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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2:1~9 마땅히 행할 길 2018. 2. 21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본문 6절을 먼저 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우리 속담으로 번역하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입니다. 어려서 제대로 가르쳐야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땅히 행할 길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6:4~5절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이것이 마땅히 행할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절의 말씀을 하시면서 율법과 선지자의 핵심 강령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방법을 봅니다.

 

신명기 6:6~9절입니다.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유대인들은 이렇게 지키는 방법까지 실천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십자가의 사건까지 가 봐야 합니다만 우선은 오늘 본문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봅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명예라는 말은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재물보다 아름다운 이름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택하라고 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어떤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 졸부라는 말을 듣기보다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어려서부터 들은 유대인들은 명예를 상당하게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을 잘 지키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기를 원한 것이 외식이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3:5~8절입니다.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경문 띠와 옷 술을 길게 한 것은 신명기 6장의 말씀을 잘 지킨다는 표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존경을 받으려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시장에서 문안 받고 사람들에게 랍비라는 칭함을 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것이 다 명예로운 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저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말씀들을 어려서부터 듣고 명예를 선택하면서 산다는 것이 결국 사람들 앞에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사람만 의식한 것은 신앙이 아니라 외식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마주치며 살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도 살게 하시고 부한 자도 살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모두가 부한 자로 살게 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신 것입니까?

 

어거스틴(396~430)이렇게 설교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마주치며 살게 되는 이 세상에서 부자는 가난한 이를 돕도록 하기 위해서, 가난한 이는 부자를 시험하기 위해서 함께 마주치게 하셨다고 합니다. 다른 설교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둘 다 알몸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가난한 자를 보면서 자신도 이 세상에 올 때에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말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에 대하여 말씀하는 몇 곳만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22:25~27절입니다. “25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27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가난한 자를 돌보아 주라고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도 돌보게 하신 이유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그네였다는 것을 알라고 합니다(23:9).

 

출애굽기 30:11~16절을 보면 생명의 속전은 성소의 반 세겔인데 이것은 부자라고 많이 내거나 가난하다고 적게 내지 말게 합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반 세겔을 내게 합니다. 이것은 생명의 값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사람의 목숨 값이 다릅니다. 사고로 보상을 받을 경우에 그 사람의 재산과 지위와 얼마를 버느냐에 따라 달리 계산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생명의 속전을 같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곡식을 다 베지 말고 떨어진 것은 남겨두라고 합니다. 과일을 딸 때도 두 번 살펴가면서 따지 말게 함으로 가난한 자와 짐승까지 긍휼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하면 그 땅에 가난한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15:1~6절입니다. “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3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그런데 이렇게 살지 못하였음을 구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7~11절입니다.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그 땅에는 절대빈곤층이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형제에게 이자 없이 돈을 빌려주어야 하고, 친척이 땅을 되 물려줄 수가 있고, 희년이 있기에 자기의 땅이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이런 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 가난한 자가 나올 때에 네 손을 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을 알게 하시는 장치가 됩니다. 그들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사랑으로 인한 것이기에 그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땅에 가난한 자가 계속 나오고 그들이 학대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바알숭배에 빠졌기에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땅히 행할 것을 자기 자녀들에게 제대로 가르쳤을까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부모가 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야 할 것을 펴지 않으면서 이런 말씀을 가르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면제년에 면제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희년이 되어도 땅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이나 율법에 마땅히 행할 것을 행하라는 이런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성경의 말씀을 보면서 세상의 나라들이 망하는 이유도 봅니다. 흔히 생산의 3요소를 말할 때에 토지, 노동, 자본을 말합니다. 물론 여기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가장 큰 생산요소는 토지와 자본입니다. 노동력이 가장 가치를 잃고 있습니다. 땅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손을 펴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후하게 주는 것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양극화가 계속되고 결국 망할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라면 어떻게 경제 생활하는 것이 마땅히 행할 길입니까?

 

시편 9:7~12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9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이시요 환난 때의 요새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1)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시온만이 아니라 공의와 정직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가난한 자들의 피 흘림입니다. 이 가난한 자의 의미란 단지 경제적인 가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에 의하여 핍박을 받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자들은 불의로 살아갈 수가 없기에 불의한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자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십니다.

 

이어지는 15~20절입니다. “봉독 악인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궁핍하고 가난한 자 그래서 여호와만 의지하는 자들이 영원히 실망을 하지 않을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 구원의 날에 시온에서 사는 백성이라고 하여도 이방인들이 추구하는 이 세상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힘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역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난하여지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가장 큰 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자와 가난한 자를 하나님께서 두신 것은 구약과 신약까지 연결하여 보면 우리가 무엇에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하는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분명하여집니다.

 

야고보서 2:1~5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부자와 가난한 자를 두신 하나님의 뜻의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경제적인 차별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나라는 사람의 값을 경제적인인 차별로 대접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공공연히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가 세상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경제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에 기여한 공로가 많은 자를 장로와 권사로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기에 서로 돌보는 것이지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가난한 자들을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셨다는 말씀도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그 속을 보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명예와 평판을 사랑하는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나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면 갈 길도 보이는 것입니다. 멸망의 길로 가는지 생명의 길로 가는지 알게 됩니다. 이런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의 길로 가게 되면 이런 자가 슬기로운 자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6절과 1절과 2절을 통하여서 연결된 말씀들을 조금 살펴보았습니다. 2절에 나오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을 다 찾아보면 더욱 분명하여 집니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에 대한 말씀이 백번이 훨씬 넘게 나옵니다. 그 내용들을 죽 살펴보면 부자가 어떤 심판을 받는지 가난한 자가 어떤 구원을 받는지 잘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기 의를 쌓아 부자가 되려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부자이지만, 실제로 물질적인 부요한 자에 대한 심판도 상당하게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이 성경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예수 잘 믿어서 부자가 되자고 하는 사람은 재앙을 보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보고 나가다가 해를 받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설교 많이 듣지 마시고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4절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어떻게 보입니까? 겸손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면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 한절 읽어놓고 겸손하게 주를 잘 섬긴 자가 이런 저런 세상의 복을 받았다는 말을 하면 반박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복음은 분명하게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딤후1:10). 그러면 여기의 재물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봐야 합니다. 합동이나 고신이나 합신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주해가로 고 박윤선 목사가 있습니다. 혼자서 성경 66권을 다 주해한 사람이라는 명성도 있습니다. 그 주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과 영광과 생명 이것들은 하나님과 별도로 생각되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 아니고 구원 받아 하나님을 소유한 자가 누릴 내세의 기업을 말함이다.” 성경의 한 두 구절을 자기 좋은 대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본문 5절입니다.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한다고 합니다. 본문 3절과 연결하여 봅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재앙의 길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곧 자기의 영혼을 지키는 자이기에 이런 것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물건 하나를 사도 발품을 팔아가면서 삽니다. 그런데 하물며 영원한 영혼의 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길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다시 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가르쳐도 제대로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가 한 교회에서 약 20년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자라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정말 성경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하루에 한 장이라도 성경을 읽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사나 교역자로만 되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성경을 읽고 부모도 마땅히 행할 길을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아이들 앞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께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12~17절입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1)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2)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가족부터 반대를 할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배우고 확신한 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모르면 어른이라도 갈 길을 모르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마땅히 성경말씀을 봐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 마땅히 행할 길을 완성하신 분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입니다. 그 구원이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마땅히 행할 길을 알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교회가 가는 길입니다.