내어 쫓깁니다. 즉 공중권세 잡은 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묵시 속에서 하늘에 있는 자 이지만 아직 역사 속에 살고 있기에 이중 국적 자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지만 아직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설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사탄의 공격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다시 인과율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얽매이기 쉬운 죄 인지 성경은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11절의 말씀대로 어린 양의 피와 그 말씀으로 이기는데 이들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 양의 피와 그 말씀의 능력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사탄의 참소를 이긴 자들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염려에서도 어린 양의 피와 그 말씀으로 이기게 하시며 동시에 타락한 인생의 본성인 인과율적인 이론과 생각들도 이기게 하십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마음의 생각과 이론 들입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사람들의 이론과 생각이 무엇입니까? 욥의 아내와 욥의 친구들이 하는 말입니다. 물론 욥 자신도 3장 이후로 나옵니다만 인과응보에 대한 이론과 생각입니다. 까닭 없이 재앙도 당하면 안 되고 까닭 없이 복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내 하기 나름이라고 하는 이 이론과 생각들이 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자가 바로 사탄이며 이 사탄으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의 생각들이 이러합니다. 이런 자들은 오직 은혜라는 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를 입어서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이론과 생각들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사탄의 견고한 진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우리의 이론과 생각들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이 대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시비를 걸고 대적하는 것이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였다는 것은 우리의 이론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과정입니다. 나의 이론과 주장과 생각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은 나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론과 생각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위하여 잘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도 무너져 내려야합니다. 목사도 교인도 자기 생각대로 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는 그 이론과 생각이 무너져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이론과 생각들을 다 무너지게 만듭니다. 이렇게 모든 성도의 생각을 다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을 하게 되면 이렇게 복종되지 아니한 것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이 나의 이론과 생각들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늙어갈수록 교회 오래 다닐수록 나의 주장과 고집이 더욱 굳어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습니까? 욥의 아내처럼 그런 하나님 욕하고 죽으라고 할 것입니다. 욥의 깊어지는 고난 속에서 자기의 이론과 생각들이 다 무너지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의 생각과 이론들이 이 말씀들로 인하여 무너져 내리기를 소원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